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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 - 김경근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찬 파도 철썩이던 너른 동해바다

그물코 걸려 걸려 올려진 갑판 위

제 풀에 펄떡이며 배 뒤집던 밴댕이

비웃는 우리에게 던진 한마디

그래,

네 마음은 내 속보다

얼마나 넓더냐


밴댕이 - 김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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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국수 한 그릇이 생각나는 겨울 오후입니다.

끓는 물에 디포리 한 마리 던져 넣으니 구수한 국물이 우러납니다.

이 디포리가 밴댕이입니다.

우리가 흔히 '밴댕이 소갈머리'라 하며 속 좁은 이를 빗댈 때 이야기하던 바로 그 밴댕이입니다.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밴댕이 속이 얼마나 작길래 그런 이야기가 나올까 하고요.

찾아보니 어원은 따로 있었네요.

속이 작은 게 아니라, 이것은 사실 밴댕이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특성으로 인한 것인데, 밴댕이는 공기 중에 노출되는 그 순간부터 몸의 바깥부터 시작해서 빠르게 산화가 진행된다 합니다. 금방 죽을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펄떡거리는 것이지요.


그렇네요. 다 사연이 있었습니다.

밴댕이의 삶을 오해를 하여 괜스레 좁은 속이라 이야기했었습니다.

알아보면 다 이유가 있는 건데 말이지요.


어쩌면 우리네 삶도 그럴 겁니다.

도대체 이해 못 할 것 같은 어떤 이의 행동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사연을 들어보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해 못 할 일도 아니곤 합니다.


어쩌면 옹졸한 건,

어쩌면 속이 좁은 건,

다른 이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나의 마음, 나의 시선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국에서 꺼낸 밴댕이 한 마리가 내게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그래, 네 마음은 내 속보다 얼마나 넓더냐'


제 몸으로 맛난 국물을 만들어 준 밴댕이 한 마리에게서, 삶을 살아가는 뜨끈한 국물 한 사발 받아보는 오후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넓은 마음과 그 안에 평화가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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