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름다운 관계 - 박남준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 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 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워본 적 있었던가


아름다운 관계 - 박남준

------------------------------------

조밀한 글이 가득한 시에 선뜻 눈이 가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마음이 차분하지 않을 땐, 긴 시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조용히 끝까지 읽다보니 마음을 이리저리 굴려주는 고운 시를 만나는 날이 있습니다.

이 시가 그런가 봅니다.

'돌도 늙어야 품 안이 너른 법'이라 합니다.


늙어감이 부담스러워지는 시절에,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좁아짐을 느끼는 시절에,

채울 페이지보다 채워놓은 페이지를 뒤적거리는 헛헛한 시간들에,

이 한 구절, 나이 들어감에 대해 위로를 줍니다.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돌아보면,

내 마음도,

내 시간도,

이끼 하나 날아와 퍼지고 번지고,

소나무 씨 하나 곧게 키워 굵은 나무 하나 받쳐내듯,

그렇게 품 너른 바위가 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깨를 펴고, 품을 활짝 열어보며

세상 모든 이들의 품 너른 오늘을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아름다운관계 #박남준

#세월 #나이

#사노라면 #사는이야기 #손그림 #감성에세이 #시 #수묵일러스트 #묵상 #묵상캘리 #김경근

keyword
이전 10화용기도 포장이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