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환시대에 작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름지기 한국의 작가라면,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을 것이다. 하필 요즘 한국사회가 이렇게 되어서, 그녀가 쓴 ‘소년이 온다’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소위 ‘증언문학’을 포함한다.
한국에서 벌어진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을 소재로 삼고 그 사건에서 고통을 겪는 개인들을 매우 적나라하게 추적하고 묘사한다. 한강은 글을 통해 정치적 무자비한 폭력을 문화적 예술적 비폭력으로 해석하여 재전개하고 독자들을 문학적 감성으로 물들인다.
한강의 르포문학에 앞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르포르타주 문학 작품들이 있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기록한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스페인 내전을 경험한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중국 사회주의 혁명을 그린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 등이 그것들이다.
한국에서도 작가 한강에 앞서 1980년 광주항쟁을 묘사한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마저 옴진리교 사린가스 유포사건을 취재하여 쓴 [언더그라운드]가 있다.
르포문학은 종종 문학과 인문학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듯하지만, 작가가 썼다면 문학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거기에는 다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과 허구도 어느 정도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는 2차 대전을 겪은 여성들의 인터뷰를 모아 쓴 인터뷰 소설이다. 이 논픽션소설은 폭력과 광기의 시대에 대한 고찰과 섬세한 울림을 담은 기념비적 작품이기 때문이다.
2.
한국에서 현재 벌어지는 상황은 현지에 있는 작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증언자가 될 수 있는 순간이다. 이런 순간을 정확히 관찰하고 묘사하고, 시대의 비애와 위기와 극복을 겪고 나누는 관련자들의 고민과 고통을 글로 작성할 수 있다면, 작가에게는 축복받은 시간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지난 3일부터 열흘간은 존 리드가 목격한 1917년 러시아의 열흘에 못지않은 긴박한 역사적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극적으로 통과시켰다. 국회 앞에는 백만 명이나 모여서 대통령 탄핵을 부르짖었다. 어떤 이는 박근혜 탄핵 때 언급됐던 ‘촛불혁명’에 빗대어 이번 시위를 ‘응원봉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고, 그런 표현에 대한 선택은 자유다.
중요한 것은 그런 용어가 나올 정도로 탄핵 시위에 102030 여성들이 가장 주된 세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은 이제 정치에서 주역으로 나서고 있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정치적 권력은 극도로 부족하지만, 정치개혁을 향한 열망은 가장 뜨겁고 거대하다.
3.
작가 또한 이런 변화를 민감하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면, 문학에서도 이렇게 젊은 여성들이 사회 물정을 모른다거나 단순히 순수한 사랑에 매몰되고 있다거나 이기적이라고 하거나 사치스럽고 소비지향적이고 속물적이라고만 묘사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감정을 쌓고 표출하는 방식, 교육을 받고 지식을 쌓는 방식, 이성과 자녀와 가족을 바라보는 방식, 기업과 정치를 바라보는 방식, 삶의 행복을 규정하고 추구하는 방식 등은 기성세대에게 친숙하지 않다.
그러므로 기성세대 작가들은 그들을 작품 소재로 삼을 때 또는 그러기 위해서 그들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문학의 본질이라고 믿는 작가라 해도, 또는 오로지 순수문학을 추구한다 해도,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순수문학 작가라고 해도 이렇게 격변하는 사회를 직관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문학적 모티브를 얻는 순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수년 또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역사가들은 2024년을 어떻게 기록할까.
또 작가들은 이때를 기억하여 무엇을 쓰게 될까.
이런 기회를 통해 가까운 미래에 또 다른 한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