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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Oct 28. 2021

마음의 분갈이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가을 아침 햇볕이 좋습니다.

대나무 화분 사이로 드리워진 그림자에 가을 냄새가 가득합니다.

좋은 볕에 작은 화분 하나 내어 놓습니다.

한껏 잎을 뻗어 내민 녀석이 가을바람에 기분 좋아하는 듯합니다.

그 모습이 더 흐뭇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이 녀석은 달랑 줄기 하나 늘어뜨린 채 거의 시들어가던 아이였습니다. 폐업하는 어느 가게에서 물도 제대로 못 먹고 그렇게 시들어갈 참이었습니다.

그 녀석을 받아와 조심스레 분갈이를 해줬습니다.

뿌리도 약하고 줄기도 약해져 있어 잘 살아날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답답한 플라스틱 화분에서 꺼내 분갈이를 해 주었습니다.

뿌리에 바람도 쐬어주고, 자리도 잡아주고, 다른 흙을 잘 채워주고 난 후에, 그렇게 햇빛 보이고 바람 쐬인지 서너달,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니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기분 좋은 튼튼한 줄기를 뻗어낸 예쁜 모습의 화분이 되었습니다.

분갈이하여 옮겨 심으니 천대받던 아이가 귀해집니다. 본모습은 이리 귀하고 예쁜 아이였습니다.


가을바람에 살랑이는 녀석을 보며 우리네 삶도 생각해봅니다.


살다 보

변하지 않는 시간에,

변할 것 없는 환경에,

변함없는 마음에 지칠 때가 있습니다.

무기력한 세상에 흥미가 사라질 때도 있습니다.

무의미한 시간에 지루할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답답하게 갇혀있는 우리의 마음도,

막힌 채 고여있는 우리의 시간도,

때론 분갈이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규율에 막히고,

세상의 편견에 걸리고,

세상의 불공정에 썩어가던 우리의 마음을,

지친 시간을 가만히 들어내고,

지친 어깨를 살짝 가볍게 해 주어,

답답한 마음이 커지도록,

좁은 시선이 넓어지도록,

그래서 식은 마음에서 새로운 사랑의 줄기가 피어오르도록,

조심스레 마음의 분갈이를 해 보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쩌면 새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원래는 반짝이던 우리의 귀한 마음을,

원래는 따스하던 우리의 고운 마음을,

자리 잡고 모양 잡은 귀한 모습의 우리의 마음을 말이지요.


세상 모든 마음들이 솎아진 분갈이로 평화로운 시간을 맞이하길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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