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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Dec 07. 2021

국물 - 신달자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메루치와 다시마와 무와 양파를 달인 국물로 국수를 만듭니다

바다의 쓰라린 소식과 들판의 뼈저린 대결이

서로 몸 섞으며 사람의 혀를 간질이는 맛을 내고 있습니다


바다는 흐르기만 해서 다리가 없고

들판은 뿌리로 버티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하지만

피가 졸고 졸고 애가 잦아지고

서로 뒤틀거나 배배 꼬여 증오의 끝을 다 삭인 뒤에야 고요의 맛이 다가옵니다


내 남편이란 인간도 이 국수를 좋아하다가 죽었지요

바다가 되었다가 들판이 되었다가

들판이다가 바다이다가

다 속은 넓었지만 서로 포개지 못하고

포개지 못하는 절망으로 홀로 입술이 짓물러 눈감았지요


​상징적으로 메루치와 양파를 섞어 우려낸  국물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바다만큼 들판만큼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몸을 우리고 마음을 끓여서 겨우 섞어진 국물을  마주보고 마시는

그는 내 생의 국물이고 나는 그의 국물이었습니다


신달자 - 국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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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국물 한 그릇이 끌리는 계절입니다.

오늘은 그런 국물 한 그릇 떠 올려 봅니다.

신달자 님의 국물이라는 시입니다.


바다의 쓰라린 소식과 들판의 뼈저린 대결이 몸을 섞으며 끓여내는 절묘한 표현의 국물입니다.

시인은 그 국물에서 살가운 동행이었던 배우자의 회상을 꺼내 줍니다.

그렇게 꺼내 건네 준  부부의 정의가 마음에 들어옵니다.

'몸을 우리고 마음을 끓여서 겨우 섞어진 국물을  마주 보고 마시는 그는 내 생의 국물이고 나는 그의 국물이었습니다'


바람 차가운 겨울 저녁, 뜨끈한 국물이 끌립니다.

어쩌면 그 이유는, 그렇게 바다로 들판으로, 뒤틀리며 꼬이며, 그렇게 서로가 섞이고 우려내어져 만들어진 동행의 마음이기 때문이 아닐지요.

오늘 저녁엔 뜨끈한 국물 한 번 같이 마주해볼까요.

구수한 배추 된장국도 좋고, 칼칼한 어묵국도 좋겠네요.

세상의 모든 이들이 맛난 국물 맛보는 좋은 하루이시길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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