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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이야기 1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은?)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1월 3일

by memory 최호인 Jan 27. 2024

다가오는 여행의 끝.


부산에 내려와서 주요 관광지를 돌고 주마간산 식으로 울산과 대구까지 다녀온 나는 ‘부산에서 한 달 살기’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로 봉하마을을 택했다. 노무현대통령을 찾아간다는 것은 나처럼 정치에 거리를 두고 냉소적이고 쌀쌀맞은 사람에게는 다소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기는 하다.


물론 그가 망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가 대통령이었을 때 정말로 잘한다거나 훌륭하다고 믿지는 않았던 내가 이제 와서 굳이 그의 묘역을 찾아가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다소 어색한 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부산 한 달 살기의 마지막 시간을 내서 그를 찾아보려고 결정한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죽기 전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그가 꽤 거창하게 말했던 ‘운명’론까지는 못 가더라도, 어쩌면 이것은 나에게도 이 여행의 마지막을 매듭짓는 작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이따금 한국의 역대 대통령 호감도 순위를 조사한 결과가 나올 때가 있다. 그런 조사에서 노무현이 1위를 차지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조사기관이나 조사 시기에 따라 박정희가 1위를 차지할 때도 있다. 2015년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는 노무현이 1위, 박정희가 2위, 김대중이 3위였다. 2021년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는 박정희가 1위, 노무현이 2위, 문재인이 3위를 차지했다.


박정희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아마도 한국 경제발전의 초석이 박정희 정권 시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비록 그가 쿠데타로 집권했고 군사독재를 일삼으면서 영구집권을 꿈꾸었지만, 그것이 근대화와 산업화를 지탱하기 위한 ‘한국적 민주주의’의 길이었다고 추억하는 한국인이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러나 노무현이 1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징적 의미이긴 하지만, 노무현은 한국사회가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 사회로 전환하는 시점에 디지털 문화와 인터넷에 익숙해진 세대가 새로운 젊은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첫 경험이었다. 수십 년에 걸쳐 강압적으로 지속된 군사독재와 소위 3김 정치시대에서 처음으로 대중적 시민민주주의 사회로 접어드는 시기이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 투쟁을 거친 한국사회가 격동의 20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정치경제 구조와 디지털 문화에 입각한 21세기 선진 한국을 여는 시기이기도 했다. 노무현은 바로 이런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다.


21세기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이미지와 상상력을 떠올리지 않고서는 상고 출신 무명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이전까지 한국의 정치는 마치 절대권력을 가진 보스를 중심으로 뭉친 정치파벌들이 형식적으로만 대의민주주의적 정당 체제에 기초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에 비해 노무현은 마치 디지털 무명 대중이 느슨한 정치적 결사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예사로운 이미지와 비슷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려는 의지가 발현된 결과와도 같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던 시기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가를 가름하는 시기였다. 전통적 권위주의 시대를 넘어서 밑바닥부터 올라간 새로운 젊은 지도자가 이끄는 시대에 한국은 정치적으로 기득권의 반동에 의해 엄청난 혼란을 겪었지만 경제는 다행히 발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꼭 노무현의 공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정치와 경제의 비동조화 시대의 산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와 자동차와 조선과 중화학공업을 주력 산업으로 키운 한국 재벌기업들의 탁월한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문장이 한국에서 독특한 ‘재벌기업의 우월성’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도 초거대기업들이 많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런 기업들은 정치권력과 노골적으로 결탁하거나 기득권층의 경제외적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그런 기업들은 또한 국가의 주요 경제 부문을 문어발처럼 확장하여 독과점하지 않으며, 자본주의적 자유경쟁 질서를 해치지 않으면서 경제를 주도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고 정치인들에 대해 열렬한 찬반을 표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늘 정치인들을 의심하고 저평가하려는 것은 정치인을 대하는 한국인의 이중적 특징이다. 대의민주정치 사회에서 정치적 민주화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어쩔 수 없이 정치인들과 관료들에게 의탁하면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눈길은 결코 곱지만은 않다. 그것은 말로는 언제나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과정과 결과는 그렇지 않았던 정치인을 무수하게 경험한 한국인들이 정치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정치와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국민의 그런 의심스럽고 싸늘한 눈길 가운데, 그나마 노무현은 다른 대통령들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는 분명히 상대적으로 매우 서민적이었으며, 대중에게 조금 더 친숙한 이미지를 주었던 듯하다. 그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것은 둘째 치고, 국민과 서민을 위해 진실로 낮고 정직한 자세를 보였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그런 판단이 그를 가장 호감도가 높은 대통령으로 평가하게 했던 것이라 짐작한다.




여행자인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한국에서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매몰되어 떠들곤 하는, ‘진영 논리’나 ‘편 가르기’에 나는 휘말려 들고 싶지 않다. 이런 여행 기록에서 한국의 보수나 진보, 또는 정치 문제에 관해 말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봉하마을에 가는 데 앞서 노무현대통령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잠시 떠올려 본 것이다.


노무현이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고 농민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무척 깊은 인상을 준다. 동네 주민과 여성과 서민에게 그처럼 고개 숙여 인사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그가 국민을 대하는 데 있어서 그만큼 낮은 자세에 임했을 때 나오는 행동이다.


그러한 이미지를 가지고 나는 드디어 TV에서만 보았던 노무현과 봉하마을을 보러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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