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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Jun 12. 2021

육십 세 - 최영미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허리가 구부러지고

발은 느려지고

피부는 까칠해지고

머리카락은 빠지고

눈은 희미해지고


하늘은 낮아지고

지구는 점점 따뜻해지고

더러운 땅에 안주하며


아주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불평쟁이가 되었다.


최영미 - 육십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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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 초반, 이제 막 뛰어다니기 시작한 사회생활에 허덕이던 그 시절. '서른, 잔치는 끝났다'며 세상에 일갈하던 최영미 시인의 존재는 서른을 막 시작하려는 내게 강렬하게 기억되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사람 사는 세상에서 큰 괴물과의 사투를 벌이는 소식을 접하면서도 내 삶의 괴물과의 전쟁을 견뎌내느라 그저 도움되지 못할 응원만을 보내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가끔 인스타에서 눌러주신 '좋아요'에 감사하던 중 새로 발간된 시집 '공항철도'를 드디어 손에 쥐었습니다.


그 시집에 실린 시 중에 '육십 세'를 그려봅니다.

잔치 끝난 서른에서 또 그렇게 서른 해가 지나고,

세월은 그렇게 육십이란 단어를 무심하게 툭 던져놓고 가나 봅니다.

내가 받고, 네가 받고, 잠시 후 누구나 받게 될 그 세월의 육십.

한 바퀴 돌아 환갑.

세월의 큰 고리를 이제 다 돌았으니,

그 세월의 이치를 다 경험했으니,

이제 지혜와 용기로 시작해야 하지만,

이제 남은 건

구부러진 허리와 느린 발,

까칠한 피부와 흐린 눈입니다.


하지만 육십 엔 평안하기도 하려나 봅니다

작은 것에 만족하게 되고

마음에 평화를 갖게 하고

여전히 불평은 많지만

세상에 감사하게  되고 말이지요.


오랜만에

잔치 끝난 서른과는 사뭇 다른,

작은 것에 만족하는 불평 많은 육십의 하루를 살짝 들여다보는 휴일입니다.


세월 앞에 마주 선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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