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mory Jun 01. 2024

손글씨의 미래

디지털 시대의 손글씨 7


1.


이제 디지털 시대의 손글씨 쓰기는 과연 어떻게 될까.

손글씨를 잘 쓰는 것이 여전히 좋기는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그것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손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 나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타이핑'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잠시나마 타자기를 사용했고 이어서 퍼스널컴퓨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쓰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로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다. 글씨 쓰기의 '혁명'으로 인식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더욱 발달하면서 드디어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에서 획일적으로 쓰이는 글자에 익숙한 오늘날 젊은 세대는 확실히 예전에 비해 손으로 글씨를 잘 쓰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학교 교실에서도 이제는 손으로 글씨를 쓰는 대신 컴퓨터나 태블릿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밖에서도 학생들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글을 쓰는 것이 더 익숙하다. 그들은 손으로 글 쓰는 행위를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새로운 인류다.


그러나 최근에는 태블릿이나 컴퓨터로 기록하는 것보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의 학습효과가 더 높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스크린을 보면서 키보드에 타자를 치는 것보다 종이에 손글씨를 쓰는 것이 뇌에 더 자극을 주고 학습능력도 더 높여준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연구 결과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쓰기의 속도나 기록의 효율성이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교실에서 학습을 위한 기록에 관한 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해 손글씨를 하는 동안 굳이 뇌파 등을 연구하지 않는다 해도 알 수 있을 듯하다. 경험적으로 생각해 보면,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자판기에 쓰는 것에 비해 꽤 공을 들여야 한다. 비과학적인 경험에 불과하지만, 시간과 공을 들이는 만큼 머리에 남는 것도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어딘가를 찾아갈 때 자동차를 타고 갔을 때보다 걸어서 갔을 때 더 많은 기억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마찬가지라 할지라도 걸어서 간다면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느낌을 축적하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기억이 더 오래 남게 될 것이다.




2.


소설가 조정래는 아직도 손으로 원고지에다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그는 200자 원고지에 손으로 쓰는 글자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소설을 쓰느라 사용한 원고지가 높게 쌓여 전시된 것을 본 적이 있다. 작가 특유의 글씨로 원고지에 적은 그 아날로그 종이 탑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역사적 유물이 될 정도다. 원고를 컴퓨터에 쓰면 편집이 간편하고 쓰는 속도가 빨라질 법도 한데, 오래된 습관으로 인해 그는 손으로 쓰는 것을 지속한다. 평생 원고지에 글을 쓴 분이니까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작가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글을 쓴다. 그런 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할 이유는 없다. 작가는 자기 편한 대로 글을 쓰면 된다. 원고와 기록이 중요한 목적이지, 손으로 쓰든 컴퓨터로 쓰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만 글자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인식은 디지털 시대에 낯설다. 종이에다 손으로 쓰는 것에 비해 컴퓨터에서 적은 글자는 확실히 매우 쉽게 쓰이고 매우 쉽게 지워진다. 컴퓨터에서 우리는 매우 빠르게 썼다 지우기도 하고, 얼마든지 빠르게 복사도 하고 이동도 하고 붙여 넣기도 한다. 종이라면 컴퓨터에서처럼 함부로 지우고 복사하고 붙여 넣기를 할 수 없다. 타이핑을 빨리 하는 사람은 말하는 속도와 비슷할 정도로 또는 그것보다 더 빨리 글자를 작성한다. 그래서 글자 쓰기에 관한 정성은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확실히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글자를 하나하나 공들여 쓰지 않는다고 해서 '글'을 엉망으로 쓴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그 둘은 전혀 다른 문제로 분화하고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사실은 예전에도 그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오늘날 특히 '글자 쓰기'와 '글쓰기'는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글씨를 잘 쓴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3.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디지털 문자로 동일해 보이는 글씨를 쓰는 현실을 과거 선비들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에게는 똑바로 앉아서 벼루에다 먹을 가는 것부터, 종이 앞에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까지 모두 글씨를 쓰기 위한 예의였고 법도였다. 글씨 쓰기는 어쩌면 자아의 숭고한 존재 의미이기도 했다. 그것은 글씨와 글자를 통한 기록을 넘어 사회문화적 규범과 품격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글씨 쓰기 자체에 목숨을 걸고 예술적 행위로 추앙받는 일도 많았다. 지금은 그런 것이 일부 예술가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지만 과거에는 거의 모든 식자층에게 그것이 요구되었다. 그것은 식자층의 문화적 규범이자 윤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 들여야 했던 시간과 노력은 고스란히 사라지는 시대가 왔다. 붓과 먹과 먹물과 한지는 일부 서예 애호가가 아니고서는 더 이상 널리 사용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우던 '붓글씨 쓰기' 수업도 사라졌을 것이다. 그 대신 타이핑 방법을 배우는 수업과 컴퓨터 지식을 가르치는 수업이 생겼을 듯하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곧 예전의 '글씨 쓰기' 수업과 같다. 그러나 '글쓰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개성을 잃어버린 디지털 글자들 앞에서 글자마다 생명을 불어넣으려 했던 옛 선비들의 노력은 이제 과거로 묻혔다. 시대가 변하여 붓과 벼루와 연필과 펜은 점차 사라지고, 우리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에 더욱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서예도 손글씨도 점차 옛 문화로 변하고 있다.



4.


디지털 시대에 손글씨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는 문화는 어떻게 변화하는 것일까.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종이와 펜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유용성은 계속 존재하고 우리는 그 간단하고 우아하고 편리하고 신속한 존재를 잊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그 아날로그적 존재를 그리워하고 보존하려는 사람들은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어릴 때부터 손글씨를 배우고 익히고 발전시킨 사람들이 많으므로 손글씨에 대한 중요성을 여전히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손글씨에서 디지털 글자 쓰기로 전환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미래에 손글씨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붓글씨가 점차 예술가들과 동호회 사람들에게만 남는 것처럼,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와 LP와 CD 등이 일부 애호가들에게만 유물처럼 소장되는 것처럼, 손글씨도 점차 일부 종이와 연필을 사랑하는 예술가와 애호가들에게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전환기를 사는 사람으로서, 또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화되는 과도기에 사는 사람으로서 여전히 손글씨가 중요하고 간편하고 편리하다는 것을 믿는다. 손글씨가 필요 없고 쓸모없고 간직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손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여전히 부럽다. 특히 손으로 정성껏 쓴 편지를 보면 프린터에서 나온 편지와는 다른 애틋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손글씨를 통해 학습능력이 특별히 증대된다거나 손글씨에 인성이나 품성이 담겨 있다는 식으로 손글씨의 가치를 과장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전통시대에 붓글씨와 손글씨가 기록의 방법을 넘어 사회문화적 가치와 법도와 규범으로 작용했지만, 그것은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오늘날 손글씨는 그저 기록의 방법일 뿐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여전히 컴퓨터와 함께 종이와 펜을 사용하므로, 손으로 글씨를 예쁘게 잘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거기에다 과장해서 가치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누군가 손글씨의 미래를 묻는다면 나는 매우 비관적으로 본다고 말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훗날의 이야기이고, 우리는 아직 전환기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이지만 그 과정은 불확실하다. 따라서 과거처럼 큰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손글씨를 빠르고 예쁘게 잘하는 것은 여전히 편리하고 부러운 일이다. 그러나 해 저물어 지는 꽃처럼 손글씨는 점차 사라지는 기록의 역사로 자리 잡게 될 듯하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LP, CD, 그리고 종이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