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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 김춘수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 - 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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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읽어 보는 김춘수 님의 유명한 시 '꽃'이지만, 정작 붓끝에 묻힌 지는 오래된 듯합니다.

유리빛 겨울 하늘 아래에서 김춘수 님의 '꽃'에 묵향을 얹어봅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꽃들도

내가 키우지 않으면 그저 평범한 풀입니다.

주고받는 눈길이 없으면

화려한 꽃도 의미가 없습니다.

주고받는 마음이 없으면

짙은 향기도 의미가 없습니다.


당신이 불러주는 이름으로,

당신이 그려준 향기로,

당신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꽃이 됩니다


당신의 시선 안에서만 의미가 됩니다

당신의 눈짓 안에서만 향기를 피우는 꽃이 됩니다.

눈짓을 받아,

눈빛을 받아

나는 향기를 품고

나는 꽃으로 피어납니다.


그렇게

내가 존재함은

나를 보아주는 그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무성한 숲 속에서도,

메마른 가지 사이에서,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건,

꽃으로 불러주는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겨울이 지나고,

다가 올봄의 계절에

우리는 그렇게 꽃으로 피어날 겁니다

그 누구의 마음을 담아

그 누구의 눈짓을 담아

어느 골목 따스한 햇볕 아래

향기 품은 작은 들꽃으로

그렇게 피어날 겁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따스한 눈짓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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