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를 가만히 보면 솥을 올리고 불을 붙이는 팽烹자 옆에 사람이 서서 기다리는 형상입니다. 끓는 솥을 지켜보며 익어 감을 기다리는 것이죠.
음식에 따라, 재료에 따라 때론 완숙으로, 때론 적당히 익힌 반숙으로 조리를 하게 됩니다. 계란 반숙, 완숙이란 단어로 익숙하지요. 요즈음은 계란을 삶을 때 물만 부으면 알아서 반숙이나 완숙으로 맞춰서 익혀주는 도구도 있습니다만, 물을 끓여서 계란의 완숙과 반숙을 조절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불 조절이 되지 않아 시간만 들이고 채 익지 않은 설익은 재료들은 종종 낭패를 부르곤 합니다.
음식뿐 아니라 곡식이나 과일도 계절을 보내며 한 해 동안 충분히 익어야만 숙성된 제맛을 볼 수 있고 말이죠.
우리네 삶도 그러할 겁니다.
각자의 세월을 보내며, 각자의 시간 속에서 나름대로의 삶을 익혀갑니다. 그렇게 잘 익혀 온 삶을 성숙한 모습, 원숙한 모습이라며 모두 다 숙熟자를 사용합니다.
그렇게 우리네 삶도 잘 익어감을 기원합니다. 아픔을 겪고, 행복을 담고, 희망을 품으며 그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익어가는 삶을 사는 것이죠.
때로, 채 익지 않은 미숙의 조급함으로 세상에 나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설익은 재료로 만든 음식은 다른 재료까지 못쓰게 만들 듯, 미숙한 지혜로 행한 일들은 이곳저곳에서 탈이 생깁니다.
매일 차리는 음식처럼 우리의 마음도 매일매일 익혀가야 할까 봅니다.
계절을 견디며 익는 과일들처럼 우리의 삶도 시간을 견디며 익어가야 할까 봅니다.
인생에는 전원을 넣으면 알아서 익혀주는 도구가 없으니, 끓는 솥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으로 잘 익어진 원숙한 삶을 기대해야 할까 봅니다.
세상의 모든 미숙이 원숙해지는 그날을 기원하며, 오늘은 잘 익은 계란 완숙 하나 먹어볼까나요.