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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부산역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17일 화 구름 한 점 없이 아주 맑음

by memory 최호인

1. 밥


매일 밥을 사 먹어야 하니 고역이다.

여행 중이라 음식을 하지 않아서 매우 간단할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혼자서 매일 뭔가 사 먹어야 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돈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어디로 가서 먹어야 할지가 모두 고민스럽기 때문이다.


아침에 여유를 부리면서 천천히 나갈 채비를 하고 브러치로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오늘은 전철역으로 가기 전에 숙소 뒷골목을 탐방해 보기로 했다. 숙소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니 그 골목에도 식당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숙소 앞 대로로 나가서 곧바로 서면역으로 갔기 때문에 서면역 부근 식당촌으로 가거나 대로를 건너서 부전시장으로 가야 식당을 갈 수 있었다.


숙소 뒷골목을 천천히 걷다가 우연히 가정백반식 뷔페식당을 발견했다. 오늘의 대수확이다. 드디어 가정백반식으로 밥을 먹게 되었고, 다양한 채소까지 먹을 기회가 생겼다. 오늘 음식은 카레라이스에 반찬은 주 반찬으로 소시지, 불고기가 나왔으며, 채소류는 무엇보다 먹고 싶었던 상추쌈과 파란 고추. 그 외에도 어묵 무침과 브로콜리도 있었다. 거기에다 무와 두부와 게를 집어넣고 끓인 된장국도 따라 나왔다.


한국에 와서 (부산으로 오기 전에 나는 서울에서 이미 한 달을 지냈다.) 음식을 매일 사 먹으면서 부실하게 먹고, 채소를 먹지 못해서 채소가 고팠던 마당에 다행이었다.

앞으로 자주 이용할 계획. 가격은 8000원.


2. 초량동과 부산역


오늘은 부산역 일대를 돌아보기로 했다.

나는 부산역 전에 있는 초량역에서 내려서 ‘이바구길’과 ‘168계단’으로 먼저 가기로 했다.

이바구는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라는 말. 이곳은 해방 후 피난민들의 주된 생활 터전이었던 초량동의 엣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조용히 다니는 게 좋다. 담장 갤러리 골목들을 지나서 가장 유명한 것은 168계단.


가파른 계단을 168개나 올라가야 하는 곳인데, 그 정상에 올라가면 부산역 너머로 부산 앞바다까지 보일 만큼 탁 트인 곳이다. 이 계단이 하도 유명해서, 계단 빨리 오르기 기록 경쟁도 있다.


현재 최고 기록은…

2022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500미터 금메달리스트 황대헌이 세운 23초 41.(이전 최고 기록은 24초 55.)


그 계단 옆에 모노레일이 설치됐다.

그 바람에 그곳 주민들, 특히 노약자들이 예전에 비해 훨씬 편하게 비탈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됐다. 관광객은 가능하면 계단만 이용해야 하지만, 나는 그곳에 가서 걸어서 올라갔다가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갔다가 내려온 사람들(관광객 부부)을 우연히 만나서 들은 바로는 현재 모노레일을 수리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도 168계단을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즉각 올라가기를 포기했다. (속으로는 은근히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그 계단들을 걸어서 올라간다 해도 걸어서 내려올 자신은 없었다. 그 바람에 오늘 여행 시간이 남게 되었다. 원래 계획은 그 계단을 올라가서 그곳에서 커피라도 마시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그것이 오늘 여로 가운데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계단 밑까지 가보지도 않고 나는 그곳을 떠났다.


다음 행선지는 초량 상해 거리와 차이나타운.


