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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Jul 11. 2022

세상을 고치는 망치신공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가게에 있는 쇼케이스 냉장고가 고장이 났습니다.

더운 날이 계속되는데, 냉기를 전달하는 팬이 돌다 서다 하며 온도가 내려가질 않습니다. 수리 기사님을 불러서 팬을 새로 갈았는데도 그다음 날 또 말썽입니다. 아무래도 다른 부분이 고장 난듯합니다.


예전 포스트에도 썼듯이 ‘마이너스의 손’으로 자리매김을 한 나이지만,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겠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공대 나온, 글 쓰는 공돌이입니다. 나름 기체역학, 열역학, 동력학의 책에 침 좀 묻혔습니다.


두 팔을 걷고 나섭니다.

식구들이 긴장합니다.

걱정 말라는 눈길을 보냅니다. 다들 외면합니다.

가만히 쇼케이스 앞으로 가서 망치를 꺼내 듭니다. (잉?)

망치도 일반 망치가 아니라 나름 전문적인 고무 망치입니다. (잉?)

망치로 모터 근처의 이곳저곳을 두들겨 봅니다.

팬이 돌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산업혁명 이후로 시작된 기계산업의 가장 기본적인 만고불변의 원리는 역시 ‘기계는 두들겨라’입니다.

의기양양한 눈길을 뒤로 보내는데 잠시 후 팬이 다시 멈춥니다. 두들길 때만 돌아가다 이내 멈춰버립니다.


제법 심각합니다. 망치로 안될 땐 한 단계 높은 내공을 써야 합니다. 바로 ‘부품 갈기’지요.


고장이 의심되는 눈여겨 본 부품을 검색하여 파는 곳을 찾아냅니다. 서울 왕십리 구석의 어느 조그마한 가게입니다. 기다릴 수 없어 바로 부품을 사러 다녀옵니다. 왕복 세 시간의 여정 끝에 손에 부품을 쥐고 돌아옵니다.


이제 부품을 갈아야 합니다. 전문가들만 쓴다는 장비인 ‘드라이버’를 꺼내 듭니다. 긴장됩니다.

나의 다친 다리를 수술하러 들어오던 정형외과 의사선생님의 마음도 바로 이런 마음이셨겠지요.


심장이 멈춘 이에게 새 심장을 넣어주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부품을 갈아 끼웁니다. 혈관을 연결하듯 전선들을 연결합니다.  전원을 올립니다.

윙~하고 모터가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조용합니다.

등으로 땀이 한 줄 주르륵 흐릅니다. 뒤통수에 식구들의 눈길이 따갑게 와서 박히는게 느껴집니다. 가만 보니 전선 한 곳을 다른 곳에 끼웠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고수들일수록 자주 하는 실수입니다. 뭐 냉장고 안에 망치를 넣고 조립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케이블을 다시 연결하니 윙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팬이 돌아가고, 냉기가 돌아갑니다.

해 냈습니다. 쾌거입니다.

드디어 마이너스의 손이 망치신공을 가진 마이더스의 손으로 바뀝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당신의 바람대로 공대를 졸업한 아들이 해냈습니다.


망치 신공의 내공이 한 갑자 올라갔습니다. 이젠 망치로 툭툭 뭐든지 두들겨 고쳐지려나요.

그렇다면 이 참에 울엄니 아픈 다리도 고칠수 있을까요.

안쓰러움에 시린 가슴도 치유될수 있을까요.


뜨거운 여름에 지친 몸도,

짙은 그리움에 매양 쓰라린 마음도,

달려도 제자리인 듯 길기만 한 세월에 지쳐 삐걱대는 다리도,

희미해지는 기억도,

서로 대립하는 세상의 아픈 마음도,

그렇게 툭툭 망치로 고쳐볼 수 있르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기계치들의 환골탈태를 응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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