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와서 이미 여러 차례 축제를 본 결과, 이제는 축제라고 해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가을 들어 주말마다 여러 곳에서 축제가 벌어지는데 어찌 보면 그것은 그 지역 주민들을 위한 축제이고 내용이 비슷한 게 많으며 무엇보다 먹거리가 거의 동일하다. 그래도 여행객에게는 아무 행사도 없는 것보다 축제나 페스티벌이 있는 게 낫다. 쓸쓸한 것보다 사람들이 모여서 들썩거려야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고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감천문화마을이라 해서 별다른 ‘문화적’ 특징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그런 단어는 남용되고 있다. 동네마다 남다른 특성을 내세우느라 애쓰는 것은 좋은데, 작은 전통 소재 또는 주제에다 현대의 인공 기술을 적당히 섞어놓고 그것을 그 지역의 고유한 또는 역사적인 것처럼 내세우는 곳이 너무 많다. 가만히 살펴보면, 거의 모두 역사가 일천하고 지역에서 새로 꾸며낸 것이다. 때로는 아예 역사와 전통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날조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감천문화마을은 오늘날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에 속하고, 무척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문화마을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문화’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동네 주택들의 지붕이나 담들을 알록달록한 색깔로 만들어놓은 게 특징이라는 것 외에 굳이 '문화마을'이라고 부를 만큼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다만 그렇게 거대한 마을 전체를 하나의 수채화처럼 꾸며놓았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마을은 남다른 부산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마을이 매우 가파른 산비탈에 있다는 것이다. 산비탈에 마을이 들어선 것은 부산이라는 도시 자체의 역사적 특징인데, 감천마을은 그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매우 비좁은 골목들이 계단으로 이어져서 줄지어 만들어졌고, 주택들은 위험해 보일 정도로 비탈이 심한 곳에 지어졌다.
아마 이곳을 방문하는 거의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이렇게 비좁은 골목과 가파른 비탈에 지어진 집들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가파른 산비탈에 집들을 지은 것도 신기하고, 지나치게 촘촘하게 붙어 있는 집들도 신기하고, 그 집들 사이로 난 위태롭게 보이는 골목길도 신기하고, 그런 집들에 다양한 색깔로 생동감을 준 것도 신기해 보일 것이다. 그래서 감천문화마을은 어딘가 특별해 보이기도 하고, 한국의 경제발전의 음과 양을 새롭게 느끼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서면에서 감천문화마을로 가려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가다가 자갈치역 다음에 있는 토성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내가 버스 정류장에 갔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절반 이상은 외국인이었다. 겨우 버스를 타고 감천 마을에 도착하여 보니 더 많은 인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외로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마을의 축제라고 해서 일요일이지만 더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었고, 다른 곳에서 열리는 페스티벌만큼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학습 부스들도 조금 개장했다. 일부 한국인들은 고등학교 시절 입었던 검은 교복과 교모 등을 입었고, 한복을 빌려서 입은 젊은 여성들도 많았다.
2) 어린 왕자는 누구 것인데…
감천문화마을에는 다양한 ‘포토존’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어린 왕자’가 있는 곳이다. 생텍쥐베리의 소설에 나오는 어린 왕자처럼 노랑머리와 빨강 머플러와 연푸른 옷 색깔로 꾸민 조각상을 설치해 놓았는데, 이곳이 관광객들에게 대단한 인기였다. 사람들은 그 조각상 옆에 서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길게 섰다.
그런데 어린 왕자와 감천마을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왜 어린 왕자 조각상이 감천문화마을에 있고, 그것이 이 마을의 가장 유명한 특징으로 부각됐을까.
