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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여, 안녕

부산에서 한 달 살기 (59) 11월 6일과 7일

by memory 최호인

<길에 서면>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다.

길은.


도달하여 이루고야 말겠다는 욕망은 부질없다,

길에 서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했지만

모든 게 새롭다.

길을 나서면.


무수한 삶이 보이고

무수한 삶이 흐른다





11월 6일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


광안리해변에서 불꽃축제를 보고 온 이후 이틀간 나는 거의 서면 숙소에 머물렀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부산에 와서 3주 동안 쉬지 않고 돌아다녀서, 웬만한 유명 관광지는 다 다녔다고 생각했다. 자세히 따지자면, 가보지 않은 곳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부산은 대단히 큰 도시이고, 수많은 매력을 곳곳에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가방을 다 쌌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부산에서 구했던 여행안내책들과 지도들을 아깝지만 모두 숙소에 두기로 했다. 모아 보니 그것도 꽤 된다. 짐을 줄이기 위해 옷도 몇 벌 버렸다. 몇 권의 책들도 이미 친구에게 주었다. 그래도 배낭은 여전히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


비우고자 해도 쉽게 비워지지 않음이 삶인가 보다.


낮에 숙소에서 가까운 가정백반식 뷔페식당에 가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식당 주인아주머니에게 작별의 인사를 전했다. 몇 번 안 되지만 그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얼굴을 익혔고 아주 작은 정이 들었나 보다.


“그동안 부산에서 재미있게 잘 보내셨나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그저 가볍게 대답했다.

“네 잘 보냈습니다. 많이 구경했네요.”
형식적인 대답이었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부산에서 나는 알차게 시간을 보냈고 재미있게 여행했다.

"다음에 오시면 또 들르세요."

"네. 다시 올게요. 그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7일 아침.


굿모닝 부산. 또 맑고 화창한 날이다.

드디어 부산역으로 가기 위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숙소를 나섰다.

떠날 때는 항상 아쉽다.


아무도 배웅하지 않는 숙소와 부전시장을 뒤로하고 서면역으로 갔다. 12번 출구는 무려 72개나 되는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계단 뒤쪽으로 엘리베이터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아주 피곤할 때가 아니면 주로 계단을 이용했다.


긴 터널 같은 복잡한 서면역에서 마지막으로 벗어났다. 아무 일도 없는 듯 수많은 사람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내가 부산에 올 때부터 문을 닫는다고 써 붙인 옷가게는 여전히 문을 닫는다는 사인을 붙여놓고 있었다.


부산역, 특히 넓은 부산역광장은 무척 마음에 든다. 나를 배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뭔가 허전한 듯하여 나는 부산역광장에 서서 전경을 둘러보았다. 맑고 환한 가을 햇빛이 광장에 가득했다. 그새 정이 많이 들었는지 가슴속에서 불현듯 슬픈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이 풍경이 부디 눈에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또 나중에는 내 가슴에 더 길이 남아 있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부산과 부산 사람들에게 안녕을 고했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안녕히 지내시기를…


(이날 오후 12시 반에 나는 부산을 떠났고, 오후 3시에 서울 수서역에 도착했다. 친구 Y가 마중 나와서 나를 반겼다. 이로부터 사흘 뒤 나는 서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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