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거나 타거나 (23)
1.
“산으로 사냥하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사냥이요?”
“그래. 꿩 사냥.”
하늘이 매우 청명하고 온화했던 어느 겨울날, 지경에 있는 어른들이 사냥을 간다고 했다. 산으로 가서 동물을 잡을 건데 꿩이나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동네 아이들과 뛰어노는 것밖에는 딱히 할 일도 없었던 나는 따라가겠다고 했다.
사냥은 TV에서나 보았던 것이라, 내가 직접 사냥에 따라나선다는 것이 어쩐지 근사하게 들렸다. 어른들 대여섯 명이 사냥을 위해 산으로 가리고 했고, 아이들은 나와 다른 아이 한 명만 따라나섰다. 지경 마을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거기서 내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냥을 위해 산으로 가기로 한 어른들이 커다란 사냥총을 가지고 왔으므로 나의 마음까지 들뜨는 듯했다. 그런 장총을 TV에서 본 적은 있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어른들 가운데 비교적 나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서른 즈음의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나의 친척은 아니지만 내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면서 나에게 자주 웃으면서 농담도 했다. 그 아저씨가 나에게 사냥하러 같이 가자고 말했으므로 나는 당연히 그 아저씨를 따라가겠다고 대답했다. 그가 나에게 들어보라고 쥐어준 사냥총은 매우 크고 묵직했다.
약간 어수선하게 어른들이 떠들면서 사냥총까지 점검한 후 드디어 우리는 모두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산비탈이 가팔라서 나는 헉헉거리면서 사람들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어른들을 따라가느라고 잰걸음을 걸었던 나는 곧 덥다고 느끼면서 이마에서는 땀이 날 지경이었다. 드디어 고개 하나를 넘고 어느 정도 산 위에 오르자 비교적 완만한 비탈로 변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언덕 위에 섰을 때 서늘한 바람이 간간이 불어와서 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혔다.
겨울 오후의 산은 매우 조용하고 삭막해 보였다. 며칠째 날이 맑고 따뜻해서 그런지 산에는 눈이 하나도 없었고 땅바닥에는 무수히 많은 마른 낙엽들이 두툼한 이불처럼 깔려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폭신 거리는 낙엽들이 밟히는 소리만 고요한 산중에 크게 퍼지는 듯했다.
사냥을 겨울에 가는 것은 멀리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나무에 잎사귀들이 많아서 멀리 볼 수 없다. 여름이라면 산은 온통 초록으로 뒤덮여 있을 것이다. 겨울나무들은 그 많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헐벗은 채 앙상하고 허연 몸뚱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풍성한 여름 나무들과 달리 겨울나무들은 매우 쓸쓸해 보였다. 가릴 것 없는 나무들과 거무스름한 바위들 사이로 이따금 서늘한 바람만 휘이익 소리를 내며 스쳐 지나갔다.
산에 오른 사냥꾼들은 두세 팀으로 갈라섰다. 나는 그저 앞서 말한 아저씨 뒤만 따라다녔다. 사냥을 간다길래 산에 올라가면 동물이 많을 것이라고 상상했지만 한참을 걸어도 그 넓은 곳에서 움직이는 동물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아저씨는 계속 앞으로 걸었고 나는 아저씨 엉덩이와 다리만 보고 부지런히 따라갔다.
사냥이라는 것이 그냥 총을 쏴서 동물을 잡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렇게 넓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열심히 걷고 뛰는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괜히 사냥하러 왔다고 후회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아저씨 꽁무니만 따라다니기 바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아저씨가 갑자기 우뚝 섰다. 그는 계속 따라오던 나를 돌아보고 입으로 쉿 소리를 내면서 조용히 하라고 했다. 나는 드디어 뭔가 벌어지나 하면서 긴장하여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는 급히 사냥총을 어깨에 장착하고 전방을 겨냥했다. 총구가 향하는 곳은 건너편 언덕이었다. 내 눈에는 앙상하고 허연 나무들과 다양한 갈색 낙엽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굉장히 큰 소리가 났다. 아저씨가 총을 쏜 것이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나는 깜짝 놀랐다. 총소리는 적막했던 산비탈 사이로 널리 퍼져나가는 듯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본 총소리였다. TV나 영화에서 보았던 총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실제로 듣는 총소리는 너무나 커서 고막을 막아야 할 지경이었다. 총을 쏜 후 아저씨는 잽싸게 비탈 아래쪽으로 뛰어갔다.
