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필로그

부산에서 한 달 살기 (60)

by memory 최호인

부산은...

부산은 한 마디로 말하면 매우 매력적인 도시다.


한국 최고의 해수욕장들들과 적당하고 예쁜 산들과 여러 둘레길과 많은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흔적과 최첨단 현대시설이 공존하고 있어서 여행자들에게 다양하고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나중에 이민 간 후에는 서울보다 뉴욕에서 더 오래 살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언제나 서울과 뉴욕이 나의 고향과 같다. 그런데 나에게 새롭게 깊은 인연을 맺은 제3의 도시를 꼽으라면 이제 부산이라고 말할 것이다.


여러 곳에 여행을 다녔지만, 부산처럼 온전히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한 것은 처음이다. 이미 서울을 방문하면서 한 달 살기를 수차례 했지만 그것은 부산에서의 한 달 살기와는 전혀 다르다. 서울은 나의 고향이고, 지리적으로도 익숙한 곳이고, 친구들도 있어서 낯설지 않다.


부산에 실제로 거주한 기간은 4주가 채 안 되는 기간이지만, 그간 거의 쉬는 날도 없이 다녔으니 한 달간 살았다고 해도 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간 나름대로 부산에서 성실하게 다녔다고 자부한다. 가능하면 부산 전역을 다니려고 노력했다. 또 가능하면 걸어 다니고자 했다. 어차피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 마당에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고 지하철이 안 닿는 곳은 버스를 타고 다녔다.


걸어 다니면 느리긴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볼 수 있다. 거리 풍경을 더욱 자세히 볼 수 있고, 동네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뒷골목 냄새까지 맡을 수 있고, 가끔씩 열린 문이나 창문을 통해 점포와 집 내부도 볼 수 있다. 아파서 느리게 걷는 노인과 뛰어노는 어린애와 일하느라고 바쁜 사람의 얼굴과 몸짓도 볼 수 있다.


부산에서 특히 전통시장 안을 거닐면서 사람들과 여러 상품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무척 흥미로웠다. 부전시장과 국제시장 같은 큰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바쁜 가게와 너무나 한가해서 금세 문을 닫을 것 같은 가게들을 보는 것은 나에게 다채로운 감흥을 전해 주었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걸어서 여행할 일이 없다. 내가 원래 트래킹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한국에서, 특히 부산에 와서 이렇게 걸어 다니면서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부산이 모두 아름답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 사는 어디라도 마찬가지다. 지저분한 곳도 있고 시끄러운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서울과만 비교한다면, 부산의 자연환경은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공기는 훨씬 맑고 하늘은 더 푸르며 자연은 더 깨끗하다. 부산은 대도시이기는 하지만 서울처럼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해수욕장들은 부산의 큰 자랑이며 자산이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다대포와 송정 등 다섯 해수욕장을 방문했는데, 모두 좋았다. 특히 광안리 해변은 가장 신나고 재미있는 곳이다.


그러나 부산의 서글프고 안타까운 풍경도 자주 보았다.

손님 하나 없는 텅 빈 지하상가. 바구니에 배 두 쪽 올려놓고 좌판 장사하는 할머니. 시장에 납작 엎드려서 구걸하는 사람. 밤늦게 어묵 하나 만두 하나 더 팔기 위해 애쓰는 노점상. 2천 원에 3개씩 파는 붕어빵 장사꾼.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아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젊은 여성. 시장에서 목청 높여 싸우는 노인들...


주로 서면역 부근에서의 경험이지만, 나는 가난한 노인들을 많이 보았다. 부전시장 골목에서 힘들게 다니는 노인들과 하릴없이 서성거리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았다. 이 시대에 허리가 완전히 구부정한 채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노인들을 보는 것은 내 마음을 무척 안타깝게 했다.


어느 날 저녁, 상점들이 문을 닫는 자갈치시장에서 어떤 젊은 남성이 짐을 싣고 다니는 카트 위에 어머니로 보이는 할머니를 태우고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서 걷기가 어려운 듯했다. 하필 벽돌로 울퉁불퉁하게 포장된 도로라서 카트가 심하게 덜컹거렸고, 할머니는 계속 “아이고아이고” 하면서 아픔을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카트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두 손을 허리 뒤로 돌려서 카트를 꼭 잡고 있었다.


한국에서 젊은이들은 대학만 졸업하면 일자리를 찾아서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린다. 부산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부산을 속칭 ‘노인과 바다’라고 부른다는 것을 들었다. 그만큼 부산은 빠르게 노인들만 많은 도시로 변하고 있음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부산의 미래가 점점 어두워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이 사라지는 도시는 활력을 잃기 마련이다.


그런 문제는 부산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서… 하여간 매우 안타깝다.


부산의 인구는 어차피 줄어들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부산에게 다가오는 최대 난관일 것이다. 나는 부산이 서울과 같은 초거대도시를 모방하면서 따라가려고 노력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산은 이런 상황에서 차라리 어떤 도시도 경험하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걷기를 희망한다. 그 과정에서 부산의 독자성과 창조성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다. 그것이야말로 부산의 미래를 위해 부산 시민에게 닥친 최대 도전이자 과제일 것이다.




부산에서 한 달 살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것은 나 혼자서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이다. 나아가, 친절한 부산 사람들과 잘 꾸며진 도시 시설과 우수한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그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아름다운 부산이 앞으로 더욱 창조적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부산 시민들은 그 안에서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빈다.


keyword
이전 29화부산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