차이나타운은 부산역 바로 맞은편에 있다. 이 차이나타운은 이를테면 인천에 있는 차이나타운 규모에 비해서는 훨씬 작지만 그래도 역시 차이나타운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매우 길게 뻗은 도로 양쪽에 중국식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그 중간중간에는 러시아인들과 과거 소련 연방에 속한 무슬림국가 사람들과 그래서 할랄 푸드를 먹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식품점과 식당들도 있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많은 식당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영화 ‘올드보이’를 찍었다는 ‘신발원’이다. 영화는 그곳과 ‘장성향’이라는 식당에서 촬영되었던 듯하다. 영화 속 주인공인 최민식이 먹었던 군만두가 가장 많이 팔린다. 신발원은 매주 화요일에 문을 닫는 바람에 나는 장성향에서 군만두를 먹었다. 다섯 개에 8천 원.


차이나타운에 간 김에 먹어보려고 했던 것이지만, 브런치로 뷔페식당에서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나는 매우 큼직한 군만두 다섯 개를 모두 먹을 수 없었다. 맛은 그저 그렇고 겉바속촉이지만 매우 느끼하다. 몸 상태가 약간 힘들어서 그런지, 먹다가 토할 것 같은 느낌에 먹기를 중단했다. 이곳에 이미 와봤던 친구 Y에 따르면 영화를 찍었다고 해서 특정 음식점이 유명한 것이지, 이곳에 있는 다른 음식점들과 특별히 맛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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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동에 관해 말하자면…

그곳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백사청송, 즉 흰모래에 파란 소나무가 많았던 곳이다. 고분과 무덤이 많았으며,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청관거리’로 불리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의 거리가 왜관거리라고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 구한말 초량에는 청나라 영사관과 청국 조계지가 설치되었다. 화교들은 비단, 포목, 거울, 꽃신 등으로 사업을 벌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현재 차이나타운 입구에 있었던 초량왜관지를 접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고, 초량 앞바다를 매립하면서 영선고개를 모두 깎아서 평평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침략 지역으로 남의 국토를 제멋대로 깎고 다듬은 것이다. 그곳에 상하수도 시설, 교통망과 항만시설 등을 건설했다.


1907년에는 경부선의 기점인 초량역을 중앙동으로 연장하여 관부연락선이 닿았던 부산세관 앞으로 부산역을 삼고자 계획했다. 관부연락선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운항하는 연락선을 말한다. 그에 앞서 초량 앞바다는 일본의 주도로 엄청난 규모로 매립되어서 상전벽해를 겪었다. 영선고개는 거의 사라졌고, 초량 해안에는 철도가 놓여서 아직도 전통적 경제문화 상태에 있었던 조선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남대문에서 초량역을 잇는 경부선은 1905년에 개통됐다. 1908년에는 초량역에서 부산역으로 철도 구간이 연장됐다. 이로써 부산역은 중앙동에서 임시 역사로 1908년 시작되었으며 이어 1910년에 중앙동 부산역사가 완공됐다. 1953년 대화재로 부산역사가 전소되어서 임시 역사를 사용하다가 1969년에 초량동에 새 역사를 건설했다. 현재의 부산역사는 2003년 경부고속철도 개통에 맞추어 새로 증개축된 것이다. 부산역광장은 유라시아 철도권을 염두애 두고 2019년에 새롭게 대규모 광장으로 탄생했다.


차이나타운에서 나온 나는 부산역 앞에 있는 광장을 거쳐 부산역 뒤에 있는 북두칠성 도서관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역 앞에 있는 여행가이드로 사무실 직원으로부터 부산시의 둘레길과 같은 ‘갈맷길’에 관해 들었다. 그리고 북두칠성도서관으로 가려면 부산역 뒤를 돌아보라고 했다. 그곳이 새로 개발되는 곳이라 볼 만하다고 했다.


역내를 통과하여 역사 뒤로 나가자 2부두와 3부두 사이에 매우 거대한 천수공원이 건설되고 있었다. 그곳이 소위 부산의 북항이며, 그 앞바다에 부산항대교가 바다를 가르고 놓여 있다. 바닷가에는 부산항힐링야영장까지 만들어져서 시민들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에 텐트들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텐트촌이 보이는 곳으로부터 내륙으로 깔린 수로를 따라 걸었으며, 바닷가 가까운 공원 안까지 산보를 했다. 그 사이에 해는 부산역 앞산에 걸려 있다가 기어이 서쪽으로 지고 말았다.


