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한 달 살기 (58)
부산이 '한 달 살기'를 하기에 좋은 대표적인 이유는 바닷가에 있다는 것이다.
바다가 주는 효과는, 비록 아름다운 한강이 있지만 서울이 따라올 수 없는 부산의 특징이다. 부산은 한반도의 동남쪽 끝에 있어서 동해와 남해를 아우르는 풍경을 자랑한다. 해운대와 광안리 등 유명 해수욕장이 아니라 해도 부산에서 바다를 접할 수 있는 곳은 무수히 많다.
해운대는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이며, 광안리는 최근에 가장 각광을 받는 해수욕장이다. 나는 특별히 다대포해수욕장이 가진 매력에 반했다. 고운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는 다대포해수욕장에서 붉은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면 내가 하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조용하고 맑은 송정해수욕장은 최근 서핑의 성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모든 해수욕장은 모두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에서 멀지 않아서 접근도가 매우 높다. 그야말로 수영복을 안에 입고 겉옷만 걸친 채 지하철을 타고 해수욕장으로 갈 수도 있다. 부산의 해수욕장은 주거지 및 각종 편의시설과 매우 가까워서 바닷가의 낭만과 도시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만약 어느 맑은 여름밤, 아주 약한 썸을 타고 있는 커플이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두 시간만 함께 보낸다면 그들은 금세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오륙도는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접점이다. 동해를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는 해파랑길과 남해를 따라 걷는 남파랑길의 시작점이 바로 오륙도이다. 영도에서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을 잇는 구도심은 부산의 최대 관광 명소다. 서면은 부산 전체 교통의 중심점 역할을 하며 기업들과 오피스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센텀시티와 수영만 지역은 부산이 지향하는 첨단도시의 미래를 보여준다.
부산은 한국 최대 항구도시인만큼 해산물로도 유명하다. 수많은 맛집이 있어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객들에게 부산은 다양하고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내가 본 자갈치시장을 비롯한 부산의 해산물 관련 업계는 매우 어두워 보였다. 자갈치시장은 매우 썰렁한 분위기였으며, 다른 횟집들도 사정은 비슷해 보였다. 그것은 코로나19 위기 이후 가라앉은 외식문화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오염수 방류로 더욱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한 달 살기를 정하는 데 있어서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지, 여행을 위한 경제적 여유가 충분한지, 또 다른 누구와 함께 여행을 왔는지 등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경제적 여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뚜벅이 여행을 하면서 나 혼자서 먹고 지내는 데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산에 왔다. 나의 한 달 살기 경비는 2천 달러에 못 미쳤고, 나는 거기에 만족한다.
한국은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만으로도 여행하기 좋은 나라다. 만약 미국에서 자동차 없이 여행하려고 한다면, 뉴욕시 외에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보다 훌륭하고 편리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거의 없다. 한국인들만 그런 것을 모르는지 모르지만, 자동차 강국답게 한국인들은 유난히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려고 한다.
특히 서울에서 그런 것을 많이 느꼈다.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는 대중교통수단인 지하철과 버스를 보유했으면서도 굳이 자동차만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강남에서 한 달간 머물면서 나는 강남의 주요 도로들이 툭하면 거대한 주차장처럼 변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출퇴근 시간에 강남의 왕복 14차선 도로 전체가 그 모양이다.
주차 문제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한다. 지하 여러 층까지 가파르고 좁은 통로를 빙빙 돌아 내려가서 주차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세상에 그렇게 좁은 도로를 통해 깊은 지하로 내려가면서 주차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 없지 않을까. 거대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에서 다른 자동차 앞에 자동차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가는 나라도 한국 외에는 없을 듯하다.
한국에서 뚜벅이로서 여행하는 것은 행복한 일에 속한다. 지하철과 버스와 기차 등 대중교통수단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전거 도로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훌륭한 시설이다. 게다가 교통비도 낮고, 직원들은 매우 친절한 편이다.
전국적으로 걷기 좋게 둘레길도 잘 만들어져 있다. 워낙에 좁은 나라라서 마음만 먹으면 여행하다가 아무 때라도 하루 안에 또는 반나절만에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편의점과 식당도 매우 많아서 어디에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런 편의시설에서 식사를 하는 비용은 매우 저렴한 편이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떡볶이와 어묵과 김밥도 저렴한 가격에 사 먹을 수 있다.
부산은 아름다운 바다 풍경 외에 이 모든 장점을 가지고 있다.
숙박시설 또한 매우 다양하고 저렴하다.
외국에 여행을 갈 때는 주로 호텔이나 모텔에서만 숙박해야 한다. 요즘은 에어비앤비처럼 공유숙박시설도 있긴 하지만, 역시 전체적으로 보면 여행자들에게는 호텔이 가장 중요한 숙박시설이다.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고시텔이나 원룸 시설까지 매우 발달되어 있다. 그런 시설에서 일주일 또는 한 달간 묵는 것이 어렵지 않다.
부산 역시 그러한 숙박시설이 서울 못지않게 갖춰져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서면 근처에서 그런 숙박 시설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거의 대부분 즉각 입주가 가능하다. 가격은 서울에 비해 훨씬 싸다.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정하는 것은 여행자의 생각에 따르다.
어떤 이는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과 같은 시골 마을을, 어떤 이는 속초나 여수 같은 소도시를, 또 어떤 이는 전주나 경주 같은 역사적 고도를 택할 수도 있다. 만약 그런 곳에 간다면 서울이나 부산에 비해 조용하게 지내기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소위 관광지 또는 볼거리는 상대적으로 적다.
부산은 바닷가에 있는 대도시라서 볼거리가 무척 많은 편이다. 이미 내가 소개한 여러 관광지는 일부에 불과하다. 부산에서 세세하게 살펴보고 다니고 싶은 곳은 무척 많다.
이래도 부산이 '한 달 살기'를 하기에 최적화된 도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것이 서울과 뉴욕애서 살았던 내가 부산을 ‘한 달 살기’에 최적화된 최상의 후보라고 여기고, 직접 체험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