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21일 토 맑음 (1)
1. 다시 낙동강
한 주일 전에 동래읍성 축제와 낙동강구포나루 축제에 참석해서 좋은 느낌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면서 이번 주말 축제에도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그곳으로 갔다. 어제 부산대 앞에서 열린 라라라페스티벌은 기대에 못 미쳤는데, 결과적으로 오늘 가서 보았던 축제들도 예상에는 못 미쳤다.
그래도 오늘 오후에 다시 낙동강을 보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폭이 넓은 강을 바라보는 것은 늘 우리의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다.
정오 넘어서 서면 식당가에서 처음으로 마라탕을 먹어보았다. 한국에서 도대체 언제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중국 음식과 일본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예전에 비해 많아졌다. 10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보지 못하던 현상이었다.
마라탕이 매운 음식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먹어 보니 그 집만 그런지 모르지만 기대했던 것에 비해 맵지는 않았다. 차라리 고추 짬뽕이 더 맵다. 다만 마라탕에는 채소가 많이 들어가서 중국 음식에서 풍기는 느끼한 맛은 덜했다.
든든한 식사 후에 나는 사상구 낙동강에서 열리는 축제에 가기로 했다. 지난주에 나는 구포가 서면에서 서쪽에 있다고 적었었는데, 사실 구포는 서면에서 서북쪽에 있다. 오늘 갔던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이야말로 서면에서 서쪽에 있다.
나는 서면역에서 2호선 지하철을 타고 덕포역까지 갔으며, 거기서 삼락생태공원까지 걷기로 했다. 지난주의 경험을 생각할 때, 어쩌면 사상역에서 축제가 열리는 삼락생태공원으로 무료 셔틀이 다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은 불확실했으므로 나는 공원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덕포역까지 가서 걷는 길을 선택했다. 나중에 보니까 오늘 축제에는 무료 셔틀이 없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덕포역보다 그 바로 전 정거장인 사상역에서 내리는 게 낫었다. 축제 장소에서 나올 때는 사상역으로 걸어왔으니까.
한 마디로 하자면, 사상구의 낙동강 축제는 20회라고 하는데 구포나루 축제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날씨가 맑은 토요일 오후인데 참석자 숫자도 지난주에 가보았던 축제들에 비해 적었다. 축제 분위기도 지난주에 비해 떨어졌다.
그러나 삼락생태공원이 작은 것은 아니다. 이 공원은 낙동강에서는 구포나루보다 조금 더 하구에 있다. 이곳에서도 축제라서 수많은 천막 부스들이 차려져 있었고, 많은 먹거리와 체험학습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이미 지난주에 그런 부스들의 내용을 보았으므로 거기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고, 그저 낙동강을 먼저 보고 싶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은 북한에 있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각각 790km, 548km로 1위와 2위를 차지한다. (북한에서는 압록강 길이를 803km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긴 강이 낙동강 (510km), 한강 (494km) 순이다. 그러니 대한민국만 따지면 낙동강이 가장 길고 한강이 2위다. 그런데 강의 너비인 유역으로 따지면 낙동강보다 한강이 더 ‘크다’. 하여간 한강이 서울의 젖줄이라면 낙동강은 영남의 젖줄이다.
서울의 한강과 달리 부산의 낙동강 강변에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없다. 강변에 고층 건물이 없어서 훨씬 자연스럽게 보인다. 강가에 고층 건물을 건설하면 그곳에 사는 사람은 강을 내다볼 수 있어서 좋겠지만, 그 아파트 단지 뒤에 사는 사람들은 강을 보기가 어렵다! 강가에 사는 사람들만을 위한 건설 정책은 옳지 않다. 한강의 강변에 초고층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은, 그런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는 부유층과 특권층의 경제적 이익, 나아가 사회문화적 특권의식만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서울은 사대문 안으로 국한되었다. 그럴 때 한강은 남쪽 변두리에 있는 강이었다. 그럴 때 한강 본류는 주로 서울로 공급되는 상품을 운반하는 교통 길로 이용됐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한여름에는 아이들이 한강 백사장에서 ‘빤스’만 입고 물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강남이 개발되면서 지금은 한강이 서울의 중심인 것처럼 된 것이다. 그리고 강남에다 과도한 국가적 투자를 감행하면서 한국이 '강남공화국'처럼 변질되는 느낌을 준다.