이 마을에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라는 조각상이 설치된 것은 2012년이라고 한다. 원래 이런 조각상을 설치할 때는 이 마을의 전통이나 이 마을에만 있는 고유한 특징과 연관성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약간 조사해 봤지만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침 이 조각상을 만든 작가와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을 찾았는데, 나인주 작가는 감천마을에 이 조각상을 설치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구에 온 왕자와 여우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감천마을에 왔다는 상상을 했죠. 어린 왕자는 호기심이 많고 자꾸 물음을 던지는 존재잖아요. 사막여우는 거기에 답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가죠. 여행에 나서서 감천문화마을에 온 분들이 그렇게 뭔가 묻고 답을 얻었으면 하는 의도를 담고자 했습니다." (국제신문 인터넷판 2015년 12월 3일)
그러니까 이 조각상은 감천문화마을의 고유성과는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신문기사에 따르면 나인주 작가는 2015년 11월 감천문화마을에 입주하여 살고 있다고 하니, 그가 진심으로 감천마을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런데 이 조각상이 감천문화마을의 상징인 듯 부각되고 관광객이 크게 증가하자, 경남 창원시의 안민고개에도 유사해 보이는 조각상이 설치됐다. 이로 인해 표절 시비까지 벌어졌는데, 이게 뭔가 싶다. ‘어린 왕자’라는 소설은 프랑스인이 썼는데, 감천문화마을에서 느닷없이 그 이미지가 사용되고, 그것이 관광객을 모으는 데 성공하면서 이제는 또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해서 야단이다.
어차피 원작 ‘어린 왕자’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곳들에서 그 작품의 이미지만 이용하고, 이제 각자 ‘예술적 해석과 독자성’을 내세우면서 갈등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어떤 자료도 찾지 못했지만, 또 나인주 작가의 생각이나 발언을 구체적으로 듣지는 못했지만, 굳이 감천문화마을을 어린 왕자와 관련지어 생각한다면 딱 한 가지 있기는 하다. 그것은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가 감천문화마을에 왔다는, 나인주 작가의 상상력과는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그 한 가지는 감천문화마을의 색깔과 어린 왕자 조각상의 외모 색깔이다. 어린 왕자 조각상은 노란 머리, 붉은 머플러, 연푸른 옷으로 꾸며져 있는데, 감천문화마을의 집들도 대체로 그와 비슷한 색깔들로 알록달록해 보인다. 이 조각상은, 여행자들의 호기심이나 생각과 연관되기보다 감천문화마을의 색깔과 연관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그 외에 그럴듯하다고 인정할 만한 다른 내용은 없고 오로지 색깔만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유명한 어린 왕자의 조각상이 감천문화마을 길거리에 있다는 것, 그 옆에서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 배경이 출중하여 사진이 잘 나온다는 것 등의 이유로 이 마을을 찾곤 한다. 지금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에게도 감천문화마을은 부산 관광에서 필수 코스가 되었다.
3) 산비탈 마을의 가치
감천문화마을은 높은 언덕의 산비탈에 있다. 그곳에 가면 계곡 건너편에 다른 언덕과 마을이 보인다. 두 언덕 사이에 골이 꽤 깊어 보이는데, 그 낮고 깊은 곳에도 주택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그 비탈들 모두에 비좁은 골목들과 함께 낡고 허름한 주택들이 촘촘하게 줄지어 서 있다. 감천마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골짜기 사이 저 멀리로 항구와 바다가 보였다. 그곳이 감천항이다.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주민들이 멀쩡히 살고 있는 마을로 구경 와서 떠들썩했으므로 나는 약간 걱정이 들었다. 관광객들은 좁은 골목을 따라 비탈을 내려가면서 그곳에 있는 작은 집들을 구경했다. 어떤 집들은 담이 없어서 관광객이 지나가다가 곧바로 집 안을 볼 수 있기도 하고, 담이 있다 해도 비탈 위에서 집 안을 내려다볼 수 있기도 하다.
내가 이 마을 주민이라면….
한편으로는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마을 경제에 도움이 되고 침체된 마을에 활기를 줄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민들의 사생활이 침해되고 그들의 일상이 구경거리가 되는 것 같아서 서글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감각과 희생이 아니라면, 감천이라는 마을이 이렇게 유명해질 리가 없었을 테니,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내가 보기에, 부산에 오면 이곳은 꼭 와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곳에 와서 어린 왕자 조각상을 보든 말든 거기서 사진을 찍든 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감천마을 언덕 위에서 동네 골목과 집들을 내려다보면 딱히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독특한 아름다움과 정겨움, 그리고 서글픔과 그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