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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과와 일신우일신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19일 목 흐림 (1)

by memory 최호인

며칠째 계속 무리해서 그런지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멀리 나가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날씨가 흐리다. 비가 오면 더 좋았을 수도 있지만 하여튼 약간 기다리던 날이다.


며칠 전에 한 친구에게 말했다.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매일 날이 맑으니까 방 안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나가서 돌아다니게 된다고.

게다가 한 번 나가면 저절로 많이 걸어 다니게 되니, 비라도 오면 숙소에서 나가지 않고 그냥 쉬고 싶다고.


바라던 비는 오늘 밤부터 내리기 시작해서 내일 아침까지 올 것으로 예보되어 있다. 날씨를 핑계로, 브런치를 먹고 나서 오후까지 방 안에서 뒹굴대던 나는 오후에 서울서부터 미뤄두었던 피부과에 가기로 했다.


1. 피부과


나의 눈 밑에 모여들지 말아야 할 단백질이 모여서 노랗게 둥근 점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미국에서 나의 주치의나 약사는 이를 보험으로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약으로는 없앨 수 없으므로 피부과나 성형외과 의사를 찾아가서 레이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치료비가 많이 들 테니 한국에 가는 김에 치료하라고 그들이 말할 정도로 미국 의료 현실은 답답하다.


미국의 의료 체계가 얼마나 답답하고 비싸고 복잡한지에 관해서는 이미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다. 의사를 만나려고 해도 금세 날짜를 잡을 수 없고, 기본적인 정기 체크업이 아니라면 의사 얼굴만 봐도 수백 달러가 지출된다. 하물며 어떤 치료가 들어가면 금세 수백 수천 달러가 된다. 미국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해서 오바마케어가 시작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것도 입원이나 수술 정도 되어야 제대로 이용할 가치가 있다. 워낙에 의료비가 비싸서 보험 가입자가 기본적으로 부담해야 할 몫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 서울에서는 다른 문제들로 시간을 끌다가, 부산에 와서 오늘에야 흐린 날씨를 핑계로 나는 드디어 피부과를 찾아가기로 했다. 서울의 강남처럼 부산에서는 특히 서면에 각종 의원이 많다. 서면역, 특히 역의 남쪽 주변 건물들 외벽에 붙어 있는 간판들을 보면 가장 많은 게 피부과와 성형외과다. 나는 당연히 피부과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성형외과를 가라고 말했다.


성형외과는 영어로 말하면 Plastic Surgery 또는 Cosmetic Surgery 아닌가. 이 단어적 의미로만 따지면 피부가 아니라 피부 내적 조직과 구조물을 치료하는 것 같아서 내 피부 치료는 피부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지 헷갈렸다. 하여간 서면 일대의 병원 간판에도 성형외과와 피부과들이 비슷한 의미로 섞여 있는 듯 보였다.


여러 병원들 가운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약간의 고민 후에 나는 우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피부과’를 찾아서 들어갔다. 숙소 바로 건너편. 피부과는 난생처음 가는 것이라 매우 어색했는데, 들어가 보니 접수 데스크 맞은편 대기실에 젊은 남성들이 여러 명이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접수 데스크에 있는 젊은 여성 직원이 의아하다는 듯 나를 보고 물었다.

“어떻게 오셨지요? 예약하셨나요?”

“아니요. 예약한 게 아니라 처음 온 건데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 내 왼쪽 눈 밑을 보시면 노랗게 점 같은 게 있잖아요. 이걸 치료할 수 있나요?”

그러자 젊은 여직원이 일어나서 내 눈 밑을 보더니 말했다.

“아, 여기는 주로 제모를 하는 곳이에요. 다른 곳에 가셔야 할 것 같네요.”

“제모요?”

나는 비로소 그 여직원이 왜 나를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처럼 나이 든 사람이 제모하겠다고 피부과를 오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 그렇군요.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요? 다른 피부과 아니면 성형외과?”

“그건 모르겠는데요.”

프런트데스크 직원은 이미 자기 문제가 아니라는 듯 얼굴을 컴퓨터 화면으로 돌리면서 냉랭하게 대답했다.


피부에 문제가 있어서 피부과에 왔는데, 피부과에서 제모만 전문으로 한다고 하고, 다른 피부과에 가라고 하니…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려니 생각했다.


