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는 곳까지 나는 날지 못한다 너는 집을 떠나서 돌아오지만 나는 집을 떠나면 돌아오지 못한다
네 가슴의 피는 시냇물처럼 흐르고 너의 뼈는 나의 뼈보다 튼튼하다 향기를 먹는 너의 혀는 부드러우나 나의 혀는 모래알만 쏘다닐 뿐이다
너는 우는 아이에게 꿀을 먹이고 가난한 자에게 단 꿀을 준다 나는 아직도 아직도 너의 꿀을 만들지 못한다
너는 너의 단 하나 목숨과 바꾸는 무서운 바늘 침을 가졌으나 나는 단 한 번 내 목숨과 맞바꿀 쓰디쓴 사랑도 가지지 못한다
하늘도 별도 잃지 않는 너는 지난겨울 꽁꽁 언 별 속에 피는 장미를 키우지만 나는 이 땅에 한 그루 꽃나무도 키워보지 못한다
복사꽃 살구꽃 찔레꽃이 지면 우는 너의 눈물은 이제 다디단 꿀이다 나의 눈물도 이제 너의 다디단 꿀이다
저녁이 오면 너는 들녘에서 돌아와 모든 슬픔을 꿀로 만든다
꿀벌 - 정호승 ======================== 우연한 기회에 꿀벌의 사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양봉을 하는 지인이 꿀벌들의 집을 자세히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벌이 지나가면 쏘일까 봐 지레 겁먹곤 했었는데, 막상 벌들이 모여사는 모습을 보니 벌들의 질서와 습성에 경외감이 느껴집니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의 질서와 여왕벌을 중심으로 한 규율과 종족 번식의 섭리를 따르는 본능과 공동체에서 욕심부리지 않는 절제의 모습이 어찌 보면 사람 사는 사회보다 나은 것 같다 하는 생각도 잠시 듭니다.
아이를 달래듯, 말을 건네듯 조심스레 다정하게 꿀벌들을 다루는 지인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 앞에 겸손하고 수확에 감사하는 순수의 손길을 느낍니다.
꿀벌들의 사는 모습을 생각하며, 그 꿀벌과 같이하는 손길을 생각하며, 정호승 시인의 꿀벌 한 구절을 그려봅니다.
종일 세상을 다니다가 종일 꽃길을 거닐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와 세상의 슬픔을 꿀로 만든답니다.
그래서일까요. 꿀에선 세상의 슬픈 쓴맛도 느껴집니다 세상의 밝은 꽃향도 느껴집니다. 아픈 아릿함도 있습니다 행복한 달콤함도 있습니다. 그렇게 눈물로 만든 꿀맛인가 봅니다.
오늘 또 어느 꽃밭 사이에서 분주히 꽃가루를 모을 벌들의 비행을 응원합니다 오늘 또 어느 외로운 하늘 아래에서 분주히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응원합니다 -사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