지나치게 강남과 서울 중심으로 발전한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었고,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은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되었다. 여기서 생기는 부작용은 극심하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을 서울공화국, 나아가 강남공화국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오로지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을 지배해 온 지배 엘리트 특권층의 잘못이다.
그러나 부산에서 낙동강은 서울의 한강과 달리 도시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오랫동안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부산 역시 구도심과 신도심이 구별되기는 한다. 구도심이라 하면,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부근, 나아가 서면 정도로 인식되고, 새롭게 가장 현대적 중심지로 각광받는 곳은 광안리와 수영구로 알려져 있다.
근대 이전에 부산은 동래라고 불렸고, 그 동래는 지금의 부산 중심에서 보면 꽤 북쪽에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부산의 중심지는 점차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영도구와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부근으로 옮겨졌고, 서울로 향하는 교통수단이 발전하면서 부산역 일대로 확대됐다. 이후 부산의 중심지는 서면으로 동진했으며, 지금도 동진을 계속하여 수영구로 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산 서쪽에 있는 낙동강 강변 일대는 부산에서는 여전히 퇴락한 지역으로 남았다.
오늘도 나는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하게 매혹적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쓸쓸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붉은 일몰을 배경으로 낙동강 강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억새풀 군락을 보는 행운을 얻었다. 삼락생태공원 축제의 개막식이 오후 5시에 시작한다고 하는데, 나는 3시쯤 그곳에 도착했으며 꽤 많은 시간을 낙동강 강변에서 보냈다.
공원이 매우 넓었으므로 한참 가로질러 걸어가야 낙동강을 볼 수 있었다. 강변에는 맑고 고운 햇빛과 싱그러운 바람이 넘쳐흘렀다. 가을 오후의 풍부한 햇빛과 너울거리는 물빛에 영롱한 은빛 억새풀이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넓고 시원한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시월말 고독한 태양이 서편으로 서서히 지고 있는 강변은 눈물 날 정도로 고즈넉해서 나는 어쩔 도리 없이 한껏 고독을 즐겨야 했다. 공원 남쪽에는 서부산낙동강대교가 강을 가로질러 길게 뻗어 있었다. 구포나루축제에서 보았던 경쾌한 요트는 돌아다니지 않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들을 보는 것은 묘하게 슬프고도 고독한 감정을 자아낸다. 가을이 깊어지고 머지않아 차가운 북풍이 몰아칠 것을 아는 듯 억새풀은 가늘고 기다란 몸뚱이로 마지막 춤을 추고 있는 듯하다. 저렇게 피어난 억새풀은 겨울에 어떻게 지내는가? 겨울에 억새풀을 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낙동강 건너편에서 비치는 가을 오후 햇살이 강물 위에서 방울방울 흔들린다.
5시가 가까워졌을 때 나는 개막식이 열리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무대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고 축제 개막식이 선포되었다. 무대 앞에는 꽤 많은 인파(아마도 1천 명도 넘을 듯)가 줄지어 배치된 의자에 앉아 있거나 주변에 서 있었다. 개막식이면 으레 그렇듯, 마이크에서 고위 인사 소개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동안 나는 무대를 외면한 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한쪽에 마련된 미술 작품과 시들을 감상했다. 모두 부산에 적을 둔 예술가들의 작품들인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에 전시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전시된 여러 시들 가운데 내가 오늘의 장원으로 뽑은 김오남의 시를 옮겨 적어본다.
