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전시장과 부산시민공원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20일 금 맑음 (1)

by memory 최호인

어제 일기예보에서 예상했던 대로 비는 아침 일찍 그쳤다. 그러나 오전 내내 강풍이 불었다. 6층에 있는 숙소에서도 창문 밖으로 이따금 바람이 몰아치는 큰 소리가 났고 기온도 어제보다 많이 낮아졌다.


몸은 여전히 피곤했고, 날씨도 쌀쌀한 듯해서 나는 정오까지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제저녁에 샀던 계란빵을 아침에 먹고 나서 정오가 지나면서 나는 또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 생각했다. 만약 가정식 뷔페를 먹는다면 저녁까지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저녁 시간에 뭔가 먹기도 안 먹기도 모호해질 것 같았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주말 축제들 가운데 어디로 먼저 갈까 생각하다가 이렇게 하기로 했다. 부전시장에 가서 점심을 먹고, 한낮의 시장 풍경을 구경한 후에, 부산시민공원을 통과하여, 삼광사로 걸어가서 사찰을 둘러보고, 저녁에는 부산대역에서 열리는 라라라 페스티벌에서 빵이라도 사 먹을 것. 라라라 페스티벌은 빵과 쿠키 등 디저트를 위한 페스티벌로 소개되어 있었다. 이 기회에 시간이 되면 부산대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1. 부전시장


서울처럼 부산에도 많은 전통시장이 있는데, 부전시장은 부산 최대 전통시장이다.

오후 2시쯤 되어 나는 숙소에서 차도 건너편에 있는 부전시장으로 갔다. 주말이 시작되어서 그런지, 금요일 오후의 부전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활기찬 모습이었다. 시장 골목마다 촘촘하게 늘어선 상점들에는 온갖 상품이 가득하다. 상인들은 열심히 상품을 다듬어 가게가 좁다는 듯 전시했으며 시장 통로를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싸게 파니까 보이소”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물건을 팔려고 한다. 주로 노인네들이지만 시장을 오가는 행인들은 많은 편이었다.


부전시장은 단일한 전통시장이 아니다. 이 시장은 부전마켓타운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부전시장과 더불어 부전인삼시장, 부전인삼마켓, 부전상가, 부전농수산물새벽시장, 서면종합시장, 부전기장골목시장, 부전전자종합시장 등 8개의 시장으로 나눠져 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전시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수많은 해산물과 과일과 채소, 식당과 떡집 등이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상품들의 가격은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싸다. 이렇게 싸게 팔아도 장사가 될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만약 누군가 이 근처에 거주한다면 적어도 식생활비에 대한 걱정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가정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을 전국에서 가장 다양하게 찾을 수 있으며 가장 싼 가격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전통시장은 현대화되면서 통로를 넓히고 지붕도 만들어서 사시사철 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다. 부전시장도 그런 추세에 맞춰 지붕을 덮어서 눈과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그러나 부전시장은 통로를 충분히 넓히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상인들은 지나치게 통로까지 매대를 놓아서 점포를 확장한 듯하고 통로 중간중간에 노점상들도 있었다. 그 통로 사이로 행인들도 지나가고 오토바이를 탄 사람도 지나가고 카트에 물건을 담은 사람도 지나간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마침 내가 식당에서 막 나온 시점에 택시 한 대가 어쩌자고 이 좁은 시장 통로로 들어섰다. 나는 택시가 잘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나를 앞지른 택시는 그러나 십자 교차 지점에서 멈춰 섰다. 택시 맞은편 통로에는 1톤 트럭이 서 있었다. 그 통로에서 트럭이 뭔가 하느라고 정차한 상황이었다. 택시 운전기사는 엉뚱하게도 그때를 맞춰서 자동차를 세워둔 채 옆에 있는 가게에서 뭔가 사려는 듯했다. 그 바람에 택시를 피해서 좁은 통로를 통과해야 하는 행인들이 택시를 탓했다. 통로를 자동차가 떡하니 가로막고 서 있으니 욕이 나올 만도 했다.


