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ㅇ서 한 달 살기 10월 28일 토 맑음 (1)
1. 부산에서 꼭 가봐야 할 사찰, 범어사
범어사는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부산에 올 때부터 이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사찰은 으레 산 위에 있는 것이라, 나는 가능하면 단풍이 아름다울 무렵에 갈 계획이었다.
부산에서는 앞으로 1주일 정도만 더 있다가, 출국하기 전에 며칠 앞서 서울로 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범어사 방문을 자꾸만 미룰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어젯밤에 서면시장에서 샀던 찐빵과 야채 코로께를 브런치 삼아 먹고 나서 드디어 범어사로 향했다. 제법 먼 길이라 판단하면서.
서면에서 범어사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서면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노포역까지 가야 한다. 노포역에서는 90번 버스를 타면 범어사매표소 정류장에 도착하여 경내까지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정산에 있는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의상대사가 창건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려 1350살 정도나 되는 절이다. 범어사는 역사적으로 여러 고승을 길러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찰이다. 이 사찰은 또한 전국에서 유일하게 <삼국유사>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불교의 초기 전래와 발전에 관련된 여러 경전과 유물과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
금정산(金井山)은 금빛 나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범어사는 금정산의 우물에서 범천(梵天)의 물고기가 놀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범천이란, 불교에서 부처가 사는 세계를 의미한다. 금정산에는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 있는데, 길이가 1만7천336미터나 되어 옛 산성으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범어사로 걸어가다 보니, 먼저 길가에 있는 당간지주가 눈길을 끈다. 두 개의 길쭉하고 거대한 육면체 바위가 세로로 마주 보고 서 있기 때문이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절에 법회 등의 행사가 있을 때 입구에 당(幢)이라는 긴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붙들어 고정, 지탱하는 기둥 2개를 당간지주(幢竿支柱)라 한다.”
당간지주를 지나면 범어사의 출입구 격인 삼중문을 거쳐야 한다. 문이 세 개나 된다는 말이다. 제1문은 조계문, 제2문은 천왕문, 제3문은 불이문이다. 사찰 안내문에 따르면, “불이란 있음과 없음, 삶과 죽음, 선과 악 등 약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관점을 뜻한다.” 다른 사찰에서는 불이문을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이 안내문을 읽고 나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사바의 세계에서 해탈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희망사항일 것이다.
아니면 권장사항이거나.
이 사찰에서 가장 큰 건물인 보제루 아래 있는 금강계단을 올라가면 대웅전 아래 넓고 깨끗한 마당으로 들어서게 된다. 보제루 (普濟樓)란, 사찰의 중심이 되는 불전 앞에 세워지는 누각이며, 만세루 또는 구광루라고 불리기도 한다. 보제는 두루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이다.
삼중문을 거쳐 올라가면서 숨은 약간 차면서도 마음은 오히려 점점 차분히 가라앉는 상황에서 금강계단을 올라 거대한 대웅전을 눈에 담는 순간, 나는 약간 감동에 젖었다. 그것은 오래되고 장대한 사찰이 주는 위엄, 종교적 신성함이 가득 깃든 듯한 분위기, 수많은 스님들이 고뇌와 인내와 수도를 거듭했을 인고의 역사 등이 한꺼번에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앞마당은 매우 넓어서 나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잠시 입구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옆에 앉은 한 남성은 작은 대포만 한 렌즈를 달고 있는 카메라에 눈을 들이대고 연신 대웅전의 웅장한 자태를 찍고 있었다. 그 마당에는 또 다른 당간신주와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여러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나는 대웅전 앞에 서서 반대편 전경을 내다보았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에 새하얀 구름들이 무리 지어 흐르고 있었고, 그 아래로 이제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있는 산이 보였다. 아직 깊은 단풍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주황색과 황색과 녹색으로 물감을 들인 듯한 산이 아름다워 보였다. 저 산에 불이라도 붙은 듯 단풍이 물들려면 아마도 두 주 정도 더 걸릴 것이다. 그때는 내가 미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날 범어사에는 많은 사람이 방문했다. 그들도 나처럼 웅장한 사찰에 감동했는지, 상기된 모습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경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사찰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다. 어디를 보나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다. 하늘도 나무도 산도 아름다웠고, 사람이 만든 건물들도 그 아름다움을 거스르지 않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사찰을 돌아본 후 나는 삼국유사’ 원본을 직접 보기 위해 ‘성보박물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새로 지었다는 성보박물관은 의외로 한참 떨어져 있다. 그곳으로 내려가는 길에 커다란 설법전이 있음을 발견했다. 굳이 사찰 내부로 들어오지 않고도 신도들이 설법을 들을 수 있는 곳인 듯했다. 설법전 앞마당에는 수령 600여 년이나 되는 은행나무가 우람한 자세로 서 있어 눈길을 끈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은 2003년 개관하여 불교문화재를 보관, 전시, 연구하는 역할을 하다가, 2021년 신축 이전하여 개관했다. 박물관은 비교적 현대식 2층 건물로 건축됐는데, 나는 범어사에서 내려오다가 얼떨결에 뒷문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 바람에 들어가면서, “성보박물관 입구가 이렇게 형편없이 지어졌나?’라고 혼자서 헛소리를 했다.
성보박물관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바꿔 신어야 한다. 1층은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2층에는 기증유물과 기획전시를 주로 하고 있다. 불상, 불화, 각종 고서적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1층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높은 벽에 걸린 초대형 불화를 볼 수 있었다. 1905년에 제작된 불화라고 한다.
말로만 들었던 ‘삼국유사’를 보게 된 것은 처음이다. 유리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 삼국유사는 권 4-5라고 한다.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의 선승인 일연이 그의 나이 70세(1276) 이후에 저술했다고 하며, 6권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성보박물관을 들어갈 때는 뒷문으로 들어갔으나, 나올 때는 정문으로 나왔다.
그럼 그렇지. 내가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서 헛소리를 했구나, 싶었다. 그러나 범어사에 갔다가 성보박물관으로 걸어 내려오는 사람이 나처럼 박물관 뒷문으로 들어가게 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이것은 나중에라도 뭔가 개선해야 할 문제이다. 또다시 나처럼 헛소리를 하면서 불평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