그가 뛰기 시작하기 바로 전에 갈색 납엽들만 쌓여 있던 것 같았던 건너편 언덕에서 꿩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아니. 약간 솟아올라서 날아가다가 다시 착륙했다. 꿩은 닭보다 많이 날아가지만 오래 날지는 못한다고 했다. 나는 '드디어 아저씨가 저 꿩을 잡았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미 예전에 시장에서 꿩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으므로 나는 아저씨의 손에 들릴 꿩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총에 맞아 죽은 꿩이 어떤 모습인지 떠오르지는 않았다.
건너편 언덕을 보면서 완만한 산비탈을 한참 뛰어 내려가던 아저씨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더니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고 총을 어깨에 장착했다. 숨 가쁜 긴장 속에 아저씨를 뒤쫓던 나는 아저씨로부터 좀 떨어진 거리에 있었지만 덩달아 그 자리에 멈췄다. 이번에는 아저씨가 조용히 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가쁜 숨을 참으면서 조용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 순간, 다시 엄청나게 큰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아저씨가 두 번째로 총을 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격도 빗맞은 듯했다. 저 멀리 언덕 위에서 꿩이 다시 솟아올랐고, 이번에는 더 멀리 날아갔다. 언덕 정상 저편 어디론가 내려앉은 듯도 했는데 너무 멀어서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너무 긴장하고 숨이 차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2.
그날 운 좋게 총알을 두 번이나 피한 꿩은 결국 너무 멀리 떠나갔고, 우리는 따라가기를 포기했다.
꿩은 하도 머리가 나빠서 포수를 피해 도망갈 때 머리만 수풀 속으로 처박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자기 눈에 안 보이면 포수도 자기를 보지 못할 것으로 믿는다고, 꿩의 우매함을 지적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때 내가 본 꿩은 머리를 낙엽 속으로 처박지 않았고, 총알과 포수를 피해 무사히 도망갔다.
아저씨는 가파른 비탈에 이르러 낙담한 채 꿩을 따라가기를 단념했다. 꿩이 사라지고 난 겨울 오후의 산으로 다시 적막이 찾아들고 서늘한 바람만 지나갔다. 거친 숨소리와 낙엽 밟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쓸쓸한 공간에 가만히 서 있으려니, 나의 긴장감도 가빴던 숨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아저씨와 나는 그 후에도 한동안 토끼든 꿩이든 잡으려고 산을 헤맸지만 그 삭막하고 넓은 겨울 산에서 우리는 아무 동물도 볼 수 없었다.
어느새 이른 오후 햇살이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고, 나무들 사이에서 조금씩 힘을 잃어가는 듯했다. 우리는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야 했다. 산에는 어둠이 더 빨리 찾아오는 법이니까.
아저씨는 꿩 한 마리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맨손으로 돌아와야 했으므로 허전했을 테지만, 나는 무사히 산을 내려오게 되어서 마냥 기쁘기만 했다. 그날 오후 내가 어떻게 산에서 내려와서 집으로 돌아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지극히 고요하고 갈색 낙엽들만 잔뜩 뒤덮여 있으며 이따금 차가운 바람만 휘젓고 다니는 황량하고 쓸쓸한 빈 산만 머릿속에 깊이 새겨두었다.
그것은 내가 처음이지 마지막으로 갔던 사냥이다. 나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사냥을 해본 적이 없다. 사냥을 다시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주변에는, 그 어렸던 날처럼, 사냥을 하러 가자고 권하는 사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