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한 달 살기 11월 3일
봉하라는 말은 봉화산 봉수대 아래 있다는 말이다.
택시에서 내렸을 때 바로 대통령기념관이 눈앞에 있었고,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부엉이 바위가 보였다. 날씨가 하도 좋아서 새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먼지도 별로 없는 공기는 지극히 투명한 듯했다. 대통령기념관 전면에 노무현의 커다란 얼굴 사진이 보였다. 그가 방문객을 보고 오른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기념관 건물 사진을 찍고 나서 크게 호흡한 후에 먼저 대통령기념관으로 들어갔다. 1층 로비에 무인 티켓 발매기가 있었다. 가격은 2천 원. 내 신용카드를 넣어도 기계는 카드를 도로 뱉어냈다. 기계가 고장인지, 평일이라서 무료로 들어가라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 꽤 넓은 ‘대통령 서재’가 있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이 가지런하다. 책이 많다고 해서 모두 읽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수만 권도 있는데, 여기에는 책이 그리 많지는 않다. 설마 저 책들을 방문객들이 읽으라고 둔 것은 아닐 테고… 노무현이 읽었으려나. 책마다 그의 손때가 묻어 있으려나. 그러나 아무도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혼자서 서재를 대충 훑어보고 나서, 다시 로비로 나왔다. 여전히 아무도 없었으므로 이번에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진짜 전시관은 지하에 있기 때문이다. (이 지하 전시관을 돌아본 후에는 건물 옆쪽으로 나가는데 거기에서는 곧바로 지상으로 나가게 된다.)
계단을 내려갔을 때 다시 티켓발매기가 있어서 카드를 넣어봤는데 또 카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 기념관 프런트데스크 직원이 나에게 다가왔다. 사정을 설명했다. 내 카드를 발매기에 넣어보고 안 되니까 그녀가 갸우뚱하길래 나는 그것이 해외 발행 카드라서 그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당 가운데도 아주 가끔 해외 발행 카드를 받지 못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실제로 기념관에서는 해외 발행 카드를 받지 않고 있었다. 프런트데스크에 있는 두 명의 여성이 나를 무료 입장 시킬까 대화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곧바로 현금을 내겠다고 했다.
해외발행 카드를 가지고 온 것을 알게 된 직원이 나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부산에서 그곳까지 오는 데 세 시간 반이나 걸린 사정을 듣자마자 그녀는 멀리서 오느라고 고생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더 반가워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전시관을 해설해도 되겠냐고 하면서 나를 안으로 이끌었다.
전시관 해설은 원래 단체 위주로 정해진 시간에 하는 것인데, 그녀가 그렇게 해준다니 나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그녀가 해설을 시작하자마자 금세 다른 사람들이 따라붙어서 8명 정도의 일행으로 불어났다. (그날 오후에 나는 대통령 기념관과 그 부근 길을 다니면서 아마 4,50명 정도 되는 방문객을 볼 수 있었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부부들이 많았지만 젊은이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전시관 해설을 맡은 직원은 우리 일행에게 거의 30분 정도에 걸쳐 해설을 해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설명이 끝난 후에 다시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둘러보라고 권했다. 그렇잖아도 그럴 생각이었던 나는 다시 차분하게 전시관을 혼자서 돌아보았다.
미처 이루지 못한 지난날을 천천히 생각하면서.
안타까움이 밀려드는 가슴 안까지 깊이 호흡하면서.
이따금 울컥하고 목이 매인다.
벽에 비치는 노무현의 큰 사진을 보거나 육성 연설이 나오는 화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가 저토록 목놓아 외쳤던 한국의 정의와 민주주의는 얼마나 발전한 것일까.
전시관은 기본적으로 노무현의 어릴 적 생애와 학창 시절, 그리고 변호사가 되었다가 정치인이 되는 과정을 담은 사진들과 동영상들로 채워져 있다. 그밖에 그가 사법고시 준비를 위해 사용했던 책들과 변호사 시절 재판기록 등이 있었고, 노사모의 활동 사진과 전시품들도 보였다. ‘우람한 나무’라는 제목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영상도 볼 만한 작품이었다.
그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나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뭉클하게 한 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신었던 신발과 유서다. 유서는 크게 보도되어서 온 국민이 이미 읽었던 것이고, 신발은 그가 부엉이바위로 올라갔을 때 신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유서는…
사실 기대에 상당히 못 미친다. 그 짧은 유서에 혹시 내가 놓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게 있는가 하고 다시 여러 번 읽어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믿기 어렵게 기대에 못 미친다. 또는 너무 응축적이다.
수많은 한국민이 의지하고 기대했던 노무현이 마지막으로 썼다고 하기에는 극도로 소박 담백하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느낌이 든다. 그가 그토록 갈구했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담고 있지도 않다.
아니, 이게 정말 그의 유서란 말인가.
지나간 이야기지만, 그가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졌다고 했을 때 그것을 믿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아무리 심적으로 힘들었다 해도 그가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컴퓨터 스크린에 유서가 남았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조작 가능성을 떠올렸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쁜 사람들에 의한 음해와 조작과 거짓 선동을 경험한 사람들은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얄팍한 나의 심리학과 인식론 읽기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한다. 인간은 머릿속에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획득하는 인식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그 프레임에 의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보는 보려고 하지 않고, 믿으려 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걸러내어 버리기도 한다. 정보가 사실대로 전달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때때로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인간은 늘 외부로부터 전달되는 정보를 스스로 걸러내는 작업을 하고 선호도에 맞춰 정보를 취합한다. 거기서 정보의 왜곡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의심이 많았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가 정치를 잘했든 잘 못했든 그것은 둘째이고, 한국 정치에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극은 점차 ‘사실’ 임이 판명되었다. 그러면서 이제, 시대적 상징으로서 고양된 의미와 한 개인으로서의 노무현, 즉 공적 의미의 노무현과 사적 의미의 노무현에 관해 최대한 넓혀서 생각해 본다. 그러면 조금 더 이해가 될까.
아무튼 그의 자살을 믿는 데 한참 걸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더 이상의 다른 사유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그를 따르던 측근들도 그의 자살을 인정했다.
부엉이 바위는 거대한 절벽이 아니다. 조금씩 변색되는 가을 나무들 사이에서 그저 조금 높이 솟아올른 바위일 뿐이다. 딱히 절벽으로 보이지도 않는 그 갈색 바위는 아무 말도 없이 관광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엉이바위가 있는 산은 높지 않아서 금세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바위와 약간의 숲 아래에 노무현대통령의 무덤이 있다.
맑은 가을 오후 햇살을 정면으로 받아서 너무나 환하게 빛나는 부엉이바위를 망연히 바라보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저게 그렇게 높은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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