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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Dec 06. 2021

월훈 - 박용래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첩첩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 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 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무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溫氣)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월훈 - 박용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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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그림을 만났습니다.

시를 읽는데, 내 눈앞에 펼쳐진 건 마음이 포근해지는 화면입니다.

장문이라는 부담감을 살짝 버리고, 천천히 한 번 읽어보세요.

마치 다큐멘터리의 어느 마을을 그리듯, 그렇게 천천히 줌 인 되어가며 그려지는 마을을 같이 상상해보세요.


월훈은 우리말로 달무리라 합니다.

달무리 짙은 겨울 밤, 창호지 사이로 새어나오는 모과빛 등불의 빛이 뽀얗게 펼쳐지는듯한 그림입니다.


때론 이렇게, 그림 같은 시가 마음에 들어옵니다.

행간마다 단어마다에 핏줄 선 외침과, 따끔한 훈계와, 가슴 서린 성찰이 없어서 편안합니다.

이런 편안한 시가 마음에 들어옵니다


시처럼 그렇게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하루이길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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