젊은 남성들이 다리, 겨드랑이, 턱 등 몸에 털이 나는 것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고 제모 수술을 하는 현상은 예전에는 결코 없던 일이다. 남자가 겨드랑이, 특히 다리에 털이 없으면 오히려 놀림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계집애처럼 뺀질뺀질하다"라고.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외에 어느 나라에서 연예인도 아닌 일반 남성들의 제모가 유행처럼 번지고, (일부일지 모르지만) 피부과가 제모 전문점이 되었을까 싶다. (그러나 모든 것은 바뀌기 마련이니, 이런 현상을 두고 좋다 나쁘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기껏 용기를 내어 들어갔던 병원에서 벌어진 예상하지 않은 결과에 나는 다른 병원들을 더욱 유심히 살피게 됐다. 일단 페이스 리프팅이라든가 피부 ‘관리’라고 적힌 곳은 피하고… 결국 한 약사가 소개한 피부과로 들어갔다. 접수 데스크에서 나에 대해 묻더니 다행히 30분 정도 기다리면 의사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역시 빨라서 좋다. 미국이라면 적어도 며칠 또는 몇 주 후에나 의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린 후 드디어 의사의 초진으로 내 얼굴의 상태와 치료 계획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의사는 나의 눈 밑에 생긴 누런 점이 황색종이라고 했다. 접수 데스크에 있던 직원으로부터 시술 방법과 비용에 대해 들었다. 목 부분에 있는 작은 쥐젖들도 치료하기로 했다. 잠시 기다리면 바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오케이. 역시 빨라서 좋다. 나는 바로 치료하자고 대답했다.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린 후 드디어 치료가 시작됐다. 막상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서 난생처음 피부 문제로 치료받으려니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직원이 들어오더니 얼굴에 마취제를 바르고 나갔다. 얼굴이 점점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후에 의사가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내 얼굴에 레이저 시술을 시작했다. 불이 번쩍 거리면서 뜨거운 침이 번개처럼 얼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이어졌다. 난생처음 얼굴 위에 쏟아지는 고통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어서 나는 계속 온몸을 움찔움찔했다. 내 코로 살이 약간 타는 냄새가 났다. 아, 내 살이 타는가 보다. 혹시라도 얼굴에 어떤 상처가 남을까 겁이 나기도 했다. 얼마 후 고통은 끝났고 이어서 레이저로 지진 부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냉각시키는 작업이 지속됐다. 결국 레이저로 시술된 피부에 연고가 묻은 테이프를 붙이고서야 나는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2. 일신우일신


오늘날 한국의 화장품과 화장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인들의 성형 수술도 물론 최고 수준이다. 강남에 있는 수많은 성형외과는 특히 방학 기간에 바쁘다고 한다. 한국 여성들뿐 아니라 다른 나라 여성들까지 이곳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예뻐지기 위해서 또는 새로운 얼굴로 가꾸기 위해서 화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까지 고치는 것이다. 부모가 물려준 몸에서 털 하나라도 함부로 바꾸지 않으려 했던 선조들의 옛이야기가 아련하다.


훌륭한 성형수술, 마술 같은 화장 기술, 질 좋고 우수한 화장품과 더불어 얼굴과 피부를 예쁘게 가꾸려는 한국인들의 놀라운 열성과 의지는 명성이 자자하다. 특히 젊은 여성들뿐 아니라, 이제는 젊은 남성들까지 화장과 성형 시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 연예인도 아닌 남성들이 화장을 하고 성형수술까지 하는 것은 그들의 부모 세대에게는 낯선 것을 넘어서 거의 전무했던 일이다.


부모 세대에 비해 키도 훨씬 크고 날씬하고, ‘현대의 미적 감각’에서 잘생기기까지 한 한국의 젊은 세대가 외모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한국의 경제발전의 한 효과일 것이다. 동의하기는 싫지만, 참 묘하게도 경제가 발전하니까 한국의 젊은이들이 놀라울 정도로 예쁘고 잘 생긴 사람들로 변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현대의 미적 감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부모 세대가 젊었을 때 예쁘고 잘 생겼다고 들었던 정도의 외모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매우 흔하거나, 그들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심지어 예쁘거나 잘 생긴 수준이 아니기도 하다. 또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들의 미적 감각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뻔한 말이지만,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또는 예쁘다고 말하는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상대적이고, 반복적 주입과 배움 그리고 지루하고 완고한 교정을 통해 획득되는 가치다.


인생이 그렇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더 공부를 잘하려고 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더 돈을 벌려고 노력한다. 예쁘고 잘 생긴 사람들이 더 예뻐지고 더 잘 생기기 위해서 노력한다. 피부가 매끈한 사람이 더 매끈해지려고 노력하고 건강한 사람이 더 건강을 챙긴다. 그러한 개선과 발전에다 삶의 우선적 가치관을 두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과 담배로 찌들고 운동도 하지 않는 사람은 신기하게 계속 그렇게 안 좋은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허접한 취미만 즐기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런 쪽으로만 가려고 한다.


쉽게 인정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꼭 저마다의 가치관의 차이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도 넓게 보면 사회적 소외현상이고 상대적 박탁감으로 인한 일탈이다.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충분하지 않다. 저마다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 꼴리는 대로 살면 그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맞고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아쉽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꼴리는 대로만 살면 그 자신에게는 그런대로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모두 함께 어울려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물론 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피곤할 때가 많으므로, 또 그것이 긴밀했던 공동체의 급속한 해체로 아노미 현상을 겪는 현대인의 특징이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적극적 인정과 자기만족과 독립을 강조하는 요즘 심리학의 추세도 이해한다. 그것은 확실히 정신병을 덜 앓고 소외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중요한 자세이고 처방이다.


타인의 관계를 잘 유지하려는 데서 생기는 긴장과 스트레스로 앓느니, 못났건 잘났건 차라리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족하려는 태도는 중요하다. 타인과의 비교와 열등감과 스트레스로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힘들어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니 부디 믿기 바란다. 당신도 괜찮은 사람이야! 불안해하지 마!

그런데, 그렇다 해도, 아니 그런 자기 긍정 위에서도, 권하고 싶은 게 있다.

가능하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모자란 것을 채우려는 노력.


나이 들어서 사람 바뀌지 않는다면서, 또 성격 고칠 수 없다면서 결코 바꾸지 않으려는 자세보다, 나에게 모자란 것을 찾아서 고치고 새롭게 바꾸려는 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풍요롭고 지혜로운 삶을 위해서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됐다.


어릴 때부터 일신우일신이라고 배우지 않았는가.

나이 들어서 그 교훈을 잊고 사는 사람이 많아서 다시 강조하고 싶다.


특히 나에게.

일신우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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