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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해변 드론라이트쇼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28일 (2)

by memory 최호인

2. 광안리해변 드론라이트쇼


범어사를 보고 나서 몹시 피곤해진 나는 숙소로 돌아와서 일단 누웠다.

저녁에 광안리 해변에서 하는 드론라이트쇼를 갈지 말지 고민하면서.


광안리 드론라이트쇼는 동절기인 10월부터 2월까지는 토요일에만 오후 7시와 9시에 진행된다. 그런데 1주일 후인 11월 4일 밤에는 광안리 해변에서 성대한 불꽃축제가 벌어지기 때문에 드론라이트쇼를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 드론라이트쇼를 보지 못한다면 이번 한국 방문 기간에 나는 아예 드론라이트쇼를 못 보게 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침대에서 자는 둥 마는 둥 쉬다가 나는 기어이 일어났다. 오후에 자면 밤에 더 못 자게 될 것이므로 나는 일어나서 움직이기로 했다. 잠시 글을 쓰고 나서… 얼마나 멋있을지는 모르지만, 광안리로 가서 드론라이트쇼를 보기로 결심했다.


서면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금련산역에서 내렸다. 해변까지 걷는 거리로만 보면 광안리역보다 금련산역이 더 가깝다. 이미 조금 늦었기 때문에 해변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이렇게 걸어가는 거리는 한 주일 뒤에 벌어질 불꽃 축제를 보기 위해 다시 오게 되는 길을 사전답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주일 후에 불꽃 축제를 보기 위해 실제로 나는 이 길로 다시 왔다.)


숙소에서 늦게 나온 바람에 나는 7시가 조금 넘어서 금련산역에 도착했다. 해변으로 걸어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금련산역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내가 늦게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변에 도착했을 때 드론쇼는 이미 끝난 뒤였다. 드론쇼가 적어도 30분 정도 할 것으로 예상했다가 실망했지만, 나는 광안리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음 쇼를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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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해수욕장은 매우 예쁘고 매력적인 해변이다.


태평양과 대서양에 있는 끝없이 쭉 뻗은 일자 해변, 투명하고 잔잔한 에메랄드빛 바닷물을 가진 카리브해의 바닷가, 잔잔한 물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작은 물고기들이 주변을 오가던 로리다 해변 등을 이미 보았지만, 그런 해변들은 광안리 해변과는 전혀 다른 멋을 가지고 있다.


그런 해변들은 뜨거운 태양과 부드럽고 하얀 모래와 훌륭한 호텔 등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해수욕장에서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하고 인공적이고 화려한 모습이 없다. 그러니 사실 이런 해변들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 자원과 환경 자체만 따진다면 미국 서부에 있는 태평양 해변이나 인적 드문 호주의 해변이 훨씬 더 깨끗하고 잘 보호된 곳이다.


그러나 그런 해변은 아름답지만 ‘심심하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해변보다 인간의 문화가 재미있게 어우러진 해변이 더 끌린다. 시원한 바다와 깨끗한 모래사장도 중요하지만, 그 모래사장에 사람들이 쉽게 다닐 수 있는 나무 보드워크, 그리고 그 옆에 길게 늘어선 상가들의 모습도 중요하다. 그런 곳에서 자연의 혜택과 문명의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다.


보드워크와 그 주변에 긴 상가가 있는 해변은 미국에도 많다. 그러나 광안리해수욕장은 그 앞에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가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미관을 자랑한다. 항아리처럼 아늑하고 오목한 모습의 해변을 둘러싸고 화려한 상가가 있고, 그 앞에 거대한 해상 교량이 놓여 있는 곳은 어쩌면 세상에서 광안리해수욕장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해변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에 건설된 광안대교는 광안리해수욕장을 가장 독특하고 예쁜 해변으로 만들어준다. 이 다리는 해운대구와 수영구를 이어주며 도심의 교통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복층으로 만들어진 이 다리의 전체 길이는 7420미터지만 현수교의 길이만 보면 총 900미터에 이른다. 광안리 해변에서 바라기 좋은 현수교의 주탑 간격은 500미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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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대교가 주는 아름다움과 낭만은, 그곳의 상가와 차도의 복잡함과 너무 많은 방문객과 그들 모두의 소란함을 상당히 상쇄하고 있다. 물론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해변으로 몰려들면서 각종 폐단도 많다.


일부이겠지만 몰지각한 관광객과 주민이 모래사장에서 툭하면 술판을 벌이고 고성방가 하고, 술병과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모래 속에 파묻기도 하며, 법적으로 금지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한 폭죽을 함부로 쏘아 올리는 등 추태가 많은 것은 대단히 불쾌한 일이다. 그런 것은 문화의 차이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선량한 한국인들뿐 아니라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나는 특히 광안리해수욕장의 밤 풍경이 좋다. 그것은 전적으로 해변 상가와 광안대교 덕분이다. 어두운 밤바다에 불 켜진 다리가 서 있는 모습은 지나치다 싶게 낭만적이다. 사랑을 결단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온다면 금세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못 배길 곳이다. 모래사장 주변의 산책로와 풍부하고 다채롭고 화려한 상가, 해변에서 가까운 금련산역이나 광안역 같이 대중교통을 통한 편리한 접근성도 광안리해수욕장의 매력을 높여주고 있다.


오늘 밤, 광안리의 밤하늘에는 유난히 밝은 보름달이 떠 있었다. (나중에 살펴보니, 음력 9월 14일이었다.) 광안대교 위 검푸른 하늘에 바람에 실려 떠가는 옅은 구름 사이로 노랗고 둥그런 보름달이 환하게 빛났다. 내 옆에 서 있던 어린 여학생들이 그 풍경이 멋있다고 신나게 떠들더니 구름 사이로 보름달이 빠끔 얼굴을 내민 것을 보고 환호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덩달아 핸드폰을 꺼내어 노랗게 빛나는 보름달과 보라색 빛을 켜고 있는 광안대교와 검은 바다와 누런 모래사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해변 상가와 모래사장을 천천히 거닐면서 버스킹 하는 가수와 그 앞에 모여든 사람들까지 구경하다 보니 그새 한 시간이 흘렀다. 해변 상가 어느 건물의 2층 발코니에 나와서 바이올린 연주를 배경으로 노래를 부르던 가수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서둘러 근처 식당으로 가서 떡만둣국을 먹고 드론쇼를 보기 위해 모래사장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9시가 되었을 때 나는 해수욕장 모래사장의 가운데쯤에 서 있었는데, 민락동 쪽 해변에서 마침내 드론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느새 해변 중앙 상공으로 날아와서 각종 캐릭터와 형상을 만들곤 했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쇼가 끝나고 있었다.


드론쇼는 겨우 12분간 공연됐다. 너무 짧은 듯해서 약간 허탈했다.

그것을 보려고 두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그러나 이것도 부산 여행에서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이며, 그렇게 또 하나를 마쳤다는, 다소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나는 천천히 모래사장을 지나서, 이번에는 금련산역이 아니라 광안역으로 향했다. 내 등 뒤에는 여전히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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