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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Aug 04. 2021

팔월 - 김정원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할아버지가 대인시장에서 수박을

고르신다

가운뎃손가락으로 수박을 툭툭 두드려 보고

"잘 익었다" 하시고


노점상 널조각 곁에 바짝 쪼그려

앉은

내 머리를 툭툭 두드려 보고는

"아직 멀었다" 하신다



김정원 - 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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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뱉는 숨보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더 뜨거운 날들입니다.

하루하루가 점점 더워지는 게 지구가 심상치 않다 싶습니다


모든 게 녹아내릴 것 같은 팔월의 한 낮, 좋은 글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동시 한 구절을 만났습니다.


할아버지와 시장에 수박을 사러 간 손주의 모습입니다.

수박을 두들기며 잘 익은 녀석을 골라내고는, 손주 녀석의 머리통을 툭툭 치며 아직 덜 익었다며 농담하시는 할아버지의 장난이 유쾌합니다.


아이스께끼 하나 손주 입에 물려주고, 뜨거운 팔월의 더위에 실한 수박 하나 들고 오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붓을 들어 수박 한 통 올려놓고는,

툭툭 내 머리도 한번 두들겨 봅니다.


사실 저도 이 나이 되도록 수박을 두들겨서 어떤 게 맛있는 놈인지 구별은 못하기에, 두들겨 본 머리가 그저 아프기만 합니다

어쩌면 저 할아버지께서 '너도 아직 멀었다'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뜨거운 여름날,

오늘은 잘 익은 수박 한 통 들어볼까나요.

시원하게 얼음 띄워서 아직 멀은 우리끼리 먹어 볼까요.


세상 모든 이들의 건강한 여름을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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