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 집도 마찬가지였다. 싸리나무를 엮어 세운 담이 있었고, 그 사이에 난 대문 없는 입구로 들어서면 꽤 넓고 평평한 마당이 있었다. 왼편에는 외양간이 있었고, 정면에는 제법 반듯한 돌들로 쌓아 올린 축대가 있었다. 축대 가운데 부분에 있는 돌계단 네 개를 오르면 그 위에 초가집이 우뚝 서 있었다. 주춧돌이 있었고 그 위에 나무 기둥이 서 있었으며 그것들을 잇는 마루가 있었다. 언제 지었는지 모를 아주 오래된 집이었다.
마루 양쪽에는 방이 하나씩 있었다. 왼쪽 방은 안방 오른쪽 방은 건넌방이었다. 안방 왼쪽 옆에는 부엌이 붙어있었고, 부엌 안에는 큰 솥이 놓인 부뚜막과 나무를 때는 아궁이가 있었다. 안방과 부엌 사이에는 작은 문이 있어서, 부엌에서 준비한 음식과 작은 상을 그 문을 통해 들여보낼 수 있었다.
내가 갔던 때는 겨울이라 그랬는지 안방 아궁이에만 불을 때어 사용했고 대청 건너에 있는 건넌방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격자무늬로 만들어진 나무살에 한지를 바른 방문은 그리 크지도 높지도 않아서 어른들은 방을 드나들 때마다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드나들어야 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겨울에 큰아버지나 고모네 집 건넌방에는 누에를 키운다고 했다. 나는 방안에 이상한 벌레를 키운다고 해서 괜히 겁이 났다. 나는 그때 누에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그저 벌레들이 방안에 있다고 하니 그 방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고모 뒤를 따라서 겨우 한두 번 그 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방바닥에 놓인 잎사귀들만 보았을 뿐이다.
큰아버지 집 외양간에는 농사를 돕는 누런 소가 한 마리 있었다. 나는 커다란 소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도 처음이었으므로 겁이 나서 가까이 가지 않았다. 큰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소가 먹을 여물을 끓였다. 그는 마른풀 끓인 것 같은 것을 여물통에 잔뜩 부어주었고, 누런 소는 나무 막대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하얀 김이 나는 여물을 먹었다. 큰아버지가 어느 논 또는 밭에서 일하는지 본 적은 없지만, 그는 소가 여물을 먹고 난 후에 소를 끌고 나갔다.
지경마을의 초가집은 거의 모두 비슷한 구조였다. 똑같은 싸리나무 담, 대문이 없는 널찍한 출입구, 평평한 흙 마당, 주춧돌 위에 나무 기둥과 초가집, 허약한 한지로 바른 키 작은 여닫이 나무 문 등이 모두 같아 보였다. 그 집들 뒤에는 작은 뒷마당이 있었고, 그 뒤로는 조금 가파르게 올라야 하는 낮은 산이 버티고 있어서 북풍을 막아주는 듯했다.
지경 동네는 그야말로 배산임수 지형이라, 거의 일자로 이어진 집들 뒤에 제법 가파른 산이 있었고, 집 앞에는 버스와 소가 끄는 마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넓은 흙길이 이어졌다. 그 길이 마을을 다니는 유일한 도로였다. 도로 옆에는 제법 넓은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초가집을 돌아서 가든 대청마루에 있는 뒷문으로 나가든, 뒷마당으로 가면 작은 장독대가 있어서 거기에 항아리들이 있었으며, 다른 한 구석에는 나무판자들로 지어진 뒷간이 있었다.
뒷간에 가는 것은 큰 고역이었다. 그 당시에 서울에서는 변소라고 불렀던 곳이지만 시골에서는 뒷간이라고 했다. 아직 화장실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던 듯하다. 말 그대로, 변소가 화장하는 곳은 아니니까. 뒷간은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막아놓은 곳이어서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판자 사이로 찬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밖에서 뒷간 안이 보이지는 않았다. 낮에 바깥에서는 뒷간 안이 잘 보이지 않지만 뒷간 안에서는 바깥을 잘 볼 수 있었다.
나무로 된 발 받침대 사이에 뚫린 공간으로 똥을 눠야 하는데, 그 안을 보면 겨울이라 얼어붙은 똥이 뾰족하게 탑을 쌓고 있었다.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질겁했지만 그것도 곧 익숙해졌다. 익숙해졌을 뿐 아니라, 오줌을 눌 때마다 나는 가능하면 그 탑 정상 부분을 조준해서 똥으로 쌓인 탑을 무너뜨리려는 목표를 가졌고, 그 목표가 조금이라도 이뤄지면 쾌감을 느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춥기는 했지만 차라리 겨울이라 뒷간에서 냄새가 덜 나고 파리나 다른 벌레들이 없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도로 옆 시냇물은 어린 나에게 시원하게 넓은 편이어서 아마 20여 미터 정도는 됐을 것이다. 겨울인데도 시내 가운데로 약간의 물이 이리저리 휘어져 졸졸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있었고, 시냇가에는 작은 조약돌들이 많았다. 추운 날에는 시냇물 위에도 얼음이 얼 때도 있었으나 그 아래로는 여전히 물이 흘렀다. 겨울이라 차가운 시냇물에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시냇물 중심으로 들어간다면 무릎까지 빠질 만큼 깊어 보였다.
