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한 달 살기 11월 2일
<대구에서 부산으로 돌아가는 밤>
이렇게 긴 여행을 하다 보면
이따금 이런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시공 개념을 잊은 채
멍하니 있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송정의 맑은 해변에 반사되는 햇빛에 취해 신발을 양손에 들고 맨발로 모래 위를 걸으면서.
해파랑길 어느 산모퉁이 바닷가에서 뿌연 해무 속으로 아득히 먼 수평선을 찾다가.
전통시장의 어느 맛집에서 김밥과 튀김을 어묵 국물과 함께 먹다 말고.
지하철에서 삶에 지쳐 꾸벅꾸벅 조는 맞은편 여인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또 터덜터덜 한참 걸어서 지나온 길을 무심코 뒤돌아보니 까마득히 멀어 보여서.
덜컹거리며 달리는 기차 창문에 깜빡이는 불빛과 어두운 산하가 빠르게 흘러갈 때.
문득 놀란 가슴에 뭉게구름처럼 떠오른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