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한 달 살기 (1)
1.
2023년 가을, 나는 한국에서 무려 두 달 동안 살기로 했다.
한국 방문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2018년과 2019년에도 각각 한 달씩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그때는 모두 한여름이었고 주로 서울에서만 머물렀다. 그때는 또한 어린 딸과 함께 서울에 왔으므로 움직이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다. 이번 가을에는 딸이 대학에 간 틈을 타서 드디어 한국 여행하기에 가장 좋다는 가을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나는 미국에 살고 있다. 온 식구가 이민을 간다고 해서 아직 어렸던 나는 1980년대 중반에 가족과 함께 한국을 떠났다. 미국으로 온 후에 나는 줄곧 뉴욕시와 그 외곽에 살았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뉴욕에 계속 거주한 데에는 의도적인 이유들이 있다.
그중 하나를 말한다면, 뉴욕과 한국의 기후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뉴욕은 사계절이나 연중 기온 변화에 있어서 서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뉴욕은 북미 대륙의 동북 지역에 있는 데다 위도 상으로도 서울과 비슷하다. 아시아이긴 하지만 한국도 대륙의 동북 지역에 있어서 양 지역의 기후는 대체로 비슷하다.
굳이 따진다면 한국의 여름에는 뉴욕에 없는, 우기와 비슷한 장마가 있고 뉴욕보다 습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마도 뉴욕과 워싱턴 사이 지역이 한국과 가장 비슷한 기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캘리포니아는 대륙의 서쪽에 있어서 한국과는 기후가 매우 다르다.
올해 한국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과거의 여행 패턴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혼자서 자유롭게 온 만큼 한 달은 서울에서, 한 달은 부산에서 살기로 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여행을 올 때는 언제나 주로 서울에 머물렀다. 혼자서 지방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친구들이 여행을 갈 때 그들과 함께 할 때만 지방여행을 즐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색다른 여행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기'를 혼자서 해보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한 달 살기'는 여러 차례 해봤기 때문에 '한 달 살기'가 어떤 생활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은 나의 고향이라 지리적으로 익숙한 편이고 친구들도 여럿이라서 '한 달 살기'의 참맛을 경험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본격적인 '한 달 살기' 대상지로 나는 부산을 떠올렸다.
부산을 한 달 살기 여행지로 택한 것은 부산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나는 나중에 은퇴한 후에 살 만한 곳을 조사해 왔다. 그러던 중, 서울 외에 부산이 매우 흥미롭고 노년에 살기도 좋은 곳임을 알게 되었다.
부산에는 과거에도 하루나 이틀 여정으로 두 차례 다녀온 적이 있어서 이번 여행이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과거에 짧게나마 방문했던 곳은 부산의 구도심에 속할 만한 장소들인,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용두산공원, 그리고 해운대 해변과 새롭게 부촌으로 각광받고 있는 기장 정도다. 그때는 모두 일박 이일 정도의 매우 짧은 방문이었다. 그렇게 짧은 여행이었지만 부산은 나의 관심을 높이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2.
이번에는 뚜벅이로서 한 달 살기를 통해 나는 부산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
이 글은 그런 목적으로 부산을 여행한 기록이다. 서면에서 한 달간 거주할 방을 구하고, 매일 여행을 다니면서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하고자 했다. 부산과 같은 대도시는 사나흘 정도 여행한다고 해서 제대로 구경하거나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나처럼 은퇴 후 살 곳을 고려하면서 여행할 때는 더욱 그렇다. 오랫동안 살 곳이라서 더욱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다녀야 한다.
어느 정도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으로 여행 올 때 나는 자동차 없이 ‘뚜벅이’로 다닌다. 서울을 비롯하여 한국은 전반적으로 대중교통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서 여행자에게 굳이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다. 해외여행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그런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특히 서울은 대중교통 시스템이 우수하고 안전하고 깨끗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알고 보니, 부산은 서울 다음으로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지하철과 버스 등을 이용하여 거의 어디든지 갈 수 있고, 걷기에도 아주 좋은 곳이다. 따라서 나는 오로지 대중교통과 걷기를 통해서만 부산을 돌아다녔다.
이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한 달간 머물 숙소를 찾아야 했다.