부산역 뒤에 이렇게 거대한 산책로가 바다 수로를 따라 조성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곳은 아직도 건설 중이라서 부산 사람들이라도 잘 모르거나 가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 한적한 산책로로 걸어 들어가서 부산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깊은 감탄과 함께 한 시간 이상을 소비했다. 노랗다가 점차 붉어지는 석양 노을 아래 강아지풀과 억새풀이 아름답게 빛났고 잔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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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시 밥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드디어 부전시장에 들렀다.

숙소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어서 방문을 미뤄둔 곳이다.


차이나타운에서 오후 4시 정도에 억지로 먹다가 중단한 군만두를 생각할 때 저녁을 먹고 싶지 않았지만, 내일 아침 먹거리를 위해 떡이라도 사고 싶었다. 부전시장은 부산 최대 전통시장이다. 부산의 전통시장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정리해서 소개하고 싶다. 내가 머무는 숙소에서 큰 차도만 건너면 도달하게 되는 이 거대한 시장은 오후 7시면 거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부산역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한 내가 부전시장에 도착한 시간은 6시 50분. 이미 절반 이상의 가게들이 문을 닫은 시점에 나는 겨우 문을 닫기 직전인 떡집을 찾았다. 시장 골목을 거쳐 나오는 길에 여러 식당을 보았는데 음식 가격이 눈에 띄게 낮았다.


나는 이미 어젯밤에도 서면시장의 맛집으로 알려진 ‘화전국수’를 찾았었다. 그저께 이 집이 휴무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찾은 대안 식당이 ‘기장손칼국수’였다. 화전국수 식당의 국수 가격은 온국수가 4500원, 비빔국수가 5500원인데, 최근에 오른 가격이 그렇다! 맛은 그저 그렇다. 그냥 밀가루 국수에 국물은 역시 약간 짜다. 인터넷에서 보면 이 집은 얼마 전까지도 온국수 가격이 3000원이었다. 싸긴 하지만 가격을 50%나 올리다니.


그런데 오늘 저녁에 부전시장 안에서 더 놀라운 가격의 식당을 발견했다. 짝짝짝.

영자면옥 본점.

고기만두 3500원(6개), 칼국수와 짜장면은 3000원이다. 나는 칼국수를 먹지는 않았지만 옆 사람에게 주는 칼국수 그릇을 보니 양도 많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으니, 웨이트리스에게 양이 가장 적고 먹기 편한 음식을 달라고 했더니 고기만두를 주었다. 재빨리 수정했어야 했는데… 낮에 군만두를 먹었는데 또 고기만두를 먹게 된 것을 후회했다. 차라리 그 식당의 시그니처 음식인 칼국수를 먹을 걸, 이라는 후회가 들었지만 어차피 배가 불러서 다 먹지 못할 판이었다.


이렇게 낮은 가격으로 장사를 하다니!

부전시장의 특징이고 부산의 묘미다.

그러나 한국에 온 후 계속 음식을 사 먹다 보니, 앞서 말한 대로 채소와 과일을 먹지 않은 몸에서 비타민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낮에 가정백반식 뷔페를 발견한 것에 내가 그토록 크게 기뻐했던 것이다.


하여간 음식을 내내 사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사 먹는 음식이 전반적으로 짠 것도 문제다. 반찬이 제한되는 것도 문제다. 싸다고 튀김과 떡볶이와 국수류와 설렁탕과 국밥만 자꾸 먹을 수는 없다. 이런 식당의 반찬은 거의 모두 김치뿐이다.


아무리 고상한 척해도 결국 우리는 본능적으로 식탐을 가진 동물이며 에너지를 얻고 생존을 위해 먹고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은 그야말로 매일 사 먹다 보니 문자 그대로 먹는 것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된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먹는 것도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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