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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밤과 남도한상

군산-전주 여행기 (8)

by memory 최호인

“전주 하면 전주비빔밥 아냐?.”

“전주비빔밥도 좋기는 한데, 요새는 한상차림이 더 좋아.”

"한상차림?"


그때 나는 한정식은 알고 있었지만, 한상차림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어릴 때부터 ‘전주비빔밥’이 귀에 익고 하도 유명해서 그 이름을 댄 것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비빔밥 대신 ‘남도한상’을 먹었다. 전주에서는 한상차림이 한정식과 비슷한 것이고 막거리까지 함께 나오는 것임을 곧 알게 되었다.


변산반도에서 김제를 거쳐 전주로 들어간 우리는 곧바로 혁국이 잡은 숙소를 찾아갔다. 성종이 내내 운전을 했지만, 이번에는 자동차를 모텔 주차장에 두었다. 식당으로 가면 그도 술을 마실 것이므로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고 했다. 가방만 내려놓고 바로 숙소를 나온 우리는 택시를 타고 전주 삼천동에 있는 막걸리골목으로 향했다. 막걸리골목에 들어서자 도로 양쪽에 여러 식당들이 보였고 식당들 앞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전주 한옥마을로 온 관광객들이 죄다 이곳으로 모였나 보다.”

막걸리골목을 걸으면서 성종이 말했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식당 앞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입장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점심 때도 그랬지만 우리는 맛집이라 해서 그 앞에서 줄 서서 기다렸다가 먹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재빨리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배가 고파서 식당 앞에서 오래 기다리고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거리를 잠시 둘러본 후에 우리는 곧바로 맞은편에 있는 막걸리 식당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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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다행히 우리가 앉을자리가 있었는데, 식당 안 사람들은 우리처럼 모두 외지인들로 보였다. 우리 일행 네 명이 식탁에 앉자마자 곧 노란 막걸리 주전자와 술그릇들이 놓이고, 이어서 음식 접시들이 들이닥쳤다. 막걸리가 한가득 담긴 주전자는 내 머리통 크기 만했다. 친구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얼굴에 잔뜩 웃음을 머금고 막걸리 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 여러 접시가 가득 차면서 우리는 바로 먹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접시들을 비우기도 전에 웨이터가 자꾸만 추가로 다른 음식 접시를 가지고 왔다. 새 접시를 놓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반찬을 한 접시로 모으기도 하고, 손이 안 가는 접시 위에 다른 접시를 쌓아 놓기도 했다.


“역시 음식은 전라도가 최고야.”


술을 거의 못 마시지만 상을 가득 채운 음식을 보면서 나는 신이 나서 말했다. 한국으로 여행 와서 이렇게 푸짐한 음식을 대하는 것은 여행이 주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특히 이렇게 좋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좁은 테이블 위로 음식 접시들이 한없이 올라오는 가운데 풍요로운 먹거리와 마실 거리로 들뜬 전주의 여름밤은 깊어갔다.




우리는 이미 모두 배가 부를 정도로 먹고 마셨는데, 웨이터는 계속 음식 접시들을 가지고 왔다. 가만히 세어 보니까 전체 음식 접시가 스무 개도 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남도한상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음식을 푸짐하게 주고 나서도 이윤이 남으니까 장사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방식으로도 이윤이 남을까 하는 의문을 떨치지 못했다.


