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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의 시작, 오륙도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18일 수 맑음 (1)

by memory 최호인

오늘은 매우 대단했던 날이다.

무려 20킬로미터 이상 걸었으니 말이다.


1. 오륙도 스카이워크


이번에 한국에 온 후 처음으로 버스를 탔다.

오륙도로 가서 4.7킬로미터 정도 바다 옆 산책로를 걸으려고 했다. 오륙도 스카이워크에서 동생말이라는 곳까지 바다 옆에 난 산길을 걸으면 그 거리다. 그곳은 오륙도에서 해운대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1코스의 첫 구간이며, 걷는데 1시간 반 내지 2시간 정도 걸린다.


해파랑길 1코스는 총 17킬로미터이며 보통 6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다.

해파랑길은 동해와 남해를 나누는 오륙도에서 시작하여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둘레길이다. 한반도 둘레길은 남해안을 걷는 남파랑길, 서해안을 걷는 서해랑길도 있다. 휴전선 남쪽을 걷는 내륙 동서 횡단 둘레길도 있다. 이 모든 둘레길을 걸으면 대한민국 둘레를 한 바퀴 도는 셈이라,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꿈에 그리는 완주 코스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나는 해파랑길 1코스를 전부 걸을 계획이 전혀 없었다. 그중 첫 구간만 걸으려고 계획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지 않았던 것이다.

숙소에서 버스로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오륙도 끝에 있는 스카이워크.


버스가 오륙도 끝머리에 도달할 무렵부터 창밖 풍경이 예뻐서 기분이 좋았다. 버스가 드디어 오륙도 스카이워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바닷가 절경을 보면서 크게 감탄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본 풍경 가운데 가장 멋있고 시원한 모습이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는 그야말로 가슴이 뻥 뚫리도록 시원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스카이워크에 서서 눈이 닿는 먼 끝에 거대한 수평선이 펼쳐져 있고 그 아스라한 선 위아래로 엷은 파랑의 하늘과 짙은 파랑의 바다가 나뉘어 있다.


오륙도는 동쪽에서 보면 6개의 섬으로 보이지만, 서쪽에서 보면 5개의 섬으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카이워크는 위에서 어림잡아 아마도 40여 미터 높이의 절벽에서 바닥에 강화유리를 놓고 그 위로 걸어 나갈 수 있도록 꾸민 시설물. 투명 유리 아래만 보면 바위와 철썩거리는 파도와 바닷물 때문에 아찔하지만 거기서 덜덜 떠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로 외국인들이 그곳에 와서 사진을 찍고 멋진 풍광을 즐긴다.


그 외에는 해파랑길을 가는 사람들.

날이 좋아서 그런지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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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와 스카이워


2. 해파랑길 1코스?


해파랑길 1코스는 50개에 이르는 해파랑 코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산과 바위 절벽에다 나무 계단들을 설치해 놓았고 흙이 있는 길도 평평하게 다져놓아서 걷기가 어렵지 않다. 처음에는 약간 오르락 내리락이 많아서 어려울 수도 있지만 열심히 걸으면 2시간 정도에 4.7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나는 수도 없이 깊은 감탄과 함께 바다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멀리 서쪽으로 광안리와 해운대가 모두 보인다. 맑은 하늘 아래 투명한 공기를 지나 그 모습이 멀어서 무척 평화롭다.


코스를 걸을 때 풍경이 아름다운 장소마다 잠시 쉴 수 있도록 공간을 넓게 마련해 놓았으며 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거기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기 솜털 같은 구름들이 펼쳐진 창공과 한없이 푸르고 드넓은 바다와 다양한 모양의 바위와 거기에 끝없이 부딪히는 파도와 그 파도에 침식되는 돌들과 산을 뒤덮은 나무들과 시원하게 부는 바람 등을 글로는 도저히 적당히 표현할 수 없다.


중간에 쉬는 장소에서 엄청나게 많은 물이 출렁이는 바다를 보면서 엉뚱하게 이런 상상이 떠올랐다.
(재미로 하는 헛소리 비슷하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옛날에 어떤 거인이 있었는데, 목이 말라서 바닷물을 마셨다. 그러니까 바닷물이 모두 사라져서 바다의 바닥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바닷물이 모두 사라졌다고 난리 쳤다. 사람들의 걱정과 원망을 들은 거인은, 그래? 그럼 다시 물을 주지. 하면서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다시 바닷물이 생겼고 오줌을 누는 힘으로 파도와 하얀 포말도 생겼다. 믿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어떤 거인이 있어서, 그 거인이 물을 먹는 시간, 오줌을 누는 시간은 거인에게는 길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길지도 모른다. 그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아주 많이 다르다.