시냇물 건너편은 거의 다 밭이었는데 특히 인삼 밭이 많았다. 인삼은 재배 기간이 매우 길어서 수확하는 데 6년이나 걸린다고 했다. 인삼은 햇빛을 싫어하는 작물인지라, 넓은 인삼밭에는 작은 지붕처럼 생긴 나무 구조물들이 잔뜩 설치되어 있었고 그 위에 검은 가림막이 처져 있었다.
소와 사람이 밭으로 오가기 위해 마을에는 시냇물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가 두 개 있었다. 그중 큰아버지 집에서 가까운 나무다리는 가운데가 박공 모양으로 내 키보다 높이 솟아올라 있었는데, 폭이 2미터도 되지 않아 보이는 좁은 다리에 난간이 없어서 나는 다리를 건널 때마다 옆으로 떨어질까 조심스러웠다.
8.
큰아버지 집에서 백 미터 정도 내려가면 시내를 따라 길이 오른쪽으로 휘어진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매우 오래된 당산나무가 서 있었고 그 나무 옆에는 꽤 큰 서낭당이 있었다. 큰아버지는 서낭당이 마을을 지켜주는 신이 사는 집이라고 했는데, 동네 아이들은 서낭당 안에 상여가 있다면서 가까이 가지 않았다.
상여는 보통 때는 쓸 일이 없지만, 동네 사람이 죽었을 때 장례용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상여에다 시신이 담긴 관을 싣고 가는 장면을 영화나 TV에서 본 적이 있어서 나는 상여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서낭당이 있는 곳에 마을의 전설이 있는 법이다.
시냇물이 흘러가다가 휘어지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흙을 파냈기 때문에 그곳 시냇물은 저절로 매우 깊은 곳이 되었다. 동네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그곳은 어른 키보다 깊은 곳이어서 빠지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과거 언젠가 그곳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빠져 죽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옆으로 몇 번 지나다녔는데, 그때마다 서낭당에 있는 상여와 그 깊은 물에 대한 공포가 떠올라 몸서리치면서 달음박질쳐서 지나갔다.
깊은 시냇물과 그곳에서 빠져 죽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영혼의 불빛에 관한 것이다. 지경의 아이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캄캄한 밤에 밖으로 나가면 이따금 시냇물 위에 파란 불빛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작고 파란 불빛들은 반딧불과는 다르다. 대방동에서도 반딧불을 본 적이 있으므로 나는 반딧불이 파랗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밤중에 길을 헤매는 사람이 있을 때 홀연히 파란빛들이 나타나서 떠도는데, 길을 잃은 사람이 그 빛을 따라가면 조금 전에 말했던 물 깊은 곳에 이르게 된다. 어둠 속에서 오직 파란 불빛만 쫓아가는 사람은 길이 휘어진 곳에 이르러 귀신에 홀린 듯이 그 깊은 물에 빠져 죽게 된다.
지경의 아이들은 물 위에 떠도는 파란 불빛이 과거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이라고 했다. 그들이 귀신이 되어 밤이면 시냇물 위를 떠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시냇물 위에 파란 불빛이 떠도는 것을 보게 될까 봐 무서웠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두메산골 시골에 밤이 찾아오면 춥기도 했지만, 너무나 어두워서 무서움이 많은 나는 감히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겨울에 산골 마을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서울에서는 밤에 전깃불을 켜고 텔레비전이나 책을 보고 라디오를 듣고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도 있지만, 시골은 그런 문명의 이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밤이 오면 사위는 불빛 하나 없이 그저 칠흑처럼 캄캄하기만 했고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저녁밥을 지어먹었던 부엌 아궁이에다 나무들을 잔뜩 태워서 구들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나무가 한창 타올랐을 때는 구들장이 너무 뜨거워서 그 위에 누울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시골 사람들은 이른 저녁 식사 후에 뜨거워진 구들장 위에 앉아서 희미한 호롱불을 켜놓고 긴긴밤을 보내야 했는데, 너무나도 심심하였으므로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지루한 대화를 아주 느리게 나누었다. 초가집 얇은 한지 문 바깥으로는 북풍 찬 바람이 휘휘 불어대고 온 동네는 캄캄한 어둠과 깊은 적막 속으로 잠겨 들었다.
호롱불이 흔들리는 희미한 방 안에서 사람들은 자려고 눕기 전까지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천근처럼 무거워진 적막을 깨고 허공에 불쑥 내미는 말소리와 헛기침 소리, 곰방대에 담긴 재를 화로에 탁탁 털어내는 소리, 화로를 뒤적거릴 때마다 잿빛으로 서서히 타들어가던 불씨가 돌연히 붉은 기운을 내밀면서 안간힘을 쓰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방에 누운 채 호롱불을 바라보는 내 가슴에서 콩닥거리는 심장소리와 코로 내쉬는 숨소리가 들릴 만큼 너무나 조용했으며 시간이 멈춘 듯 아주 아주 지루한 밤이었다.
한없이 깊은 적막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이들은 아무 할 일도 없었으므로 무심히 호롱불을 바라보거나 구들장 위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잠이 들었고, 어른들도 쓸데없이 화롯불만 뒤적거리다가 이내 호롱불을 끄고 아이들 옆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빈 마당에는 작고 하얀 눈송이들만 바람에 날리고 외양간에 있는 소는 이따금 머리를 흔드는지 목에 달린 방울 소리가 났으며 지경 마을의 밤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