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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Feb 12. 2024

오래가는 친구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오래전에 나는 가끔 오래가는 친구 관계가 어떻게 탄생하고 유지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내가 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교회친구들과 자주 논의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명확한 결론을 찾았다는 기억은 없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우정'이나 '친구'라는 개념은 우리의 주된 화두였다. 우리에게는 가족과 학교라는 더 오래된 공동체 또는 '세계'가 있었지만 거기에다 '또래친구 집단'이라는 또 하나의 공동체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사춘기 단계를 지나면서 그 공동체는 우리에게 어쩌면 가장 중대하고 의미 있는 내용으로 발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족이나 학교는 비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이지만, 친구관계는 자발적이고 자의적인 의사결정과 매우 강력하고 지속적인 자기의지와 열성적이고 인내를 필요로 하는 갈등해결 과정을 필요로 한다.


초등학생 때도 친구의 개념이 존재했지만 그때는 아직 우리가 '놀이'단계에 있었으므로 서로에게 '자아' 가치를 전달하기 어려웠다. 아직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놀이를 위해서 누구와도 쉽게 친하고 쉽게 잊을 수 있었다.




친구 관계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친함의 성격이나 정도를 판단하고 느끼는 것이 달라서, 일률적으로 어떤 수준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친구'와 '지인'을 구별하여 세부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 것은 학문적 성격으로 증명되거나 규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딱히 경계선을 그어서 구분하기 힘들다.


사람마다 친구의 개념이 다르고, 친구를 포용하는 능력도 다르고, 친구라고 생각하고 대하는 감정이나 태도도 다르다. 친구 관계는 매우 자연스럽고 간단하게 자리를 잡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런 관계로 남기가 극도로 어렵기도 하다.


진정한 친구 관계는 일부러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될 대로 되라는 듯이 아무 노력도 안 하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자기의 성격에 딱 맞는 사람만 찾아서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에게 딱 맞는 사람만 친구로 두려는 사람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보이지만,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일 때가 많다. 그런 사람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 사람을 금세 회피하고 멀리하게 되므로 결국 친구가 별로 없게 확률이 높다. 한 마디로, 사람을 너무 가려서 까다롭고 피곤한 스타일이다. 그런 사람은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심지어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고 평가받을 때가 많다.


물론 자기 성격에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오래가기도 힘들다. 그런 사람들은 한동안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 생각하다가, 결국 서로 맞지 않음을 깊게 느끼면서 돌연히 돌아서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귀기 전까지는 상대가 자기에게 잘 맞는 친구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종종 잘해주고 나서 상처를 입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사회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사회화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친 후에...


학창 시절을 지나 사회로 나가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는 진정한 친구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과거에 이미 많은 상처를 경험했고, 그런 경험에 기초해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자신도 모르게 발동하기 때문이다.


이미 머리가 커질 대로 커져서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거나 손해를 볼 것처럼 예상되는 타인을 경계하고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손해를 본다는 것을 상처를 입는다는 것으로 바꿔 말해도 마찬가지다.




좋은 친구 관계를 만드는 가장 일반적인 것은, 단 둘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만날 때 그중에서도 특히 가까운 친구를 두는 것이다. 그런 친구는 단 둘의 관계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린다는 객관적 상황이 우정을 쌓는 데 도움을 준다. 학교나 교회 친구들은 그렇게 되기가 편하다. 저절로 여럿이 정기적으로 오랫동안 만나게 되고, 거기에서 오랫동안 상대방을 서로 알아가면서 친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나의 경험상, 너무 어릴 때 만나고 거기에서만 머문 친구는 훗날까지 친구로 남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훗날까지 친구로 남기 위해서는 내가 보기에는, 사춘기 정도는 지나서 만남의 관계를 성실하게 유지할 때 가능한 것처럼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람은 사춘기가 지나면서 한 개인으로서 자아의식이 자라나고, 타인과 명확히 구별되는 독립된 주체로서의 인간성이 확립되는 듯하다. 그렇게 자기 주체성을 가지게 되고 자기만의 정체성과 주관이 제법 또렷해졌을 때, 바로 그때쯤 이미 유지되고 있었거나 새로 만나서 친해진 사람이 결국 일생 동안 친구나 지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사춘기 이전에 만났다가 헤어진 친구들은 서로 자신의 온전한 주체성이나 객관화된 인간의식이 결여된 채 놀이 단계에서만 어울렸던 관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춘기 이후에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뚜렷한 자아를 정립하면서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또 그런 주체적이고 의식적인 자아들이 서로 호의적인 관계를 형성해 갈 때 공통의 경험과 추억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친구나 지인으로 남게 된다.


이런 생각이 꼭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경험을 돌이켜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위에 올린 글은 나의 장편 소설 '걷거나 타거나'에서 어릴 적 동네 친구들에 관해 적은 한 장에 속한 내용 일부를 수정 보완한 것임을 알려둔다.

https://brunch.co.kr/@4memory/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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