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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헌책방 거리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16일 월 아주 맑음 (1)

by memory 최호인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느지막이 일어나서 어제 구포나루 축제에서 마감 시간이 다 되었다고 싸게 파는 빵을 사 와서 브런치로 먹은 나는 오늘은 지난 토요일 자갈치시장에서 알게 된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그날 밤 우연히 발견한 크루즈 티켓 매표소에서 문의한 결과 밤에 배를 타면 해변이 캄캄해서 영도 섬 등의 경치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승선을 일부러 포기하고 오늘 낮에 다시 오기로 했던 것이다.


오후 2시 배를 타라는 말을 들어서 1시 반에 갔지만….

이번에는, 바다에서 저녁노을을 보려면 4시 배를 타는 게 낫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가 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5시 반쯤이면 일몰 때라고 말해서…


1. 두 시간의 여유


나는 곧바로 보수동 헌책방 골목으로 갔다. 그 골목은 자갈치시장에서 국제시장을 거쳐서 가야 한다. 국제시장과 BIFF광장 등은 지난 토요일 밤에 왔던 곳이라 이제 친숙해 보이는 길이다. 이곳은 10년 전에도 하루 치기로 왔던 곳이다. 국제시장을 쭉 거쳐 올라가면 용두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거기에는 가파른 계단이 많아서 유명하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국제시장과 용두산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이 그곳에다 판잣집막을 짓고 시장에서 음식과 옷을 팔고 살았다. 일부는 자갈치시장으로 가서 생선을 잡고 다듬고 팔았다. 그런 긴박하고도 서글픈 풍경은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이 그런 것처럼 부산에도 산이 믾지만…

하여간 그래서 용두산이 유명하다.


나는 10년 전에 KTX를 타고 부산을 하루 방문했을 때 이곳을 찾았었다. 그때가 처음으로 KTX를 탔던 때다. 어쩌면 KTX를 타보기 위해서 부산을 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산에서 나는 예상보다 좋은 인상을 받았다. 부산역에서 남포동으로 먼저 간 후 자갈치시장에서 국제시장으로 그리고 용두산 공원까지 걸었다. 밤에는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발을 바닷물에 담갔다. 그날 하루 동안 서울에서 출발하여 부산에서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기본적으로 KTX 덕분이었다.


하여간 그날 용두산을 올라가다가 놀랐던 것은 오르막길에 수많은 에스칼레이터들이 있었다는 것. 그렇게 에스칼레이터가 연속적으로 설치된 것을 난생처음 보았다. 아마 노약자들이 가파른 길을 조금이라도 쉽게 오를 수 있도록 이런 장치들이 설치되었다 (라고 짐작했다.)


용두산 정상에는 팔각정과 높은 타워 전망대가 있다. 그 전망대에 올라가면 부산 전경을 파노라마처럼 쉽게 내려다볼 수 있다. 그때 전망대에서 내려다볼 때 자갈치시장 왼쪽에 높은 검은색 건물이 가로막아서 색깔이나 높이가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아서 기분이 안 좋았었는데.. 그것이 롯데몰이다. 이제 그 건물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지만, 있다 해도 더 이상 검은색이 아니고 그리 높아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주변에 다양한 높이의 고층 건물들이 즐비해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용두산으로 오르는 계단은 너무 가팔라서 주민들이 다니기 어려웠다. 그래도 먹고 사느라 그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주민들을 위해 부산시는 용두산 비탈에다 에스칼레이터들을 잔뜩 설치했다. 그래서 용두산 정상으로 가려면 걷는 것보다 에스컬레이터를 더 많이 탄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


이번에 다시 보니까...

부산은 정말 산이 많다. 도시 자체가 산과 해변 사이에다 길게 만들어놓은 듯하다. 땅이 좁으니, 그 가파른 언덕마다 사람들이 산다. 용두산공원처럼 그 언덕들마다 에스칼레이터를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경사가 심한 언덕을 오르내려야 하는 삶의 고달픔을 어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헌책방 골목으로 가다기 국제시장 골목에서 유명한 ‘비빔당면’을 먹었다. 조그만 그릇에 당면을 비벼서 주는 것인데, 양도 매우 적고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이었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 그런지, 워낙에 국수를 좋아해서 그런지 그러대로 잘 먹기는 했다. 3천 원이지만 양이 너무 적은 것은 문제다. 가만히 보면 국제시장 음식은 뒷골목으로 더 들어가야 가격도 더 싸고 양도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살면서 알아둬야 할 것은...

어디를 가든 맨 먼저 눈에 띄는 것부터 덜컥 사거나 결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 뒤에도 비슷한 것들이 많기 마련이니까.




2. 보수동 헌책방


당신은 헌책방에 언제 가보았는가.

좁은 곳에 촘촘하게 쌓아 올린 책들과 책들에서 전해지는 고유한 퀴퀴한 냄새들을 기억하는가.

그러면서도 그 책들에 담긴 지혜와 지식이 주는 지나간 시간과 위엄에 겸허해지고 머리 숙인 적은 없는가.


보수동이라…


이름부터 오래되고 낡고 퀴퀴한 냄새가 난다. 좁고 비스듬한 비탈길로 들어서니 켜켜이 쌓아 올린 헌책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서울에서는 예전에 을지로와 청계천에서 보았던 헌책방의 오랜 향수.


저 책들은 도대체 언제나 팔릴 수 있을까.


