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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May 26. 2021

어느 대나무의 고백 - 복효근

사노라며늬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하건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치고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장군죽비
하다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어느 대나무의 고백 - 복효근

하늘이 천천히 내려오더니 오후 들어서 바람이 붑니다. 그 바람에 빗방울 몇 조각 담아 바람이 제법 불어댑니다.
이사 온 집에 대나무를 몇 그루 심었습니다. 처음 화분에 있을 땐 바람 불 때마다 쓰러져서 단단히 묶어놓곤 했었는데, 분갈이를 하여 큼지막한 자리를 마련해주니 오늘 같은 바람에도 잘 버팁니다.
2주 전만 해도 손가락 길이만 한 죽순이 고개를 내밀길래 언제 자라려나 했더니 어느새 내 허리보다 더 높이 자라 있습니다. 대견스럽습니다
우후죽순이라더니 비 몇 번 맞더니 정말 금방 자라납니다.

바람맞는 대나무를 보며 복효근 시인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 중 한 소절을 그려봅니다.
단단한 대나무라 모든 사람에게 인식된 나무지만, 정작 그 대나무는 참새 한 마리 무게에도 휘청대고, 바람이 불면 허리가 빠개지도록 휘고 흔들린다 합니다.

사람 사는 모습도 그런가 봅니다.
누구나 그런 속사정이 있으려나 봅니다.
함부로 고백하기 어려운,
허투루 흘려듣기 어려운,
속 빈 대나무처럼 텅 빈 마음에 들어선 공허와 회의를 한가득씩 마음에 담고,
그렇게 우리도 대나무처럼 그렇게
휘청이며,
흔들리며,
떨면서 살고 있나 봅니다.

바람 부는 날,
공허한 우리의 가슴에 따스한 희망이 가득 차길 바라며, 편안한 하루 마무리하시길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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