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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Sep 02. 2021

미완성을 위한 연가 - 김승희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슬픔이

시작되어야 하리

하나의 슬픔이 시작되려는

저물 무렵 단애 위에 서서

이제 우리는 연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고

서로에게 깊이 말하고 있었네


하나의 손과 손이

어둠 속을 헤매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스치기만 할 때

그 외로운 손목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무엇인지 알아?

하나의 밀알이 비로소 썩을 때

별들의 씨앗이

우주의 맥박 가득히 새처럼

깃을 쳐 오르는 것을

그대는 알아?


​하늘과 강물은 말없이 수천 년을 두고

그렇게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네

쳐다보는 마음이 나무를 만들고

쳐다보는 마음이 별빛을 만들었네

우리는 몹시 빨리 더욱 빨리

재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기에

어디에선가, 분명,

멈추지 않으면 안 되었네,

수갑을 찬 손목들끼리

성좌에 묶인 사람들끼리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그리움이 시작되어야 하리,

하나의 긴 그리움이 시작되려는

깊은 밤 단애 위에 서서

우리는 이제 연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필요치가 않다고

각자 제 어둠을 향하여 조용히 헤어지고 있었네……


미완성을 위한 연가 - 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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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슬픔이 시작되고

그렇게 그리움이 깊어져야 한다 합니다

하늘과 강물이 수천 년을 두고 서로를 보며

나무로 뻗어 오르고

별빛으로 내려오면서

그렇게 서로의 슬픔과

서로의 그리움을 그러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익어가려는가 봅니다.


우리네 삶도 그러합니까.

나의 삶을 완성 키위 해

슬픔의 눈물이 한 방울 필요하고

나의 삶이 완성되기 위해

당신 향한 그리움도 삼켜냅니다.

하늘과 강물처럼

그렇게 나의 아픔이 당신을 일으키고

당신의 걸음이 나의 심장을 뛰게 하나 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그렇게 미완성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으로 손을 마주 잡으려 하나 봅니다.


오늘의 눈물도

어제의 그리움도

나와 당신의 마주함을 위한

초롱한 자양분이 되나 봅니다.


당신,

안녕하시지요.

당신,

건강하시지요.

당신,

그립습니다.


세상 모든 그리움들의 애틋한 손길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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