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에 있었다면 굳이 봉하마을까지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서울에 있는, 꽤 진보적인 내 친구들 중에서도 봉하마을까지 다녀온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그러나 이미 부산에 와 있으므로 나는 봉하마을을 다녀오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카오맵을 보니까 서면에서 봉하마을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자동차로 간다면 한 시간 이내로 갈 수 있다.
봉하마을을 나는 TV에서만 보았을 뿐이다.
실제로는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봉하마을이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오늘 할 일이라곤 단지 노무현대통령의 묘지만 보고 돌아오는 것으로 계획했으므로, 나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숙소에서 오전 11시 반 정도에 출발하면서 나는 늦어도 오후 5시 정도면 충분히 숙소로 돌아올 것이라고 짐작했다.
서면역에서 봉하마을까지 가려면 경로는 이렇다:
지하철 -> 경전철 -> 버스 1 -> 버스 2.
미리 말하자면, 나는 인터넷에서 봉하마을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읽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평소에는 여행에 앞서 인터넷에서 조사하는 습관이 있지만, 요즘은 연일 여행을 하다 보니, 또 여행을 하면서 현장에서 즉석 판단과 해결을 하다 보니, 이번에도 무슨 일이 생기든 부닥치면 나름대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가파식’ 여행 감성이 나도 모르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또한 미리 조사하여 계획한다 해도 현실은 나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경험을 자주 한 것도 이렇게 충분한 사전조사 없이 길을 떠나게 된 배경이었다.
숙소 옆에서 핫커피를 사서 나의 텀블러에 옮겨 담았다. 커피의 양이 정확히 내 텀블러의 용량과 맞으면 나는 텀블러를 직원에게 내밀면서, “여기에다 담아주세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페에서 주는 1500원짜리 커피의 양은 내 텀블러의 용량보다 조금 더 많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받을 때마다 카페 직원에게 일단 “뚜껑은 주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그렇게 받은 커피를 나의 텀블러에 옮겨 담는다. 그러고 나서 카페 앞에 서서 뚜껑 없는 컵에 남은 커피를 홀짝홀짝 마신다. 그 첫 모금이 가장 맛있다.
이어서 “잘 마셨습니다.”하면서 다 마신 커피컵을 다시 카페 직원에게 돌려준다. 커피컵을 들고 가면 버릴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거리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남은 플라스틱컵이 함부로 버려진 것을 볼 때마다 무지, 아주 무지 화가 난다!!!)
뜨거운 커피까지 마신 나는 가벼운 걸음으로 서면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사상역까지 갔다. 거기서 부산-김해 경전철을 타야 한다. 이 경전철을 타면 부산의 지하철 1~4호선, 부산-울산 경전철(동해선)에 이어 부산의 모든 지하철과 경전철을 타게 되는 셈이다. 부산김해경전철 노선에 김해공항역이 있다. 예상외로 경전철에 승객이 꽤 많다고 생각했는데, 김해공항역에 이르자 여러 사람이 내렸다.
경전철은 기차가 겨우 두 칸에 불과해서 귀엽게 보일 정도다. 특이한 것은 기차 운전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경전철 앞 칸의 앞부분에 가서 보면 큰 창문만 있어서 마치 내가 철로를 미끄러지면서 전진하는 기분이 든다. 철로가 내 앞으로 마구 다가오는 듯도 하다. 아주 긴 젓가락 같은 철로를 보는 것도 좋고, 어찌 생각하면 내가 운전하고 가는 것 같아서 뭔가 근사해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신나는 기분은 경전철에서 내리면서 확 사라졌다.
김해시의 부원역이라는 곳에서 내렸는데, 어디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결국 약간 헤맨 후에 버스 정류장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언제 오는지 시간을 알 수 없다.
“혹시 봉하마을 가는 방법 아세요?”
답답해진 나는 여러 사람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놀랍게도 김해시에서 거의 아무도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노무현 묘역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데 봉하마을로 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다니…
이미 과거에 많은 여행객들이 봉하마을로 버스를 타고 가기 위해 나처럼 왔을 법도 한데, 이들은 그런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건지 아는 게 없는 건지… 나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봉하마을로 가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둘째 치고, 길을 묻는 사람에게 대체로 불친절한 것은 김해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카카오맵을 봐도 버스 오는 시간이 확인되지 않는다. 카카오맵에는 300번을 타라고 나오는데 그 버스가 도대체 언제 오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해졌다. 이런 상황은 조금 떨어진 시골에 나가서 실험해 보면 누구라도 금세 알 수 있다. 내가 타야 할 버스 번호가 정류장 벽에 적혀 있기 때문에 버스가 그곳으로 오는 것이 확실하겠지만, 그 버스가 언제 오는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외버스는 그리 자주 오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나는 정류장에서 막연히 기다리다가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아침에 빵 하나만 먹고 나온 것이 생각났다. 만약 봉하마을로 가면 저녁때까지 식사를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보니, 길 건너에 롯데리아가 있었다. 거기로 가서 나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다시 생각했다. 버스가 아니라면 택시를 타야 하나. 롯데리아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내 사정을 듣고 봉하마을까지 택시비를 조사해서 알려 주었다. 2만 원이 좀 넘는다. (거기서 택시를 탈 걸! 조금 후에 후회했다.)
그러나 한 블록을 걸어가자 근처에 있는 다른 버스 정류장에서 봉하마을로 가는 버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곳에서는 다행히 내가 타야 할 버스가 곧 도착했다. 그 버스를 타자마자 나는 버스기사에게 봉하마을로 가는 방법을 물었는데, 그는 고맙게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 상세한 설명은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느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나는 다시 다음 버스를 기다렸지만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 김해 시내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간 듯해서 나는 다시 택시를 타는 방법을 떠올렸다. 마침 택시가 버스정류장에 서길래 운전기사에게 물었더니 이번에는 8천 원 정도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곧 택시에 올라탔다. 나이가 지긋한 택시기사는 봉하마을에서 나올 때 버스 타는 것을 걱정하는 나의 사정을 듣고 나서, 버스 타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래도 어려움이 발생하면 연락하라고 하면서 그는 고맙게도 나에게 비즈니스카드를 주었다. 택시기사의 전화번호까지 받고 나니 마음이 든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