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자기 반영과 자기 복제, 입은 삐뚤어져도 바로 말하자. 내가 너를 통해 사랑하는 건 내가 이미 알았고, 사랑했던 것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해서, 시든 꽃과 딱딱한 빵과 더럽혀진 눈(雪)을 사랑할 수 없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해서, 썩어가는 생선 비린내와 섬뜩한 청거북의 모가지를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랑은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할 뿐,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아장거리는 애기 청거북의 모가지가 제 어미에게 얼마나 예쁜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이성복 -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
그런가 봅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할 만한 것들만 사랑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고 싶은 것에만 빠지고, 사랑할 수 있는 것들에게 만 사랑을 주었을지도요. 첫눈에 반하고, 금방 사랑에 빠진 그 모든 것들은 어쩌면 '사랑할만한 것 들'이었기 때문이 아닐지요.
시인의 일갈은, 사랑으로 모든 걸 무마하던 우리의 교만에 제동을 겁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걸 퉁치려 했던 우리의 성급한 욕망을 벗겨줍니다.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했었습니다. 이젠 사랑 앞에 솔직해져야 하겠습니다. '너를 사랑해'가 아니라 ' 너의 사랑할만한 것들을 사랑해'라고 말이지요.
사랑받을 만한 것들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입니다. 사랑받을 거리로 채워져 있던 것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면서, 그 안은 허세와 교만과 아집과 허튼 욕망으로 채워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안을 채울 새로운 사랑거리를 찾아봅니다. 사랑받을 지혜와 사랑받을 겸손과 사랑받을 용기와 사랑받을 단단한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당신의 사랑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