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한 달 살기 (57)
경험해 보니, 부산은 한 달 살기를 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한 달 살기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개인적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나처럼 서울 토박이였지만 해외에서 한참 살다가 온 뚜벅이 여행자에게 부산은 장기간 머물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
부산이 왜 좋은가에 관해서 나는 부산에 온 첫날 간략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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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느낀 점을 요약하면 이렇다.
부산 날씨가 서울보다 훨씬 좋다. 특히 대기의 질(AQI)도 훨씬 양호하다.
주거비와 음식 가격도 서울보다 훨씬 낮다.
서울에 비해 북적거리지 않는다.
이 세 가지는 부산에서 한 달 살기를 시작하면서 첫날 느꼈던 것이다. 이제 이 내용을 다시 설명하면서 추가로 부산이 왜 한 달 살기에 좋은지 전하고 싶다.
부산 날씨가 좋은 것은 어쩌면 내가 온 시기가 정확히 절정의 가을이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부산이라는 특성상, 비록 단풍은 거의 보지 못했지만, 날씨는 최고로 좋을 때였다. 10월 14일부터 11월 7일까지 있었으니, 한 해에 최고의 시기였던 듯하다. 자주 밝힌 것처럼 매일 날씨가 너무 좋아서 숙소에서 차분히 쉬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한 달 살기이긴 하지만, 여행을 왔는데 하늘이 맑은 날 방 안에서 온종일 하루를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매일 돌아다녔다.
서울에 도착할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특히 외국에서 살다가 오는 사람들의 눈에는 서울 하늘이 답답해 보일 때가 많다. 하늘이 푸른 날은 별로 없고 거의 언제나 뿌옇다. 미세먼지는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듯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코가 매캐해진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조금 과장됐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1년 내내 하늘이 거의 뿌연 상태라서, 어쩌다 맑고 푸른 날이 되면 새파란 하늘 봤다고 사진 찍어서 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맑은 날이 드물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태다.
핸드폰에서 날씨를 볼 때 나는 자주 다른 도시들의 날씨도 함께 본다. 내가 사는 뉴욕뿐 아니라, 이번에 방문한 부산, 친구가 사는 휴스턴과 헬싱키, 언젠가는 방문하고 싶은 포르토와 방콕과 후쿠오카 등도 포함된다. 또한 날씨를 볼 때는 그 도시의 대기질(Air Quality Index)도 함께 본다. AQI는 대기가 얼마나 오염됐는가를 파악하게 해 준다.
서울과 부산과 뉴욕의 대기질을 비교해 보면 금세 차이를 알 수 있다. 어쩌다 한 번 보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자주 비교해 보는 게 중요하다. 그럼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서울의 공기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부산은 바닷가에 있으며 한반도의 동남쪽에 있어서 서울에 비해 훨씬 따뜻하고 대기질도 좋다. 서울의 하늘을 가득 메우는 매연과 분진과 황사는 부산에서 훨씬 덜하다. 자동차도 사람도 건물도 부산은 서울의 3분의 1 정도라고 해야 할까. 잘 모르지만, 바닷바람이 불어서 부산 상공의 공기도 자주 바뀔 것 같다. 그런 건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사는 데 있어서 매우 종요한 요소다.
두 번째로, 주거비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자세하게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은 과도하게 비싼 것으로 보인다. 한국 부동산 가격은 폭락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타국에 사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국가소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인구 감소 문제는 심각하다. 요즘 그 심각성을 자주 입에 올리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다가오는 결정된 미래를 충분히 예상하지 못하는 듯하다. 수십 년 내로 인구의 절반이 사라지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또한 그것이 그저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하게 결정된 미래인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어떤 의미로는 인구 감소가 축복이긴 하지만, ‘정도’의 문제가 개입된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한국의 인구는 빠르게 감소하게 될 것이고, 거기서 파생되는 수많은 결과들 가운데 하나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다. 전국적으로 빈집은 수도 없이 늘어날 것이고, 신축 건물만 좋아하는 사람들로 인해 구옥은 폐가로 쉽게 변할 것이다.