해외로 여행하면서 숙소를 정할 때 나는 주로 호텔이나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 어느 곳이든, 도시를 여행할 때 나는 가능하면 관광 자원이 집중된 중심지에 숙소를 잡는다. 그런 곳에 있는 숙소가 대체로 안전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주변에 음식점도 많기 마련이다.
물론 그런 곳은 으레 숙박비가 더 들기 마련이다. 그런 것을 감안한다 해도, 여행할 때에는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밤늦게 숙소로 돌아오게 될 때가 많고, 주로 외식을 하게 된다. 따라서 나는 서울을 여행할 때에도 종로나 강남에서, 그중에서도 지하철역이 가깝고 주변에 식당이 많은 곳을 찾는다. 이번에 부산에서는 서면역 부근에 숙소를 정했다.
주변에 부산에 관해 잘 아는 사람들이 없었으므로 나는 지도를 놓고 부산을 열심히 조사했다. 특히 지하철 노선들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지하철 시스템은 서울에 비해 비교적 복잡하지 않아 보였다. 부산의 지하철은 서울처럼 많지 않았고, 주로 해안가를 달리는 지하철 노선은 1호선과 2호선이었다.
즉, 내가 '한 달 살기'를 위해 굳이 서면을 선택한 것은, 그곳이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교통 중심지이며, 부산의 비즈니스 중심가라 그런지 숙소 선택지도 가장 풍부했기 때문이다. 부산 전역을 다닐 계획이었으므로 나에게 교통의 편리성은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서면역 바로 위에는 부산 최대 전통시장인 부전시장이 있다. 아울러 서면 근처에는 저렴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이 많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인터넷을 통해 미국에서 조사했다.
그야말로 여행하기에 참 좋아진 세상이다. 어디를 가든 인터넷만 되면 미리 다양한 내용을 조사할 수 있고 수많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야말로 정보에 대한 정보, 그리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 등이 지나치게 중요해진 시대다.
다행히 대학 친구 한 명이 부산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연락해서 서면 근처에서 한 달 살기를 위한 숙소를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원룸 단기임대가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매우 친절하게도 서면역 부근에서 숙소를 정하고 계약할 때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서면역 근처에는 서울에 비하면 가격이 저렴한 원룸 숙소가 많다. 처음에 내 친구는 월세가 겨우 65만 원이지만 매우 근사한 원룸을 찾아주었다. 서면역에서 가까웠고 창문도 넓은 깨끗한 원룸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숙소 내에 침대 등 침구류가 없는 곳이었다.
겨우 한 달 지내자고 침구류까지 살 수는 없다고 판단한 나는 다시 에어비앤비처럼 몸만 들어가면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달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그런 상황을 '풀옵션'이라는 말로 표현할 때가 많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결과, 가격은 월세가 80만 원으로 조금 더 올라갔지만 그래도 다행히 내 옷 가방만 들고 들어가면 살 수 있는 풀옵션 원룸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여러 달이 아니라 딱 한 달만 계약을 하면 월당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그렇다 해도 그것은 숙소를 찾기 쉬운 서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었다.
3.
나는 이 기록에서 단순히 부산의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려는 의도는 없다.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는 내용은 인터넷에 무척 많다. 나는 또한, 부산의 먹거리를 주로 보여 주겠다는 계획도 없다.
나는 여행자로서 '여행'과 '추억'에 관해 기록하고자 한다. 이런 것은 나에게도 처음이라서, 그것이 어떻게 전개될지 나도 미리 알지 못한다. 다만, 이 기록은 부산을 무대로 한 내 인생의 기억을 이룰 것이다.
인생에서 항상 그렇지만, 이번 여행도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원을 받았다. 서면에 숙소를 찾아준 친구를 포함하여 여러 친구들이 나에게 다양한 도움을 주었다.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자주 보거나 대화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도움을 주는 것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의 도움과 친절과 우정을 잊지 못한다. 그러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에서 큰 행운이다.
이번 여행에서 수년만에 그들을 잠시라도 볼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면 괜스레 걱정이 된다. 나는 그들이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가 다음 여행 때도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나의 조국 한국이 더욱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민주화된 나라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이제 설레는 마음으로, 부산에서 뚜벅이로서 '한 달 살기'의 여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