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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이야기 4
(대통령의 무덤)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1월 3일

by memory 최호인


대통령기념관의 후문으로 나가면 먼저 작은 연못과 '사람 사는 세상' 정자가 보인다.

거기서부터 생태문화공원이 이어져 있다.

생태문화공원에서 꽃과 작물도 키우고 수생식물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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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으로부터 대통령의 묘역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시간만 많으면 한참 걸을 수 있는 산책로도 있고 산행길도 있다.


대통령기념관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통령의 무덤으로 이끄는 길이 나온다. 대통령의 묘역 가운데 내가 본 것으로는 가장 소박해 보이는 네모난 갈색 바위가 눈앞에 나타났다. 마음은 더욱 숙연해진다. 높은 봉문 무덤이 아니라서 허전하기까지 하다. 그 바위를 한 바퀴 돌아서 보니, 전방에 지는 해로부터 밝은 햇살이 내 눈을 부신다. 아, 이 분은 여기 누워서 매일 저녁 저리도 환하게 지는 해를 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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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널따란 바위 묘지 앞에 이렇게 적혀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대통령이 묻힌 묘지로 가는 길의 바닥에 있는 박석 하나하나에 시민의 바람이 새겨진 글이 있다. 거기 적힌 대로 꿈과 희망이 모이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되는 것일까. 그러면 바라는 세상이 올까.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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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렇게 외친 후, 아니 그가 그렇게 떠난 후 14년 반이 흘렀다. 한국의 경제는 그동안 놀랍게 발전했고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그 사이에 보수정권 두 번, 진보 정권 한 번, 다시 보수 정권…

그러나 한국이 살기가 좋아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역사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종종 역사의 지속적 발전을 운운하지만, 그것은 역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거시적 역사를 말하는 거의 헛소리와 비슷하다. 역사는 항상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것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한 인간의 생애에서 역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드물며 거의 의미가 없는 내용이다. 때로는 기아와 동사가, 때로는 지진과 화산과 쓰나미가, 때로는 전쟁과 전염병이, 때로는 질병 같은 개인적 사고가 점철되어 개인의 역사는 종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상황이 좋아지거나 안 좋아지거나 인간은 그냥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도 가끔 거역하기 어려운 시대의 굴곡과 격류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정의와 대의를 위해 불현듯 나서기도 하고, 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으로 몰리기도 하고…

그래서 아주 아주 드물게 성공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희생당하고 쪼그라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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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길이라는 산책로는 예쁘게 꾸며졌다. 대통령의 생가는 아주 소박하다. 시골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저 문 밖에서 마당과 초라한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절, 소년 노무현이 자라던 시절에는 모두 살기 힘들었으니까 그 소박한 초가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파란 하늘 아래 초가집 담장 안에 있는 감나무와 거기 열린 주홍색 감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퇴임 후 지냈다는 대통령 관저는 통제되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특별 행사가 없는 오늘 같은 평일에는 깨어있는 시민문화체험관도 닫혀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아쉽지는 않다. 들어가 봤자 그냥 집일 테고, 그냥 흔한 체험관이려니...


나는 그저 닫힌 체험관 옆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서 한동안 대통령관저와 부엉이바위를 바라보았다. 부엉이바위는 아무리 자꾸 봐도 이상하게 아쉬운 듯 눈길이 간다. 높이 140미터라고 하는데, 멀리서 보면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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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5시가 넘어서 해는 어느덧 서산에 걸려 마지막 노란빛을 발하고 있었다.


서면에서 봉하마을로 가는 데는 헤매면서 세 시간 반 걸렸다. 돌아올 때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왔고 특별히 오래 기다리느라고 지체된 것이 없는데도 세 시간 걸렸다. 버스 1 -> 버스 2 -> 경전철 -> 지하철 순서로 말이다. 그렇게 오가느라 꽤 긴 하루였지만 오래된 숙제를 하나 끝낸 기분이어서 마음은 홀가분한 밤이었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


앞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중년 여성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물끄러미 그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문득 어릴 적 공부했던 내용이 생각났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영어공부를 하면서 보았던 책 가운데 ‘성문종합영어’가 가장 유명했다. 학원에 가서 배우고 공부했던 책이기도 하다. 그 책의 예문 가운데, 누가 썼는지 잊었지만, 이런 문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Although they may not all become Washingtons, they will surely be such men as will choose a Washington to be their ruler and leader.” (비록 그들은 모두 워싱턴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확실히 워싱턴 같은 사람을 그들의 통치자와 지도자로 선출할 만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 문장에서 아마 ‘as’ 외에 “a Wahsington”이라는 용법을 익혔던 듯하다. 나의 관심은 고유명사 앞에 부정관사 ‘a’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꼭 워싱턴이 아니라 워싱턴과 같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 문장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지도자를 뽑는 투표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국가를 운영할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는 없으므로, 결국 공정한 민주주의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올바른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야말로 일반 시민이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위에 있는 문장에서 워싱턴 대신 세종대왕을 집어넣는다면 이렇다.

"우리 모두 세종대왕이 될 수는 없겠지만, 세종대왕 같은 사람을 우리의 지도자로 선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는 우리 모두 노무현이 될 수는 없지만, 노무현 같은 사람을...)


우리에게는 왜 그런 안목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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