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엽서 - 안도현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by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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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엽서 –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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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랗던 하늘이 하루만에 흐려지더니 낮게 내려오고 급기야 창문에 긴 빗방울을 그어댑니다

남쪽으로 올라온다는 태풍의 영향인가 봅니다.

남쪽에 계시는 분들이 이번 태풍에도 별 피해가 없으면 좋겠네요.


날씨는 완연한 가을이라 해도 이제는 손색 없습니다

그 가을에 안도현님의 가을엽서를 그려봅니다.

매번 계절에 어울리는 싯구들을 찾다보니 이 가을편지도 몇 번을 써보았나보네요.


이 태풍이 지나면,

이 비가 그치면

아마 초록은 더 흐려지고 울긋불긋 단풍이 절정일겁니다

그리고 그 단풍들은 낙엽이 되어

저 높은 곳의 이야기를 가득 안고 땅으로 내려가겠지요

시인의 말 대로 나누어 줄 것을 가득 안고 말이지요


낮은 곳에선 보이는 곳이 고개 들어 높은 곳 뿐이기에

우리의 낮은 삶속에선 자꾸 올라감을 동경하려는 걸까요

하지만

내려온 낙엽이 전해주는 말은,

낮은데로 임한 은총이 전해주는 말은,

사랑이 전해주는 말은,

세상에 나누어 주는 낮은 곳의 행복입니다


비록 내가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낙엽에게 물어보라 합니다

사랑이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불안하게 매달린 사랑이 아니라

초록을 불태운, 그 찬란한 행복한 홍조를 가득 머금은, 그리하여 사랑의 여운을 간직한 채 낮은 데로 내려온,

그 사랑에게 물어보라 합니다


이 비가 그치면,

낮게 내려온 사랑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될까요

손에 가득 무언가를 쥔 저 높은 곳의 사랑이 아니라

어깨 잔뜩 무거운 높은 곳의 사랑이 아니라

바람에 날리우고

세월에 날리우고

당신과 나의 눈빛만을 싣고 하늘 하늘 내려오는

그런 낮은 사랑을 말이지요


세상 모든곳의 낮게 내려앉은 사랑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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