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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과의 사투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마음 편한 싸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속 편한 전쟁이 어디 있을까요.

어느 싸움이나 어느 전쟁이나 서로 지치고 힘든 일이지만, 그중에 한쪽만 일방적으로 힘든 싸움이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과의 싸움입니다.


아내의 휴대폰이 고장이 나서 이참에 새 휴대폰으로 바꾸었습니다. 예쁜 새 휴대폰에 즐거운 마음도 잠시, 이제 휴대폰의 설정을 위한 긴 싸움이 기다립니다.

데이터를 옮기고 설정을 하는 일은 그나마 쉬워졌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사용하던 은행이며 카드며 개인 인증을 필요로 하는 앱들을 새로 설치해야 하는 일입니다.

뭐 그리 인증할게 많은지 뭐 그리 설치할게 많은지 말입니다. 인증이 끝나니 로그인도 다시 해야 하고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암호는 왜 그리 자주 바뀌었는지...

하다 하다 결국은 아이를 불러 도움을 받게 됩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설정해주는 아이를 보며 아내가 이야기합니다.

'아빠의 총기도 이제 한물갔네^^'

피식 웃으며 내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지 하며 짐짓 자신 있는 표정으로 나의 휴대폰을 초기화를 눌렀습니다. 이 참에 나도 새로운 기분으로 폰을 쓰고 나도 잘 설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말이죠.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결과는 어제 포스트를 못 올렸습니다.

밤새 폰에 매달려 설정하느라 말이죠.

아침에야 퀭한 눈으로 휴대폰을 켭니다.


그러게요. 이젠 총기도 떨어진 걸까요.

따로 반박할 말이 없는 게 더 약 오르네요.

한창 컴퓨터를 만질 땐 컴퓨터를 가지고 놀았는데 언제부턴가 하나 둘 모르는 게 생겨납니다.

하나 둘 버거운 게 나타납니다.

컴퓨터뿐일까요. 휴대폰의 설정이며 스마트 워치며 특히 매장에 설치된 키오스크 메뉴판 앞에 서게 되는 날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의를 다져야 합니다.


스마트 기기가 달려가는 속도가 내가 살아가는 속도보다 워낙 빠른 거지요.

따라가 보려 뛰다 보면 금방 지칩니다.

어쩌면 싸우기보단 천천히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내 아날로그의 걸음속도로,

내 붓이 쓰이는 속도로,

속상해하지 말고, 당황하지 말고,

여태껏 걸어온 그 걸음걸이로,

그동안 바라보건 그 시선으로,

내 길을 걸어봐야 할까 봅니다.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가 이제 일어나 움직이라 재촉합니다, 한 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세상 모든 아날로그의. 추억을 돌아봅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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