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15일 일 (3)
이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한다.
누구에게라고 묻지는 말자.
꼭 신에게가 아니라 해도 감사해야 할 대상은 수도 없이 많다.
하다못해 오늘 축제 장소에서 일한 헌 자원봉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동래읍성 축제에서 겨우 천 원에 파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고 나서 빈 플라스틱 컵을 버리지 못해서 내내 들고 다니던 나는 입구에서 한 부스에 있는 자원봉사자에게 물었다.
“미안하지만 이 컵을 어디에 버릴 수 있나요?”
“이리 주세요.”
그러면서 그 여학생이 내 컵을 받아 들었다. 그러니 내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낙동강 구포나루 축제에서 일한다는 아르바이트 대학생들.
스스로 채소전을 부쳐 먹어야 하는 곳에서 그들은 친절하게 내가 전을 부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전을 부치고 있는 사이에 어떤 사람이 내 것과 같은 플립 4 전화기를 부스 내에 두고 갔는지 계속 전화벨이 울렸다. 그러자 아르바이트생이 결국 그 전화를 받았으며, 전화 상대방에게 전화기를 찾으러 부스로 오라고 설명해 주었다.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전을 부치도록 돕는 아르바이트생들은 시간당 만원씩 받고 지난 사흘간 그곳에서 일했다. 그러니 그들에게도 감사하다. 짜증 내는 표정 없이 친절했던 대학생들.
전을 먹고 나올 때 꼭 셔틀버스를 타고 가라고 인파 속에서도 친절하게 안내하는 여성 자원봉사자.
이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약간의 돈으로도 맛있는 것을 골라서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얼마 전에 유튜버이자 기자인 알파고라는 사람이 라디오방송에서 말했다. 프리랜서 기자 활동을 위해 올해에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포함해서 세게 40여 개국을 다녔는데, 그 많은 나라들 가운데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곳이 팔레스타인이라고.
그는 가자지구에 관해 가로 10킬로미터, 세로 40킬로미터 정도의 넓이에 230만 명의 팔레스타인이 갇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보니, 가자지구의 면적은 365평방 킬로미터. 인구는 2016년에 200만 명으로 보고됐는데,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시작된 요즘 뉴스에 따르면 230만 명이라고 한다.
튀르키에 사람이지만 한국에 귀화한(?) 알파고 씨가 본 바에 따르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은 말 그대로 거대한 감옥에 갇혀 있고, 어디론가 이동할 때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물도 식량도 귀한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팔레스타인이 더 살기 힘들다는 알파고 씨의 말을, 그의 경험에 기초해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특히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되어 있고 죽음의 공포가 늘 존재하는 것을 생각할 때.
어떤 생물이라도 또 어떤 동물이라도 또 어떤 사람이라도 더 풍요롭고 아름답고 온화한 곳으로 이주하고 싶어 한다. 동물은 환경이 그렇게 더 우수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한다. 그것이 동물에게 주어진 천부적 자유다. 생존의 위험이 너무 많거나 경쟁이 치열해져서 도저히 최우수 등급 지역에서 버틸 수 없음을 깨닫고, 차라리 차등급 지역으로 물러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때까지는.
인간도 그러고 싶어 한다. 우리의 동물적 욕망이 그렇다. 다만 인간은 행정적으로 ‘국적’이 부여되어 국경 이동이 제한된다.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이다. 당신에게 행정적 편의를 위해 아이디 번호가 부여되고, 그 아이디가 허가되는 곳에서만 당신은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허구이고 상상에 불과하다. 내가 가진 아이디에게 부여되는 자유는 아마 상대적 의미에서 조금 더 넓은 곳일 것이다. 그러나 그 조금 더 넓음이란 것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거대하다. 나아가 그것이 마치 생명인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유로움이란 투표와 참정과 민주적 결사 등처럼 정신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체의 이동과 같이 물리적이기도 하다. 나는 비교적 자유를 만끽하면서 행복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이런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크게 제약을 받는다. 21세기에 그것은 놀라운 사실 아닌가.
이미 끊어진 전기와 식수, 다가올 공습과 폭격과 시가 전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둘러싼 자유의 제약과 죽음의 공포는 오늘 내가 누리는 자유와 극명하게 대립된다.
그래서 오늘처럼 자유를 누리는 행복 가운데도 가슴 한 편에서는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속 깊은 고통이 불쑥 그러나 아련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