[풀섶]
김오남
풀잎은 이슬을 털지만
소소리 바람은 분다
살랑거리는 풀잎은
내 마음 속 바람인지
이슬에 반짝이는
햇살과 영롱한 빛은
자박자박 깨어나는 마음
그리움이 자리를 틀고
두근거리는 가슴 속에
서성거리는 그대
주위를 맴돌던 잎들이
일렁이는 바람을 안고
풀섶에 잠이 든다.
(전문. 풀섶은 풀숲의 방언. 나는 이 시에서 2연의 마지막 줄과 3연이 아주 마음에 든다. 나는 그 부분을 여러 번 읽었다. 이런 단어 선택과 표현력은 참 부럽다. 너무 서정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먹을거리를 파는 곳을 둘러보니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지난주 구포나루축제에 비해 먹을거리가 다양하지 않았고 인파도 적었다. 무대에서 고위 인사들의 인사말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직원에게 물었다.
“이후에는 무대에서 어떤 행사가 있나요?”
“가수 공연도 있고… 불꽃놀이도 있지요.”
“불꽃놀이는 언제 하는데요?”
“8시에 해요.”
아직 6시도 채 되지 않았다. 그때쯤 무대에는 어떤 국회의원의 연설이 시작됐다. 우수한 스피커 시설을 마련해서 그런지 넓은 공원 전체에 연설 내용이 크게 울려 퍼졌다. 언뜻 들으니, 낙후된 사상구의 발전을 약속하는 연설인 듯했는데, 나는 갑자기 공원에서 나가고 싶었다. 사상구는 여태 낙후되었는데 도대체 언제 빠르게 발전한다는 말일까.
너무 늦기 전에 부산역으로 가야 했다.
부산역 앞에 있는 차이나타운에서도 축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2. 다시 차이나타운
겨우 2호선 사상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에 올라탄 나는 곧바로 부산역으로 갔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지만 차이나타운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보고 싶었다. 지난주 토요일 저녁에는 부산역광장에서도 밴드 음악 소리가 들리고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다행스럽게도, 부산역 맞은편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축제가 한창이었다. 축제라고 해야 사실은 거리를 따라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홍등이 잔뜩 걸려 있고 길거리에는 즉석 먹거리를 파는 노점상들이 많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차이나타운을 관통하는 좁고 긴 골목에 사람들이 넘쳐흘렀다. 맛있는 먹거리가 있는 곳에서는 음식을 먹으려는 줄이 길었고, 너무 인파가 많아서 앞으로 빨리 갈 수도 없었다. 골목을 따라 줄지어 선 식당들 앞에 수없이 많은 노점상들이 먹거리 장터를 형성하고 있었다.
지난 화요일에 왔을 때 정기 휴무라고 해서 들어갈 수 없었던 식당 ‘신발원’(영화 올드보이가 촬영된 곳)으로 가보았지만 그 앞에는 줄이 매우 길었다. 거기 들어가서 뭔가 먹고 싶었지만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포기해야 했다. 영화 탓이겠지만, 신발원은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식당이다.
그 길을 오가다 약간 지친 나는 저녁으로 겨우 한 구석에 앉아서 탕수육과 무떡을 먹었다. 사람이 많지 않은 노점상이고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있어서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조그만 그릇에 나오는 탕수육은 뻔한 맛이었다. 무떡은 무슨 맛인지 궁금해서 먹어본 것이다. 무떡은 무와 쌀가루를 섞어서 만들었다는데 정말 아무 맛도 나지 않고 그 위에 잔뜩 뿌린 소스 맛뿐이었다.
다시는 먹을 필요가 없다. 무떡.
복잡한 차이나타운은 지난 화요일에 이어 이미 여러 번 오간 셈이다. 나는 부산역광장으로 나왔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광장에 늘어선 부스들은 이미 모두 폐점했다. 거기에서도 어떤 행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밴드 음악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광장 앞 대로 건너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나는 지쳐서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도 많은 도보가 이어진 긴 하루였다.
1만7천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