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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Oct 10. 2022

멸치똥 - 복효근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똥이라 부르지 말자

그 넓은 바다에서

집채만한 고래와 상어와

때깔도 좋은 열대어들 사이에서

주눅들어 이리저리 눈치보며

똥 빠지게 피해다녔으니 똥인들 남아 있겠느냐

게다가 그물에 걸리어 세상 버릴 적에 똥마저 버렸을 터이니

못처럼 짧게 야윈 몸속에

박힌 이것을 똥이라 하지 말자

바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늘 잡아먹은 적 없이 잡아먹혀서

어느 목숨에 빚진 적도 없으니

똥이라 해서 구리겠느냐

국물 우려낼 땐 이것을 발라내지도 않고

통째로 물에 넣으면서

멸치도 생선이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적마다 까맣게 타들어갔을

목숨 가진 것의 배알이다

배알도 없는 놈이라면

그 똥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들어낸 자리

길고 가느다란 한 줄기 뼈가 있겠느냐

밸도 없이 배알도 없이 속도 창시도 없이

똥만 그득한 세상을 향하여

그래도 멸치는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등뼈 곧추세우며

누누천년 지켜온 배알이다


멸치똥 - 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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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고 점점 더 기온이 내려갑니다.

그동안 꺼놓았던 보일러도 다시 돌립니다.

고양이는 마루 한편으로 드는 햇빛 줄기를 찾아가 눕습니다.

오늘은 바람마저 많이 부는 스산한 날입니다.


이런 날엔 뜨끈한 국수가 제격일듯합니다.

시원한 멸치 국물을 내어 말아 낸 국수 한 그릇 생각하면서 복효근 시인의 멸치똥 한 줄 그려봅니다.


그러게요.

우리가 흔히 멸치똥이라 부르던 그것은 멸치의 배알이었네요.

멸치의 자존심이었네요.

배알 없이 똥만 가득한 세상을 보며,

가느다란 한 줄기 등뼈를 곧추세워

누누천년 지켜온 배알이었습니다.


세월을 거슬러 다시 비정상과 부자유와 탐욕과 무지의 깃발을 펄럭이며 모여있는 세상의 똥 덩어리를 향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뜨거운 국수 한 사발 말아먹는 내 뱃속의 배알이 꼿꼿한 멸치 앞에 부끄러워지는 한낮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따뜻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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