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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Dec 04. 2021

강우 - 김춘수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조금 전까지는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뼘 두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강우 - 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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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꽃'이라는 시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는 김춘수 시인의 '강우'입니다.


금슬이 좋기로 소문난 시인이었답니다. 그런데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혼자 적적히 지내던 어느 날, 그것도 비 오는 어느 날의 일입니다.

맵싸한 넙치 지지미 냄새에,

추적이는 빗방울에 습관처럼 아내를 찾습니다.

떠나고 오지 못함을 알면서도, 밖을 기웃거려 봅니다.

요즘으로 치면 뮤직 비디오 한 편이 그려지는 장면입니다.


마음이 아련해집니다.

그렇게 사소한 냄새로도,

그렇게 사소한 장소로도,

애틋한 그리움은 가슴에 몰아쳐 들어오는 게지요.


기온이 제법 내려간 주말입니다.

한 구절 읽고 괜스레 말랑해진 마음으로

오늘은 내가 밥상이나 차려볼까 봅니다.

넙치 지지미는 올려놓지 못해도

김치 한 종지 꺼내 볼까나요.


세상 모든 그리움들의 따스한 하루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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