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한 달 살기 (4)
10월 15일 (2-2)
한국에서 가을은 진정 축제의 계절이다.
10월에는 축제가 집중되어 있어서 매주 여러 지역에서 축제가 병행되고 있다. 나는 오늘 두 개의 축제에 다녀왔다. 12시부터 6시까지 계속 서 있거나 걸어 다닌 듯하다.
동래읍성의 스물아홉 번째 축제라고 한다. 동래역에서 내렸으면 무료 서틀버스를 탈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모르고 수안역까지 가서 내렸고, 거기서부터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동래읍성까지 30분 이상 걸었다. 읍성까지 천천히 오르막길이라 빨리 걷기도 어려웠다. 읍성 자체는 전혀 튼튼해 보이지도 않고, (아마도 왜구를 상대로 한 전투에서) 방어에 성공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니 동래 조상님들의 높은 결기만 사야 할지 모른다.
벽돌을 잘 만들지 못한 조선?
강력하고 우수한 석재가 없다면 튼튼한 벽돌이라도 잘 만들었어야 하는데, 돌들을 주워 모아서 쌓았다면 그 허술함이란! 성에 대해 잘 모르지만 크기가 다른 돌들로 쌓은 높지 않은 성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소감이다. 성 바깥에 해자도 없어 보인다. 겨우 자연적인 지리환경의 높이를 이용한 방어에 불과하다.
하여간 막상 동래읍성에 가보니 예상치 않게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수안역에서 걸어갈 때는 일요일이라 동래시장마저 상점들이 문을 닫아 한적하고 모든 거리가 한산해서 동래읍성 축제가 전혀 유명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읍성 입구에 도달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축제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금요일부터 시작했으니 오늘이 사흘째인데 말이다.
읍성 성격상 평지는 거의 없고 주로 비탈이라 읍성 내부 공연장과 먹거리 장터는 넓지 않았다. 나는 최근에 새로 건설한 것으로 보이는 읍성 성곽을 약간 돌아본 후에 공연장과 먹거리 장터로 갔다. (옛날에 만든 성읍은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돌을 쌓아 올린 성벽이 풍화만으로도 금세 무너질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산성이라 넓은 평지가 드물고 비탈진 곳에서 군데군데 무대와 먹거리 장터를 마련했다. 줄타기 공연과 노래자랑 콘서트 등이 있어서 그런지 남녀노소 인파가 공연장에 모여들었다. 수많은 체험학습 부스가 있어서 엄마들이 어린애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하나라도 가르치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은 어디나 비슷하다.
동래는 현재 부산의 중심지인 서면에서 북쪽에 있다.
조선 시대에 부산의 중심은 아마 동래였을 것이다. 부산(부산포, 부산진)은 조선 정부가 임진왜란 이후 정한 동래도호부의 한 포구에 불과했다. 이는 부산이 동래도호부 예하의 포구 및 진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동래읍성으로 갈 때는 전철역에서 한참을 걸어갔지만, 읍성에서 나왔을 때는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왔다. 동래구에서 무료로 운행해 주니 고마운 일이다. 읍성 앞에 있는 복천박물관은 시간이 모자라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 복천박물관은 가야 문화, 특히 무덤 문화를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두 번째 축제 장소가 멀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가야 했다.
내가 가려는 다음 축제 장소는 서면에서 서쪽에 있는 낙동강 구포나루. 말 그대로 낙동강 강변에 있는 예전의 나루터 장소다. 지금은 낙동강 제2대교가 지나는 곳이며, 화명생태공원 장소다.
이 공원은 주민들이 경작지로 사용하고 있다가 2007년 사대강 사업 와중에 시민들을 위한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에서 열리는 축제에도 무료 셔틀버스가 축제장소 앞까지 왕래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나는 그걸 모르고 전쳘역에서 공원 내부까지 거의 한 시간을 걸어갔다. (오늘도 아마 2만 보 이상 걸었을 것이다.)
