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가을 - 이해인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가네
가을이 깊을 수록
우리도 익어가네
익어가는 날들은
행복하여라
말이 필요 없는
고요한 기도
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네
익어가는 가을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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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내려간 아침 기온에 목이 썰렁해집니다.
옷장 안쪽에 있던 머플러를 꺼내 둘러봅니다.
이젠 이런 두툼한 것들이 어울리는 날씨입니다.
그렇게 가을은 깊어가고, 항상 그렇듯 채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겨울이 오겠지요.
화단의 반짝이던 꽃들의 표정도 이젠 쓸쓸합니다.
하지만 시인의 말대로 꽃 진 자리엔 열매가 익었을 겁니다.
세월을 견뎌 온
한 해를 지내온 사랑의 씨앗이 영글었을 겁니다.
그 씨앗에 희망을 담고 그리움의 옷을 입고 또 내년의 봄볕을 기다리겠지요.
그렇게 세상은 자라고 익어가는가 봅니다.
오늘 또 하루의 가을볕은 우리를 그만큼 더 영글게 합니다.
아직도 사랑할 게 많은
아직도 내려놓을게 많은
아직도 잊을게 많은 우리네 마음을
가을바람은 또 하루 익혀줍니다.
이 가을에 건강하세요.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