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한 달 살기 (1)
2023년 가을, 나는 한국에서 무려 두 달 동안 살기로 했다.
한국 방문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4년 전과 5년 전에도 각각 한 달씩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그때는 모두 한여름이었고 주로 서울에서만 머물렀다. 그때는 또한 어린 딸과 함께 서울에 왔으므로 움직이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다. 이번 가을에는 딸이 대학에 간 틈을 타서 드디어 가을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나는 1983년 가을에 한국을 떠났다.
올해는 내가 미국으로 이민 온 지 40년 되는 해다.
40주년을 맞아 나는 나름대로 조촐한 기념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미국으로 온 후에 나는 줄곧 뉴욕시와 그 외곽에 살았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에 주거한 의도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를 말한다면, 뉴욕과 한국의 기후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뉴욕은 사계절이나 연중 기온 변화에 있어서 서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뉴욕은 북미 대륙의 동북 지역에 있는 데다 위도 상으로도 서울과 비슷하다. 아시아이긴 하지만 한국도 대륙의 동북 지역에 있어서 양 지역의 기후는 대체로 비슷하다. 굳이 따진다면 한국의 여름에 뉴욕에는 없는 장마가 있다는 것과 뉴욕보다 습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마도 뉴욕과 워싱턴 사이 지역이 한국과 가장 비슷한 기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캘리포니아는 대륙의 서쪽에 있어서 한국과는 기후가 매우 다르다.
올해 한국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한 달은 서울에서, 한 달은 부산에서 살기로 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다. 그런데 굳이 부산을 한 달 살기 여행지로 택한 것은 부산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나는 나중에 은퇴한 후에 살 만한 곳을 조사해 왔는데 서울 외에도 부산이 흥미로운 곳임을 알게 되었다.
부산에는 과거에도 하루나 이틀 여정으로 두 차례 다녀온 적이 있어서 이번 여행이 아주 낯설지 않았다. 과거에 짧게나마 방문했던 곳은 구도심에 속할 만한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용두산공원, 그리고 해운대 해변과 새롭게 부촌으로 각광받고 있는 기장 정도다. 그때는 모두 너무 짧은 방문이었지만, 부산에 관한 나의 관심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이번에 한 달 살기를 통해 나는 부산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
이 글은 그런 목적으로 방문하여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것이다. 사나흘 정도 여행한다고 해서 부산 같은 대도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나처럼 은퇴 후 살 곳을 고려하면서 여행할 때는 더욱 그렇다.
나는 자동차 없이 ‘뚜벅이’ 여행을 떠났으므로 오로지 대중교통과 걷기를 통해 부산을 돌아다녔다. 부산은 대중교통 시설이 매우 잘 되어 있어서 자동차 없이도 다니기에 어렵지 않다.
이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한 달간 머물 숙소를 찾아야 했다. 타지를 여행하면서 숙소를 정할 때 나는 주로 호텔이나 에어비앤비를 이용한다. 또한, 도시를 여행할 때는 가능하면 관광 중심지에 숙소를 잡는다. 그런 곳에 있는 숙소가 대체로 안전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음식점도 많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곳은 으레 더 높은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 것을 감안한다 해도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밤늦게 돌아오게 될 때가 많고, 외주로 외식하게 되는 것 등을 고려해서 나는 서울에서는 강남역 부근에, 부산에서는 서면역 부근에 숙소를 정했다.
서울은 나에게 제법 익숙한 지역이고 친구들도 있으므로 별 문제가 아니지만, 부산은 나에게 낯선 곳이다. 내가 부산에 있는 아는 사람이라곤 대학 친구 한 명뿐이다. 그 친구는 다행히 서면역 부근에서 숙소를 정하고 계약할 때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내가 굳이 서면을 선택한 것은 그곳이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교통 중심지이며, 부산의 비즈니스 중심가라 그런지 숙소 선택지도 가장 풍부했기 때문이다. 부산 전역을 다닐 계획이었으므로 나에게 교통의 편리성은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서면역 바로 위에는 부산 최대 전통시장인 부전시장이 있다. 아울러 서면 근처에는 저렴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인터넷을 통해 미국에서 조사했다.
그야말로 여행하기에 참 좋아진 세상이다. 어디를 가든 인터넷만 되면 미리 다양한 내용을 조사할 수 있고 수많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야말로 정보에 대한 정보, 그리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 등이 지나치게 중요해진 시대다.
서면역 근처에는 서울에 비하면 가격이 저렴한 원룸 숙소가 많다. 처음에 내 친구는 매우 근사한 원룸을 찾아주었는데, 불행하게도 숙소 내에 침대 등 침구류가 없는 곳이었다. 겨우 한 달 지내자고 침구류를 살 수는 없다고 판단한 나는 다시 에어비앤비처럼 몸만 들어가면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 결과, 가격은 조금 더 올라갔지만 그래도 다행히 내 옷 가방만 들고 들어가면 살 수 있는 풀옵션 원룸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숙소를 찾기 쉬운 서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인생에서 항상 그렇지만, 이번 여행도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원을 받았다. 서면에 숙소를 찾아준 친구를 포함하여 여러 친구들이 나에게 다양한 도움을 주었다.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자주 보거나 대화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도움을 주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의 도움과 친절과 우정을 잊지 못한다. 그러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에서 큰 행운이다.
이번 여행에서 수년만에 그들을 잠시라도 볼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오래 보지 못하면 걱정이 된다. 나는 그들이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가 다음 여행 때도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나의 조국 한국이 더욱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민주화된 나라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