한국에 특별하게 발생하는 구옥 문제는 허술하게 지은 아파트 단지에서 더욱 큰 특징을 드러낼 것 같다. 거의 모두 대단지로 지어놓아서 낡은 아파트 건물에서 떠나기도 어렵고 재건축과 재개발도 어렵게 될 것 같다. 경제적 여유가 많을 때는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이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 빈곤해질 때는 그것이 불가능해진다.
늘어나는 빈집과 구형 아파트 건물들은 점점 동네를 흉하게 만들고, 각종 편의시설과 문화의료 시설 폐쇄로 이어질 것이며, 실망하거나 절망하는 주민들을 떠나게 할 것이다. 서울에 살아서 그런 것을 잘 모르겠다면 당장 시골 또는 부산 같은 지방 도시에라도 가보기 바란다. 웬만한 시골에는 이제 거의 노인들만 남아서 살고 있다.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은 오늘날 속칭 ‘노인과 바다’라고 불린다. 젊은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노인들만 남는 추세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부산에서 한 달간 충분히 느끼기도 한 사실이다. 서울과는 매우 다른 풍경이다. 젊은이들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에 관해서는 수많은 비판이 있어왔지만 한국의 정부와 정치인들은 기업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한 편의시설과 문화예술시설과 기업들을 불공정하고 편파적으로 서울로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아무튼 내가 조사한 바로는, 부산의 주거비는 서울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비싼 대형 아파트부터 소형 원룸까지 모두 그렇다. 믿기 힘들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네이버 부동산을 잠깐 살펴보면 금세 수긍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한 달 살기를 하는 여행자 입장에서도 금세 알 수 있는 문제다. 여행자 입장에서 서울 강남에서 고층건물의 깨끗한 원룸을 한 달간 임대하려면 한 달에 200만 원 이상 들어간다. (보증금이 매우 적거나 없도록 하고 한두 달만 거주하는 단기임대나 숙박을 찾으면 이런 가격이 나온다.) 그러나 이미 밝힌 것처럼 부산의 중심지인 서면에서 나는 130만 원 정도를 지불했다. 그것도 상대적으로 매우 비싼 부동산 중개료를 포함해서 말이다.
부산에서 한 달 식비 또한 서울보다 훨씬 적게 든다. 여행자이기 때문에 어쩌다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을 포함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한 달 살기에서는 거의 매일 밖에서 사 먹을 수밖에 없으므로 이것은 더욱 의미 있는 차이를 나타낸다. 부산과 서울의 식비를 비교하면 아무리 적어도 한 달에 수만 원은 차이가 날 것이다.
세 번째로, 서울에 비해 부산에는 건물과 사람과 자동차가 적다. 그래서 훨씬 덜 북적거린다. 물론 지방 소도시나 시골에 비해서 부산은 대도시로서 수많은 건물과 자동차를 가지고 있고 인구도 훨씬 많다. 계속 감소 중이지만 아직도 부산 인구는 한국 제2의 도시로서, 2022년 현재 328만 명이 넘는다. 2032년쯤에는 307만 명 정도로 줄어들면서 인천과 비슷한 인구에 이를 것이다. 2042년에 부산 인구는 283만 명으로 줄어들지만, 인천 인구는 301만 명 정도로 유지하면서 확실하게 한국 제2의 도시가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천은 서울에서 건물들이 쭈욱 연결된 곳이라서 서울의 연장선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수도권에 있는 여러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수도권 전체 인구가 곧 ‘메가서울'(Mega Seoul) 인구에 속하며 그 인구가 한국 인구의 절반 가까이 이르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도시화와 대도시 집중 현상이 벌어지긴 하지만, 한국처럼 하나의 도시 권역에 인구의 절반이 집중되어 사는 나라는 한국 이외에 없다. 이것이 한국의 축복이며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