이 축제는 드넓은 평지에서 열리는 것이고 구포나루가 있는 부산 지자체에서 더욱 크게 행사를 벌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성대했다. 수많은 차량과 인파가 공원 안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을 안내하는 인력도 무척 많았다. 이 정도 규모로 행사를 운영하려면 경험도 풍부하고 준비를 무척 많이 했음을 상상할 수 있다. 공원 이곳저곳에 공연 장소도 있고, 먹거리 장터들도 있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체험’ 부스들이다. 부스마다 젊은이들이 있어서 찾아오는 어린애들을 위해 뭔가 가르치거나 보여주고 있다. 보건과 복지 등 노약자를 위한 공공사업 부스들도 많다. 수십 개의 부스들이 하얀 천막들로 여기저기에 줄을 잇고 늘어서 있으며, 여러 부스에는 체험을 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다.
낙동강을 보기 위해 강가로 갔더니, 스피드 보트 체험을 위한 가격 광고가 많이 붙어 있었다. 겨우 5천 원. 보트를 탈 마음은 없었지만, 막상 선착장에 가서 보트가 운영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움직였다. 보트를 타고 나오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재미있다고 한다.
“벌써 세 번이나 탔는데 아이들이 졸라서 또 한 번 탈까 해요.”
세 명의 자녀를 태운 한 엄마는 상기된 얼굴로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셋이나 된다고 하니, 네 명이 한 번 탈 때마다 2만 원 내야 하는데, 네 번이나 탄다고?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까.
그 여인의 대답을 듣고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5천 원을 꺼내 들었다. 스태프가 내미는 구명조끼를 입고 얼떨결에 정원 여섯 명의 작은 보트를 탔는데, 낙동강대교 아래로 쏜살같이 달린다. 작은 배가 심하게 옆으로 회전할 때마다 강물이 얼굴로 튀긴다. 그래도 막상 타니까 재미는 있다. 그런데 시간은 매우 짧다. 아마 5분.
출렁거리는 낙동강 강물에 반짝이는 저녁 햇살과 주변 풍광을 아주 잠시 카메라로 찍으면서 달렸는데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 그런지 약간 어지러웠다. 5천 원짜리 경험 치고는 나쁘지 않다.
축제에는 역시 먹거리!
마치 저녁을 먹기 위해 온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먹거리 장터로 모여들었다. 먹거리 장터는 으레 먹는 것이 비슷하다. 그래도 지방 축제와 달리 부산 구포축제의 먹거리 장터에는 일식이나 구운 고기 꼬치 등도 판다. 한 주 전에 보았던 전라북도 정읍 구절초 축제 장터에 비해 먹거리가 훨씬 다양하다는 말이다. 다만 맛있어 보이는 곳은 줄이 너무 길다. (그래서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다!)
이곳저곳을 기울이다가 나는 셀프 전부침 장소로 갔다.
5천 원에 채소전을 부쳐 먹을 수 있다. 부추와 양파와 팽이버섯과 청양고추 등 재료를 그릇에 담고 주최 측이 주는 반죽을 넣고 스스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전을 부치는 것이다. 대학생 알바들이 일하면서 친절하게 잘 도와주었다. “5천 원이면 무척 싸군”, 이라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정말 맛있는 채소전이었다.
나올 때 구포국수를 먹고 싶었지만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했다. 전철에서 서면 맛집을 검색하고 나서, 결국 서면 시장에서 ‘기장손칼국수’ 집으로 갔다. 6천 원짜리 손칼국수. 유명하다고 하는데 약간 짜다. 하여간 일요일 저녁인데도 맛집이라 해서 제법 사람이 많다. 종업원인 듯한 아주머니들은 그렇지 않지만, 사장인 듯한 남자가 식탁들을 보면서 알아서 반찬을 챙겨주려고 한다. 나올 때 친절한 사장님이라고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하고 나오려고 했지만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서면에는 정말 맛집이 많다.
오늘로 끝나는 축제 가운데 내가 본 것은 두세 개에 불과하지만, 내가 놓친 것은 더 많은 듯하다. 아마 지난 사흘간 전국적으로 가장 축제가 많았을 것이다. 다음 주말에는 사상구에서 열리는 사상강변축제, 부산대 지하철역에서 열리는 라라라페스티벌 (빵과 커피와 디저트 등을 위한 축제라고 한다.) 등에 참여할 계획이다. 축제가 너무 많아서 가려서 참가해야 할 형편이다.
시월은 정말 축제의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