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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Jun 26. 2021

수라 - 백석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아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수라 -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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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작은 정원 하나를 꾸몄습니다.  정원이라기보단 나무 몇 그루, 손바닥 만한 텃밭에 상추 몇 쪽 심어놓은 작은 공간입니다. 그래도 식물들이 있으니 가끔 올라가면 마음이 상쾌해지는 공간입니다.


토마토 모종 심은 옆에  줄기 올라오라고 기둥 몇 개를 꽂아 놓았습니다.

오늘 올라가 보니 꽃도 피기 전에, 열매도 열리기 전에 거미 가 자기 집을 예쁘게 지어 놓았습니다. 도대체 이 옥상까지 어찌 올라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밤사이에 지어놓은 집이 마치 배드민턴 네트처럼 촘촘하기도 합니다.

같이 먹고살자고 , 나눠 먹고살자고,

넓은 공간 같이 좀 나눠 쓰자 합니다.

그래서 그러자 했습니다.

나는 토마토 키워 먹고,

너는 날벌레 잡아먹고,

어울렁 더울렁 청산처럼,

얄리얄리 얄라성 별곡 부르며

그렇게 어울려 살자 했습니다.


집 지은 거미를 보고 백석 시인의 '수라'를 그려봅니다. 이 시를 읽으면 마치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처럼 가슴이 짠해집니다.

무심코 내어버린 거미가, 제 새끼를, 제 어미를, 제 형을 , 제 누나를 만났으면 하는 시인의 짠한 마음이 그려집니다.

부디 옥상의 거미들은 이곳저곳에 각자의 집을 지으며, 어두운 밤이면 엄마며 아빠며 형이며 누나가 모여 별밤 다 가도록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그런 마을이 되면 좋겠습니다.


토요일 늦은 저녁,

거미줄 한마디에 포근한 가족의 마음을 생각해보는 그런 하루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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