택시 운전기사는 자신을 욕하는 행인들에 맞서 말싸움을 하다가 결국 쌍욕이 섞인 다툼으로 번지는 듯했다. 그러나 여러 행인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택시 운전기사는 말싸움을 피하고 차에 올라타더니 천천히 앞으로 몰고 나갔다. 그러나 하필 그때 택시가 길가에서 과일을 파는 상점에 피해를 주었다. 택시가 오른쪽 통로로 돌면서 뒷바퀴로 점포에서 길가에 내놓은 배들을 담은 바가지를 박살 냈던 것이다. 바가지는 깨지고 바가지에 담긴 배 한 개도 부서졌다. 이번에는 과일 상점에서 주인아주머니 나오더니 택시 운전기사와 더욱 격렬한 말다툼을 시작했다.


바구니에는 배 두 개가 들어 있었는데 6천 원이라고 하는 듯했다. 이것은 부전시장 가격이지, 다른 지역에서는 1만 원에 팔리는 배 바구니였다. 과일가게 주인 여자와 다른 상인들까지 나서서 큰소리치는 바람에 택시운전사는 부서진 배를 받아 들고 6천 원을 꺼내어 과일가게 주인에게 내밀었다. 길가에 서서 그 상황의 결과를 기다리면서 보고 있었던 나는 택시 운전사기가 계속 불평하면서 가게주인에게 현금을 주는 장면까지 보고 자리를 떴다.


행인들이 붐비는 좁은 통로에 수많은 노점상들까지 더해서 시장은 활기에 차 있으면서도 아수라장이었다. 여러 골목으로 끝없이 이어진 듯 보이는 작은 점포들을 두리번거리면서 나는 천천히 시장을 거닐었다. 급할 것은 없었고, 배도 불렀고, 구경할 것은 많았다. 시장통 사람들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있고 활기찬 일이다.

그렇게 걷다가 김밥을 사려는 사람들이 가게 앞과 옆으로 긴 줄을 만들어 서 있는 가게를 보았다. ‘명란김밥’이라는 가게였다. 나는 김밥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것이 의아했다. 명란김밥은 필시 명란이 들어간 것일 듯한데 나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김밥이 얼마나 맛있길래 저렇게 줄을 서서 기다릴까.


명란가게 정면에는 MBC ‘오늘의 저녁과 ’‘생활의 달인’이라고 적힌 황금빛 명패가 두 개나 달려 있었다. 그 소문난 김밥 맛을 보고 싶었지만 나는 긴 줄에 서 있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으므로 그냥 마음을 접었다.


부전시장 (7).jpg
부전시장 (6).jpg
부전시장 (8).jpg


2. 부산시민공원


부전시장 북쪽에는 부산시민공원이 있다. 나는 부전시장을 통과한 후 곧바로 부산시민공원으로 갔다. 인터넷에서 지도로 보았을 때는 부산시민공원이 별로 멋있어 보이지 않아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가서 보니까 무척 잘 꾸며졌음을 알게 됐다.


공원 안에는 물이 흐르고 연못이 있었고 분수도 있었다. 시민들이 걸을 수 있도록 황톳길과 모래사장도 있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황톳길과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고 있었다. 황톳길 옆으로 작은 천이 흐르고 있어서 맨발로 걷던 사람들은 바위 위에 앉아서 황토로 지저분해진 발을 흐르는 물에 씻기도 했다. 참으로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공원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컸으며 거기서 뛰거나 걷는 사람이 많았다. 어찌 보면 이 공원은 서울에 있는 올림픽공원에 비해 크기가 훨씬 작지만 꾸며 놓은 것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부산시에서 공들여서 인공적으로 예쁘게 꾸며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 공원으로 올라온 것은 공원을 직접 보기 위함도 있었지만, 이곳을 통과해서 삼광사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숙소로부터 삼광사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인데, 나는 삼광사로 가기 전에 부전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시민공원을 들러서 가기로 계획했던 것이다.


한국에 와서 걷기를 당연시해서 그런지, 걷기에 재미를 붙여서 그런지, 한 시간 정도는 충분히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은 매우 맑고 투명했으며 하늘은 푸르기만 해서 걷기에 좋았다.


20231020_150716.jpg
20231020_150241.jpg
20231020_151232.jpg
20231020_150105.jpg
20231020_150454.jpg
20231020_150939.jpg


keyword
이전 12화중고서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빅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