형용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나는 오륙도에서 이기대에 이르는 갈맷길을 걸었다.

이기대는 두 명의 기생을 기리면서 비롯된 이름인데 논개 이야기와 비슷하다. 임진왜란 때 이곳을 점령한 왜군이 경치에 취해 술판을 벌였는데, 기생 두 명이 왜장을 끌어안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의 바위는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어울려 그야말로 절경인데, 8천만 년 전에 용암이 분출하여 형성된 화산 지형이다.


나는 산 위에 있는 오륙도 스카이워크에서 출발하여 처음에만 오르막길이 있었을 뿐 대체로 내리막길이 많았는데, 반대쪽에서 오면 오르막길이 많아서 더 힘들다고 들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쪽에서 오는 사림들이 많았다. 해안가 바위 절벽에 설치된 나무 계단을 내려갈 때 반대편에서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자니 안쓰럽기까지 했다. 바다를 내려보는 가파른 계단에서 내가 비교적 여유 있게 내려가고 있을 때 40세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올라오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난간을 겨우 붙잡고 나에게 물었다.


“아직 끝이 멉니까?”

“아니요. 이제 10여 분만 더 가면 정상입니다. 그 후로는 바로 오륙도 스카이워크에 도착해요.”

“아 그렇군요. 지금까지 계속 오르막길이라서…”

‘아 그렇군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출발했던 곳은 이미 영도에서 버스를 타고 오륙도 스카이워크까지 올라왔기 곳이라, 아마 상대적으로 고도가 높은 곳이었다. 그러나 이기대 쪽에서 오는 사람은 산 아래에서 시작하는 걸음이기 때문에 오르막이 많다고 느끼는 것일 테고. 그런데도 그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기대나 광안리해수욕장 쪽에서 오는 사람일 수도 있고, 해파랑길의 마지막 코스를 걷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 가운데 특이한 풍경은 개인들 외에도 어떤 회사에서 마치 단체훈련이라도 하는 듯이 줄지어 오던 사람들이다. 절벽 위 일부 좁은 길은 양쪽에서 오는 사람이 통행하기 어려울 만큼 폭이 좁다. 그런 곳에서 나는 그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지나가는 동안 나는 길 옆에 서 있어야 했다. 가만히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어림잡아 200명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그들 중 일부의 가슴에는 직책이 적힌 이름표도 걸려 있었다. 이를테면 ‘상무’라는 직책이 적혀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에 오는 젊은 안내인에게 어느 회사에서 온 사람들이냐고 물었더니 “여러 회사에서 온 사람들이에요.”라고 했다. 수요일 오후에 여러 회사에서 그렇게 많은 회사원들이 모여서 해파랑길을 걷는다고?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후에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내 앞으로 줄지어 다가왔다. 이번에는 남자 고등학생들.

아마 수학여행을 왔다가 그렇게 걷는 듯했다. 그들 중 드물게 나에게 인사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기특해서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힘내. 거의 다 왔어. 이제 한 시간만 더 가면 돼. 오르막길로.”

내 말을 들은 아이들이 비명이라도 지를 기세다.

“한 시간이나 더 간다고요? 오르막길로? 얘들아, 앞으로 한 시간이나 더 가야 한대.”

내 말을 들은 아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외쳤다.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의 빠른 걸음이라면 아마 한 시간은 안 걸릴 것이다. 20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모두 앉아서 쉴 수 있는 넓은 장소도 없을 것이므로 그들은 쉬지도 못하고 계속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 30분 정도면 오륙도 스카이워크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자주 쉬면서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보았지만 아이들은 그런 풍경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아름다운 첫 구간이 끝나고 동생말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동생말은 ‘산의 동쪽 끝자락’이라는 뜻인데, 해안 끝으로 돌출된 그곳에 서면 광안대교와 해운대와 청사포까지 볼 수 있다. 그곳에 갑자기 일부러 걸으라고 자갈을 세워둔 듯한 길이 나타났다. 넓은 도로에서 바닷가 쪽으로 잔돌로 꾸민 길은 100미터 정도 뻗어 있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다니라고 꾸민 길이거니 생각했다. 요즘은 맨발 황톳길 걷기가 유행이라 하니 말이다.


나는 기꺼이 신발을 벗고 자갈길에 도전했다. 그런데 자갈들을 일부러 뾰족하게 세워서 깔아 두었으므로 예상보다 발바닥이 많이 아팠다. 나는 옆에 설치된 난간에 손을 뻗어 잡고 의지해서 겨우 걸을 수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갈길을 완주했다.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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