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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Oct 04. 2022

국화 옆에서 - 서정주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 국화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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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그치고 난 아침 공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이제 세상은 하루하루 본래의 나를 찾아가는 시간으로 접어드는가 봅니다.


이 조용한 하늘 아래 잔뜩 가을을 머금은 국화 송이가 보입니다.

이 계절에, 이 마음에 어울리는

국화 한 송이 붓에 얹어보면서 서정주 님의 국화 옆에서 한 구절 읽어봅니다.


살아오며 숱한 시간들을 함께 했던 문장들이지만 오늘은 문득 이 구절이 맘에 들어옵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야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쩌면 계속일 줄만 알았던 젊음의 길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날 삶의 뒤안길로 저만치 늘어서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국화꽃처럼 앉아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던 누님의 거울을 오늘은 내가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 거울 안에서, 숱한 소쩍의 울음과, 깊던 천둥 울음을 견뎌 온 한 송이 국화꽃을 마주합니다.


가만히 국화꽃 한 송이 들여다보며 거울 속 국화꽃에선 어떤 향이 피어나고 있을까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어보는 오늘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국화향 가득한 평화로운 하루를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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