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문학의 정치적 편향성
1.
지난해 가을 어느 날 오후, 코엑스 빌딩에 있는 별마당으로 갔다. 밤에 친구를 만날 계획이어서 책이라도 읽으면서 기다릴 계획이었다. 별마당 입구에서 다행히 작가 최은영의 소설집을 발견했다.
제목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작년에 그녀의 장편소설 <밝은 밤>을 읽었고, 그로부터 이태 전에는 그녀의 등단작인 <쇼코의 미소>가 실린 소설집을 읽었으며, 이어서 또 다른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까지 읽으면서, 나는 은근히 그녀의 팬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인데, 나는 어느새 그녀에게 약간 꽂혔다.
나는 별마당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작가가 예전에 발표한 단편소설 일곱 편을 모은 것이다. 친구를 만나러 가기 전에 일곱 편을 모두 읽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나는 가능하면 빠르게 책을 훑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 나오는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빠르게 읽기를 중단하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신경을 집중하는 정독 모드에 돌입했다. 그만큼 이 소설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묘한 멋과 맛을 가지고 있다. 어떤 문장들은 단어 하나에도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고, 앞뒤 맥락을 따지기 위해 다시 뒤적거려야 했다. 소설의 군데군데에다 내용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감취 둔 것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2.
소설은 젊은 여성의 생리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되는데, 비상한 관심을 끌 만한 장면이 나온다. 여성에게만 있는 생리 문제를 첫 소재로 삼으면서 나는 그녀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으로 이끌리기 시작했다.
대학 강의실에 참석한 주인공은 희원이라는 이름의 20대 중반 여성.
그녀는 보통 생리 첫 이틀간 출혈이 심하지만 사흘째에는 출혈이 거의 없다. 그런데 그날은 생리 사흘째인데도 출혈이 과다했고 강의실에 앉아 있는 그녀의 청바지가 젖을 정도가 되었다. 남자로서 여성의 생리에 관해 읽는 것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작가는 성인이라면 이런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고 또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글을 진행하는 듯했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 나는 작가의 진실성과 사실성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이 생리 시 몹시 아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생리가 여성에게 구체적으로 또 일상에서 어떤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가를 이해하는 남성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남성은 그것에 관해 듣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들었다 해도 상상하기 쉽지 않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남성들도 최대한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생리 때문에 여성이 남성 모르게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얼마나 클까. 몸의 고통과 정신적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생리대와 팬티와 바지나 치마 등 옷까지 모두 신경을 써야 한다. 생리 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아무리 예측하면서 다닌다 해도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작품 중 주인공처럼 ‘위기’를 겪게 될 때도 있다. 인류의 절반에게는 그 고통을 이해시키기도 알리기도 어려운 게 문제의 핵심일지 모른다.
희원의 생리 고통에 관한 수 페이지를 읽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주인공이 불가피하게 당하는 불편 때문이지만, 정확히 왜 슬퍼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쉽게 감동하고 눈물이 흔해진다.
주인공 희원은 이미 젖은 바지를 남들에게 보일 수는 없으므로 강의가 끝나도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희원은 또 다른 주인공인 ‘젊은 여성 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거기서부터 희원과 여성 강사의 관계가 시작된다. 그녀는 희원이 선택한 영문학 수업을 가르치는 강사다.
이미 과거에 대학에 입학했던 희원은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단하고 은행에 비정규직 직원으로 취직했다. 은행에서 수년간 일한 후 "공부를 하고 싶어서" 희원은 대학으로 편입했다. 거기에서 금요일 오후 강의 시간에 만난 사람이 ‘젊은 여성 강사’이다. 이 강사는 페미니스트 작가로 알려진 버지니아 울프에 관한 연구로 삼 년 전에 영문학 박사 학위를 땄으며, 그전에도 자신의 생애를 소재로 수필집을 출판한 적이 있다.
강사는 친절하게도 희원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준다. 이후 희원은 강사에 관심을 갖고 그녀의 논문들과 저서를 읽으면서 강사가 자신과 같이 ‘용산’에서 자랐음을 알게 된다. 희원도 어린 시절 내내 용산에서 자랐다. 그들은 어릴 적 언젠가를 공간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용산에서 말이다.
이 소설은 2009년 ‘용산참사’를 은근히 배경으로 삽입하고 있다. 강의에 참여한 학생들의 토의시간에 한 학생의 수필에서 ‘개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 과정에서 (거기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를 자꾸만 되묻는 장면이 나온다.
‘개발’과 ‘떠나간 사람들’에 관하여 작가는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작중 인물의 정치적 편향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채 사람들이 말하는 모호한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작가는 용산참사를 에둘러 지적했을 뿐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구체적인 언급은 피해 간다.
3.
소설은 이어 또 다른 여성 문제를 파헤친다.
