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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석습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입춘이 지났지만 계절은 여전히 겨울입니다.

며칠 동안 봄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던 기온은 오늘 다시 겨울 표정으로 바뀝니다.

오전엔 눈발까지 뿌려주며 봄 생각은 하지도 말라합니다.

꽃 대신 눈송이가 내려앉는 화단을 보니 문득 '조화석습 朝花夕拾'이란 단어가 생각납니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라는 뜻으로 ‘루쉰(魯迅)’이 이야기했지요.

아침에 떨어진 꽃을 보고 바로 주워 들어보거나 치우지 않고, 저녁이 되어서야 그 꽃을 줍는다 합니다.

어떤 일에 바로 반응하지 않고,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며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지요.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그 속도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넘쳐나는 세월입니다.

한 순간 한눈팔면 나만 빼놓고 세상은 막 달려갈 것 같은 시절입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꽃이 떨어지면 전후 사정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바로 치우고 또 다른 꽃을 찾아 나섭니다.


이런 조급함의 세월에 ‘조화석습’의 지혜를 생각해 봅니다.

떨어진 꽃을 바로 치워 버릴 것이 아니라,

후드득 떨어지는 꽃도 지켜보고,

그 꽃에 생기는 한낮의 그림자도 바라보다가,

저녁의 노을 비친 꽃을 집어 들어 봅니다.

짙어진 꽃의 향기도 맡아보고,

꽃잎의 시간도 느끼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에 여유를 넣어 보면서 말이지요.


이른 봄날,

나의 순간순간에 시간을 넣어 봅니다

바쁜 나의 마음에 쉼표를 찍어 봅니다.

오며 가며, 떨어진 꽃들에 시선을 줍니다

그 쉼표마다에 평화로운 마음을,

그 시선마다에 따스한 여유를,

꽃을 집어 든 저녁엔 짙은 꽃 향기를 느껴봅니다.


조금은 천천히 세상을 보고,

조금은 깊게 세상을 생각하고,

한번 더 나를 돌아보며,

다가 올 봄을 기대하면서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로운 시간을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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