먹지 않은 음식들이 여러 접시에 남은 채 그대로 웨이터에 의해 실려나갔다. 우리는 푸짐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서 좋기는 하지만, 우리가 남긴 음식들이 모두 쓰레기로 처리된다는 생각에 이르자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불편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식당이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손님들은 저절로 과식하게 되고 음식을 남기기 마련이다. 남도한상은 정말 푸짐하고 맛도 좋지만, 참으로 지나친 낭비이고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처음으로 식당에 갈 때 놀라는 것 중 하나는 '반찬'이다. 주문하지도 않은 반찬들을 다짜고짜 식탁 위에 놓는 것을 보면 놀랄 수밖에 없다. 외국에는 반찬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의 식당에서는 음식에 따라 어쩌다 샐러드나 빵 정도나 따라 나올 뿐이고, 코스 요리가 아닌 바에야 식당 음식이란 주로 하나의 접시에 나오는 게 전부다. 하다 못해 물도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하는 형편이다. 식당에서 공짜로 맹물을 먹을 수 있는 곳도 드물어졌다. 요즘은 식당에서도 대체로 병에 든 물을 사 먹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외국음식 전문식당이나 퓨전음식을 하는 식당들이 늘어나서 식당 문화가 상당히 바뀌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무조건 반찬들이 나온다. 손님들에게는 묻지도 않고 식탁에 다짜고짜 갖다 놓는 반찬들을 보고 외국인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면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처럼 짜거나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한다. 반찬 재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향기는 진하고 맛까지 독특해서 외국인들이 한국의 반찬을 즐겁게 먹는 것은 쉽지 않다.


반찬이나 국물 문제가 식당들에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나는 모른다. 그렇게 문외한 관점이지만, 식당에서 먹다 남은 반찬이나 국물이 모두 쓰레기로 처리되어야 한다면 큰 문제로 생각된다. 길거리에서 파는 어묵조차 맛 좋은 국물을 내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가 들어가고 꽤 공을 들여야 한다. 각종 '탕'이나 '찌개'에서 우러나오는 국물은 매우 비싼 액체임이 분명하다. 그런 국물을 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외국에도 '수프'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 음식처럼 '국물'이 있는 음식은 거의 없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탕'이나 '찌개' 종류 음식의 국물까지 싹 떠먹는 일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한국 식당에서 묻지도 않고 무조건 제공되는 반찬의 상당량은 결국 쓰레기로 처리되어야 하는데 음식물 쓰레기는 일반 쓰레기와도 다르다. 수십 년 전에는 남아서 버리는 음식을 모두 모아서 가축에게 주기도 했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날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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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반찬 낭비를 초래하는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한정식'일 것이다. 흔한 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은 반찬이 식탁 위에 놓인 것을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육해공 반찬들이 모두 나와서 손님 입장에서는 귀하게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고 신이 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반찬들을 다 먹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상당히 많은 반찬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 쓰레기로 버려져야 할 판이다.


많은 반찬을 내놓고 파는 식당은 나름대로 그것이 음식의 품위를 높이는 일이고 판매 전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음식을 만들고 파는 사람으로서의 숭고한 책임감과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대로 음식의 높은 품격을 보존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남아서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반찬과 음식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많은 반찬은 그러므로 좋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모두 먹을 수만 있다면 다행이지만, 과식은 금물이고 먹다가 남아서 버려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안타까운 낭비일 뿐이다. 내 돈 내고 먹다가 맛이 없어서 또는 음식이 너무 많아서 남긴 음식을 버리는 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다 싶다. 오늘날에도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든 사람이 많고 굶어 죽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내가 어릴 때는 쌀을 씻다가 한 톨이라도 떨어지면 주워 담으려고 했고 음식을 먹다가 남겨서 버리면 벌 받는다고 배웠다. 밥을 먹을 때는 농사짓는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고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으며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고생한 사람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먹는 것을 남겨서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일부 식당에서 하는 것처럼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수 있을 만큼만, 갖다 먹는 반찬 문화'를 정착하는 것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일지 모른다.




음식을 잔뜩 먹고 막걸리도 두 통이나 비운 우리는 다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렇게 마셔도 주사 부리는 친구는 없었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곧바로 샤워실로 들어가서 땀에 젖은 몸을 씻었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와서도 친구들은 여전히 술이 아쉬운 듯했다. 편의점이라도 찾아가서 술을 사 와야겠다고 하는 판이라, 먼저 샤워를 마친 내가 나가기로 했다. 다행히 모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편의점이 있었고 나는 맥주와 안주를 사들고 왔다. 그리고 그 밤에 다시 서로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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