학기말에 이르러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갔던 식당에서, 희원이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가려는 희망을 밝혔을 때 젊은 여성 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공부는 대학원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는 거, 희원 씨도 아시죠?
그 말을 들은 희원은 자신이 공부를 잘할 능력이 모자람을 강사가 에둘러 지적했다고 생각하고 매우 슬퍼한다. 다른 학생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어느덧 자신의 ‘빛’이자 ‘등불’이 되고 있는 ‘젊은 여성 강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희원은 수업 중에 학생들이 강사에게 무례하게 말하고 행동한 것을 비난하면서 말했다.
“무례한 애들, 선생님이 젊은 여자 강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강사가 대답했다.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 씨가…”
희원은 강사의 말을 깊이 되뇌었다.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망설이다가 긴 숨을 뱉었는데 흰 김이 찬 공기 안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그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 종종 상상해보곤 했다.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그다음에 그녀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희원은 어느덧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 강사가 되었다.
그리고 구 년 전 자신이 그토록 따르고 싶었던 ‘젊은 여자 강사’에 관하여 회상한다.
“구 년 전에 누구보다 똑똑하고 강해 보였던 그녀가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글이나 공부와 무관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얼어붙게 한다.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희원은 자신이 강사의 저서에 적은 내용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녀가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에…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 그녀는 썼다…. 더 가보고 싶었다… 나도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선생님.
어느 날, 나는 그녀를 마음속으로 부르고 긴 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때 내가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겨울은 사람의 숨이 눈으로 보이는 유일한 계절이니까.”
겨울은 사람의 숨이 눈으로 보이는 유일한 계절이니까.
이 문장이 마음에 콱 박혀드는 듯해서 여러 차례 되뇌었다.
구 년 전 희원이 따르고자 했던 선배인 ‘젊은 여성 강사’는 어느새 사라졌다. 지금은 어쩌면 희원이 그 젊은 여성 강사의 자리에 서 있다. 그 여성 강사가 투명 망토를 입은 기분을 느끼고 “더 가보고 싶었다”고 썼던 것처럼, 희원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인데, 그것을 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또는 누구인가.
작가는 영특하게도 소설에서 그런 대상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똑똑한 작가는 이런 식으로 글을 쓸 때가 많다. 작가는 두루뭉술하게 적어놓고 판단과 해석과 결정을 독자에게 맡기려고 한다. 언제나 여운을 남기려고 한다. 창작에 있어서 이런 방법이 항상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분명히 학술적 이론서가 아닌 소설이나 예술작품이 갖는 특징 중 하나이다. 최은영은 스스로 명백한 허위나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사건이나 상황의 진실을 전달하려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었지만, 도대체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이었을까.
4.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마치 끝이 희미해지는 길을 힘겹게 헤치고 나온 것처럼 한동안 먹먹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힘들게 나왔다 해도 여전히 맑고 밝은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슴이 답답했다. 어디에서 시작된 문제가 어디로 발전하고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저 대학 여성 강사에 대한 차별적 에피소드를 비판하는 페미니즘과 용산참사를 둘러싼 정치적 진실을 향한 편향에 관하여 작가와 작품이 전하는 감동만 내 가슴에 진한 여운으로 남았다.
최은영이 지금까지 쓴 소설은 대체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녀의 소설에서 남성은 뭔가 불완전하고 문제가 많은 인물들이며, 서사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주로 여성이 이야기를 이끌고 여성이 문제를 제시하고 이끌어간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여성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하는 것을 밝힘으로써 최은영은 남성 중심의 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여성이 문제시되지만, 또 여성이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지만, 여성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사회는 관대하거나 공정하지 않다. 그것이 최은영이 드러내는 페미니즘인지 또는 그녀의 한계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나는 어느새 그녀가 은근히 고발하는 사회적 모순을 점차 이해하고 그녀가 글을 통해 드러내는 미묘한 고발과 주장에 동조하게 된다.
물론 그녀가 사회적 이슈나 모순에 관해서만 천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인간이 갖는 위선과 이기심에 관해서도 정밀하게 추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타심인 줄 알았더니 이기심이었다거나 진실을 표명하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더 큰 거짓을 가리기 위해 진실을 이용하는 것 등 말이다. 그러한 미묘한 결의 흐름을 그녀는 진지한 성찰과 노력을 통해서 문장으로 내밀고, 독자들에게 반성과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용산참사>
2009년 1월 20일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철거민들과 전국철거민연합 회원들이 재개발 보상을 요구하면서 이 건물을 점거 농성 중이었다. 경찰은 건물로 진입하여 이들을 진압하려고 했다. 철거민들과 전철연 회원들은 화염병과 새총형 투석기 등으로 경찰에 저항했는데, 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6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참사의 책임소재에 관해 '불법 과격시위에 대한 적법한 대응'이라는 주장과 '과잉진압'이라는 주장이 맞부딪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공권력이 과잉진압을 했음을 인정했다.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