손님 하나 없는 대낮의 헌책방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문득 연로한 부부가 보이는 책방으로 들어섰다. 이 골목 책방들의 주인들 가운데 젊은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책들이 가득 찬 가게 안으로는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책들이 머리 위로 우르르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겨우 입구에 서서 책들을 바라보았다. 미니멀한 배낭을 들고 여행 온다고 한 내가 책을 버리면 버렸지 살 마음은 없었다. 주인 할아버지가 어디론가 나가시고 할머니가 나에게 어떤 책을 찾아줄까 물었다.


“아니요. 그냥 보는 겁니다. 아니요. 혹시 손바닥만 한 책이 있나요? 가볍고 작은 책.


그렇게 작고 가볍고 읽을 만한 책이라면, 좋은 책이라면,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들 앞에서도 견물생심이니까…


할머니가 엉뚱하게 산야초 사진첩 같은 책을 보여주길래 말했다.

"그런 책 말고 ‘고전’ 책이 있나요? 이를테면, 예전의 ‘삼성문고’ 같은 책 말입니다."


혹시 당신도 그런 책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한 손에 쏙 들어가면서 가벼웠고 글씨도 매우 작았던 책.


처음에는 글자가 세로로 인쇄되어 출판됐었다. 처음에는 많지 않았지만 점점 출판량이 늘어나면서 수십 권의 전집으로 발전했다. 삼성문고인지 민중문고인지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고등학생 때 읽었던 카를 야스퍼스의 ‘철학적 사고의 소학교’도,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도 , 피스칼의 ‘팡세’도 모두 그렇게 작은 문고였다.


그런데 책방 할머니 왈, 이제 그런 책은 없단다.

그렇다면 그 책들은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무심히 떠오른 그 문고를 눈에 그리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냥 나오기가 미안해서 나는 결국 책 한 권을 샀다.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곡’과 알랭 드보통의 ‘여행의 기술’ 가운데 결국 후자를 정했다. 5천 원. 전원교향곡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생 때 읽었던 것이니까. 살 만한 책이 없어서 고르기는 했지만 하드커버라서 그런지 무겁다는 느낌이 들고 괜히 샀다는 후회가 든다.


“카드 되나요?”

“오늘 첫 판매인데 현금으로 주시면 안 되나요?”


나에게 현금이 거의 남지 않아서 카드를 사용하기 원하는 내 물음에 할머니가 현금으로 받기를 원했다. 나는 흔쾌히 현금 5천 원을 꺼내 주었다. 할머니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좋아하신다.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 2시 반 정도인데 오늘의 마수걸이로 현금 5천 원. 왠지 마음이 짠하다. 이 할머니는 그곳에서만 장사 10년째이고, 이전부터 따지면 책방 운영 40년이라고 한다.


다시 골목을 걷다가 전면이 조금 더 넓고 밝아 보이는 책방 주인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또 들어와서 책을 보라고 한다.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또 뭔가 사야 할 것 같아서 그냥 길가에 있는 책들만 훑어보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떤 책을 찾냐고 묻길래, 얼떨결에 또 대답했다.


“손바닥에 들어갈 만큼 작고 가벼운 책 있어요?”

할머니가 또 이런저런 잡다한 책들을 추천한다. 그런데 살 만한 책을 찾지 못했다. 여기서도 한 권 사줄까 하다가 내가 들고 온 작은 가방에 책을 더 이상 넣을 공간이 없음을 깨알 앗다. 피곤한 몸에 무거운 건 질색이고 손에다 따로 책을 들 수는 없어서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하지만 저는 여행객이라 무거운 것을 살 수가 없어요.”

“택배 하세요. 택배 하면 간단하지.”

“아니요. 제가 한국에 살지 않아서요. 해외로 택배를 할 수는 없잖아요.”


나의 대답을 듣고 뭔가 아쉬워하는 그 할머니도 그곳에서 40년을 지냈다고 한다. 원래는 남편이 청계천에서 헌책방을 운영했는데, 80년대 초에 돈을 수금하러 부산에 왔다가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부부 모두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아무 연고 없는 부산에 그런 이유로 살게 됐다. 그런데 자식들은 모두 서울에 있다고 한다. 사촌인가는 캐나다 토론토에 있다고 하는데, 방문하라고 말하기도 한단다. 그런데 가기는 어렵다고.


나는 말했다. “토론토에 가지 마세요. 너무 멀어요. 비행기 타고 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할머니도 갈 마음이 없다고 한다. 가게 놔두고 어딜 간단 말인가. 가게는 한 달에 이틀만 문을 닫는다. 11시에 문을 열고 7시 반에 닿는다. 이제 그냥 그렇게 살면서 일하고 싶을 만큼만 하다가 은퇴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


“80년대 초라고요?”

책방 부부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것이 1983년이라고 한다. 나는 미국으로 가기 전에 을지로에 가서 책 한 박스를 팔았던 적이 있다. 대방동에서 무거운 책들을 낑낑 들고 을지로까지 갔었다는 말이다. 내심 4~5만 원은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헌책방 주인이 내 책들을 보고 나서 그냥 가지고 가라고 하더니, 정 원하면 2천 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상심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겨우 사정했고 3천 원을 받았다.


그때는 마음이 매우 안 좋았다. 아끼던 책들을 헌책방에 팔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마음을. 그런데 나중에 헌책방 운영, 아니 소기업 운영 사정을 알고 나니 그들을 이해할 만했다.

저 책들이 도대체 언제나 팔리려나?


부동산으로 떼돈 번 사람은 많이 봤어도, 봐도 너무 많이 봤어도…

헌책들 팔아서 떼돈 벌었다는 사람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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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헌책방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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